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먹는 것이 영 션찮다. 둘째는 요새 엄마가 반찬하고 국물을 안 해준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명절에 이런저런 음식들이 많이 생겨서 요 며칠 동안은 불을 안 쓰고, 렌지로만 밥을 차려 먹었다. 즉 있는 것을 데워서만 먹었다는 뜻. 그랬더니 대번에 이놈들이 티를 낸다. 그래 간만에 반찬 좀 해주지 뭐.
반찬 이래 봐야 별것 없다. 계란말이를 새로 말았고, 잔멸치 볶음을 거의 튀기듯이 해서 스테비아를 뿌려 바삭바삭하게 했고, 미역국을 끓였고, 추석에 얻은 햅쌀로 밥을 지었다. 새로울 것도 없는 늘 먹던 반찬들인데도 새로 한 밥과 반찬, 국을 싹 비우는 아이들이다. 웬일로 김만 남겼다. 귀신같은 놈들.
인간의 기본 미각은 단맛, 쓴맛, 짠맛, 신맛이고 거기에 감칠맛이라는 것이 포함되나 마나 그러는 것 같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각이라 하니 매운 것을 먹으면 아픈 듯이 괴로워 후추도 못 먹는 아이들이 이해가 간다.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인간이 느끼는 기본 네 가지의 미각 이외에 애 없이 먹는 맛, 즉 내가 나 먹을 정량을, 내 속도에 맞추어, 인간답게 먹는 맛과 남이 해주는 맛, 즉 간 보기와 냄새에 질리지 않은 하얀 도화지와 같은 혀와 코로 온전히 맛과 향을 즐기며 먹는 맛을 포함시켰는데, 여기에 오늘 새로 한 맛도 포함시켜야 하나 생각 중이다. 수 없이 먹은 밥과 반찬이어도 새로 한 날 이렇게 맛있다니 말이다. 애들이 증거다. 멸치와 계란말이를 싹 먹고 김을 남기다니.
밑반찬을 자주 만들지 않는 우리 집은 면요리를 자주 먹는데, 생각해 보면 면요리를 해 줄 때마다 잘 먹는 이유가 이 새로 한 맛 때문이 아닐까 싶다. 면요리는, 라면, 파스타, 국수, 우동 등 종류도 다양하고 각 종류마다 차갑게, 뜨겁게, 소스에 따라 맛이 달라지니 면 요리 특성상 새로 한 음식 일 수밖에 없고, 그 화려한 변주에 먹을 때마다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다.
면식의 기록
면요리를 자주 먹는 편이긴 하지만 너무 자주 먹기는 왠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다. 쌀이 주식이라는 고정관념도 있는데 다가, 밀가루는 몸에 좋지 않다는 세간의 오해도 있고, 면요리를 해 주면 반찬 없이 국수만 쏙쏙 골라 먹으니 영양적으로 불균형 한 식사가 되기 쉬워서 그렇다. 아무리 색이 화려한 잡채를 해 줘도 먹는 건 당면밖에 없어서 허탈 한 적, 짜장면에서도 양파 하나 안 건져 먹고 면만 먹어 짜장 소스가 그대로 남은 적, 야심 차게 준비한 잔치국수의 삼색 고명이 국수에 밀려 입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진 적, 많고도 많다. 게다가 나는 잘 체하니 소식해야 하는데 면을 좋아해서 항상 과식을 하고 만다. 나에게는 과식을 부르는 면식범 麵食犯이고 아이들에게는 영양 불균형을 부르는 면식범 麵食犯이다.
엄마표 크림 파스타.
밥을 먹으면서 큰아이가 말한다. 크림 스파게티 먹은 지가 오래된 것 같으니 조만간 해달라고 말이다. 불과 며칠 전에 오일 파스타를 먹었고, 어제 짜장면을 먹었지만 크림 파스타를 먹은 지는 오래되긴 했다. 내일이나 모레 오랜만에 크림 파스타를 해 주면 정말 잘 먹을 것이다. 애들은 파스타 면만 먹으려 할 테니 나는 달달 볶아 실처럼 가늘어진 양파와 버섯 가루를 넣고 달걀이나 고기구이를 올려 어떻게든 영양 균형을 맞추려 공을 들일 거고, 팬에서 내린 따끈따끈한 파스타를 호호 불어가며 한 끼 새 면을 먹을 것이다. 새로 한, 오랜만에 먹는 크림 파스타일 테니, 얼마나 맛있을지.
유치원에 가는 날은 간단히 아침을 먹이고 하원 후에 간식을 주고 저녁을 먹이는 것이 내가 차려주는 식사의 전부인데, 그나마 정식 끼니는 저녁 한 끼 밖에 없는데도 매일매일 뭐 먹지는 고민거리이다. 며칠 만에 가스 불 앞에서 해 준 반찬이라고 그렇게 맛있게 먹으니 내 참 어이가 없다. 가스 불과 전자레인지의 차이는 도대체 뭔지. 오늘 이렇게 싹싹 비운 반찬들과 미역국도 냉장고에 들어갔으니 다음에 나왔을 땐 이런 핫한 반응은 보기 힘들 것이다. 그날의 신상 반찬에 밀려 사이드 한 칸을 겨우 채우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리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라, 약이다.
미각의 종류를 다시 정의 내려야겠다.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애 없이 먹는 맛, 남이 해준 맛, 새로 한 맛. 실제로 맛을 느끼는 데에는 기본 미각 외에 후각 촉각 온도감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지만,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내 앞에 누가 앉아 어떻게 밥을 먹고 있는지, 내가 밥상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의 일부이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예전에 좋았던 기억들을 소환해 지금 화나고 지친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약용 작용도 한다고 해야 옳다.
미각의 종류 인간의 기본 미각은 단맛, 신맛, 짠맛, 쓴맛의 네 가지로 나누어지며, 혀의 각 부분에 있는 미뢰들은 구조적으로 비슷하나 기본 미각에 대한 감수성이 서로 다르다. 1901년 독일 연구자 D. P. 헤니히(D.P. Hänig)는 혀의 끝은 단맛, 앞은 짠맛, 옆은 신맛, 뒷부분은 쓴맛에 더 민감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매우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잘못 전달돼 각 부위마다 느끼는 맛이 다르다는 '혀 지도'가 생겨났다. 이후 플로리다 대학의 후각과 미각센터 부소장 스티븐 멍거(Steven Munger)박사는 이에 대해 혀의 모든 부위에서 단맛과 쓴맛, 신맛 등을 느낄 수 있다고 하여 연구 해석을 바로잡았다.실제로 맛을 느끼는 데에는 이러한 기본 미각 외에 후각, 촉각, 온도 감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매운맛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의 일부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각 [taste sense, 味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