손을 다쳤다. 다친 건 아닌데 오른손 중지 손톱 부분에 염증이 생겼다. 별일 없었는데 통증과 열감, 붓기가 느껴져 병원에서 항생제 소염제를 처방받아먹었는데도 도통 낫질 않았다.
손가락 조금 아픈 것뿐인데 불편한 게 많았다. 머리를 감을 때 열 손가락을 쓰지 못하니 답답했다. 아이들을 씻길 때에도 한 손가락이 불편하니 내가 더 짜증을 많이 부렸다. 아이들의 작은 움직이는 장난에도 내 손이 크게 아파서 버럭 할 수밖에 없었다.
밥을 먹고 먹이는 것도 불편했다. 젓가락을 지탱하는 중지에 이상이 생기니 내 밥 먹는 것도 불편한데 아이들에게 반찬을 얹어 챙겨 주는 것, 이를테면 계란말이를 젓가락을 이용해 잘라준다는지 (그것이 그렇게 고급 기술인 줄 이번에 일았다), 젓가락을 이용해 전을 찢는다던지 (이것 또한 마찬가지)하는 것들을 도저히 할 수가 없어 교양 있게 가위나 나이프를 이용하게 되었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그릇을 두 번이나 깼다. 손가락 하나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뿐인데 그릇을 자주 놓쳤다. 내가 열심히 설거지를 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한번 헹구어 식세기로 옮기는 중에 쨍그랑, 심지어 강화유리 계량컵까지 깨 먹었다. 강화유리가 싱크대에서 한 번 몇십 센티도 안 되는 거리를 떨어진 일로 깨져도 되는 건가? 하는 괜한 울화통만 올라오는 걸 눌러 참았다.
생각해 보면 우리 집엔 시어머니께서 주신 도자기 그릇이 많은데 몇 년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있어서 아이들용 그릇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주로 스텐 아니면 식기용 플라스틱을 많이 쓰다 요즘 들어 도자기 그릇과 유리그릇을 쓰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 주신 그릇은 내 취향은 아니라 새로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저 많은 그릇들은 아이들이 다 커서 독립할 때까지 야금야금 깨 먹으며 살아도 충분하겠다 싶어 새 그릇세트는 들이지 않았다. 당연히 야금야금 깨먹는 주어를 아이들이라 생각했다. 애들 있으니 위험해서 깨지는 그릇을 쓰지 않았는데 정작 그릇을 깨는 건 우리 집에서 오직 한 사람, 나뿐이다. 엄마의 날벼락이 무서운지 식기들을 조심조심 다룬다. 도자기 컵에 물을 담아 살금살금 걸어오고, 접시에 케이크를 덜어주면 기어가듯 걷는다. 애들은 그렇게 한 번도 그릇을 깬 적이 없는데 내가 그릇을 최근에만 두 개를 깨 먹었다.
그릇이 깨지면 낭패감이 든다. 흩어진 가루들을 처리해야 하고 조각들을 모아 꽁꽁 싸서 버리는 일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나 이거 바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시동안 내 머리를 지배하는데 그것도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아무도 없을 때 깨져서 "안 다쳤어?" 하는 걱정하는 말도 듣지 못했지만 아이들이 다치지 않았고 다칠만한 것들을 싹 다 치워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손가락 하나에 작은 염증이 생겼을 뿐인데, 이렇게나 불편하다.
며칠을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던 손가락은 어? 하는 사이에 고름이 삐져나오더니 그 고름을 짜낸 후에야 나았다. 곪지 말라고 약을 그렇게 먹었는데 결국엔 곪아 터져야 낫는 아이러니라니.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구나 하는 생각에 잠깐 또 우울해지다가, 나았으니 얼마나 좋아, 하고 다시 추스르는 기분.
설 연휴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