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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Sep 18. 2022

만두 사랑

할 수 있는 만큼, 힘들지 않게. 

종종 집에서 만두를 빚는다. 번거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두부 한 모, 다진 고기 한 팩 정도만 새벽 배송을 시키고는 나머지는 있는 재료를 털어 소를 만들기 때문에 거창한 작업은 아니다. 요즘은 냉장 만두피도 잘 나와서 해동 시키는 번거로움 없이 찢어지지 않는 만두피를 손쉽게 이용 가능하다. 


9월 중순이라고 믿기 힘든 날씨, 땀. 

당면이나 숙주나물 같이 한 번 데쳐서 썰어야 하는 재료는 보통 (귀찮아서)생략하고, 주로 부추, 대파 등 그냥 썰기만 하면 되는 재료를 선호하는 편이다. 보통 물기 짠 두부, 다진 돼지고기, 다진 대파, 다진 부추, 시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표고버섯 가루를 기본으로 넣고, 당근이 있으면 조금 다져 넣고, 신김치를 미리 물에 담구어 매운 기를 빼 놓는걸 잊지 않았다면 김치도 조금 넣는다. 거창하게 이 것 저 것 다 넣어서 하려고 하면 절대 하지 못 할 일이다. 당면을 삶고, 숙주를 데치고, 새우를 다진다거나 하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은 대부분 생략하고 만두 개수도 보통 서른개 에서 많아야 쉰개 정도로 한 두 시간안에 할 수 있는 만큼, 먹고 남은 것을 냉동실에 수용 가능한 만큼만 한다. 

미니멀 만두다.  


큰 아이가 여섯살이 되던 설날부터 아이들과 함께 만두를 빚기 시작했다. 그 전엔 둘째도 어리고 나도 엄두가 안나 하지 않았던 일인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나도 왠만한 일은 대충 대충 할 수 있는 손톱만한 내공이라는게 생기다 보니 만두를 빚어 먹는 것이 방학이나 주말에 시간도 때울 수 있고, 애들도 좋아하고, 식구들 모두 잘 먹어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그 날이었다. 만두 빚는 날. 

둘째가 엄마가 만든 만두는 강시모자 같다고 했다. 박완서 선생의 나목 에서는 배불뚝이가 뒷짐진 형상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에어컨이 냉매가 빠져 고장이 날 줄은 예상을 못했고, 9월 중순에 폭염 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더울 거라고는 더더욱 예상을 못 한 주말이었다. 만두 빚기는 이미 재료를 다 만들어 두어서 피해 갈 수 없었다. 오늘의 만두, 여름에 사 두고 까먹어서 유통기한이 오늘 내일 하는 냉장 만두피 한 팩, 다진 돼지고기, 유통기한 임박 세일 붙어서 데려온 부침 두부 한 모, 대파 한 대, 소금에 절여 물기를 꼭 짠 채 친 애호박 하나, 표고버섯 가루, 계란 한 알. 끝.  에어컨이 고장나는 바람에 한 여름보다 더 땀을 흘리며 둘째가 만두를 빚는다. 땀이나 끈적 끈적 한 손으로 물을 바르고 소를 넣어 주무르는 다섯살 아이가 빚은 만두, 내 새끼니까,우리 식구끼리니까 괜찮다. 


얼마 전에 읽은 책 박원숙 선생의 따님이신 호원숙 작가가 쓴 엄마 박완서의 부엌 : 가장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 이라는 책의 한 꼭지였던 만두타령 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어머니의 글 속에 등장하던 만두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 어머니와 빚었던 만두의 편린들을 맞추어 보는 글이었다. 개성식 만두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고, 애호박을 채 썰어 고기와 함께 소를 만드는 여름 만두인 편수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김치나 배추는 여름 제철이 아니기에 여름에 흔한 애호박으로 만두를 빚었다는 건데 사시사철 애호박이며 배추를 구할 수 있는 요즘 사람인 나에게는 새삼스런 계절감이었다. 여름엔 차가운 육수에 동동 띄워 먹어도 별미라 하니 나중에 한 번 해 먹어 봐야겠다. 냉면육수 사다가 익힌 만두를 띄워먹으면 될 듯 하다. 

나의 어린시절에도 만두 빚기에 대한 기억은 여러 차례 있다. 엄마는 소주병으로 만두피를 밀어서 컵으로 찍어 쌓아두셨고 나와 언니들이 오며 가며 빚으면 엄마는 만두를 빚으며 찌며 바쁘게 종종 걸음을 하셨다. 만두피를 반죽하여 얇게 밀어 찍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 거기에 비하면 내가 만드는 손만두는 반만 손만두인 느낌이다. 무려 종갓집 만두피를 사다가 쓰니 만두 만드는 일의 팔할은 남의 손을 빌린 것이 아닐텐가. 


그 시절 나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만두 피와 만두 소를 박박 긁어 모아 왕만두를 만들곤 했는데 엄마는 별다른 잔소리를 않으셨다. 지금의 나 같았다면 찌는 시간 달라진다고 한 잔소리를 퍼 부을텐데, 아니 만두피를 사다 쓰니 왕만두를 만들 수도 없지. 여하튼, 만두 빚기는 내가 종종, 기꺼이 하는 일. 


샤오롱빠오, 소룡포, 중국식 만두 전문점에서 먹는 이 만두는 정말 살살 녹는다. 


만두는 모습이 다양하다. 소에 따라, 모양에 따라, 찌느냐, 튀기느냐, 굽느냐에 따라, 국적에 따라. 거기에 집에서 만드는 것, 냉동제품을 사 먹는 것, 만두집에서 사다가 먹는 것, 분식집 만두, 전문점 만두, 중국식 만두, 중국집 만두 등, 매일매일 다른 만두를 먹어도 한달은 메뉴가 겹치지 않을 것 같다. 거기에 탄단지를 고루 갖추고 평소에 먹기 힘든 채소도 먹을 수 있으니 나에게는 완전식품 그 자체. (이 정도면 사랑이 지나쳐 거의 찬양 수준)


큰 아이는 만두 속을 손톱 만큼 넣어 거의 껍데기만 있는 만두가 제일 좋다며 저렇게 빚는다. 나도 어릴 때 만두 껍데기만 먹었는데, 피는 못 속인다. 


오늘의 만두 빚기는 에어컨이 고장 난 9월 폭염의 주말까지 더해 조금 더 특별하게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하나 더, 얼마 전 책에서 읽은 만두타령에 나오는 만두박사님. 

호원숙 작가의 글 만두타령에는 만두 박사가 나오는데, 88년도에 스물 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박완서 선생의 외아들, 호원숙 작가의 남동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만두박사가 없는데 무슨 재미로 만두를 만드냐면서도 그 해 세모歲暮에 만두를 빚으셨다는 엄마 박완서 선생의 이야기. 

이미 하늘에서 재회하셨을 만두 박사님과 그 어머니를 생각하며 새삼스레 영혼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아마도 앞으로 만두를 빚을 때 마다 마음 속으로 두 영혼을 위한 화살 기도를 바치게 될 것 같다. 


그 시절 어머니가 쓰셨다는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를 몇 년만에 다시 꺼내 읽으며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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