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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자 셋과 사는 여자 Sep 14. 2022

우리 집 신녀- 아빠를 그리며

날 안아 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아빠가 계신 괴산 국립 호국원으로 가족 소풍을 다녀왔다. 재작년 9월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러. 돌아가신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가건, 안 가건 물리적으로 아빠를 볼 수 없는 건 매한가지이지만, 호국원에 가서 아빠의 이름 앞에 서면 아빠가 친구들과 함께 계신 새 집에 놀러 간 것 같아 아빠에게 더 가까이 간 느낌이 든다. 아빠는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로 국가 유공자셨고, 아빠와 함께 호국원에 계시는 분들도 거의 참전용사 이시니 아빠가 썰 중의 썰,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다는 군대 썰을 풀 친구들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좋다.


아빠가 우리 둘째 크는 걸 보셨다면, 우리 집에 웃기고 희한한 놈 생겼다고 재미있어 하셨을텐데.


아빠는 평생 나를 똑똑이라 부르시며 편애하셨다. 시집가서 애를 낳은 후에도 우리 식구들(친정 가족)끼리 있을 때에면 똑똑이라 부르셨다. 똑똑이는 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고, 아빠가 나를 부르는 애칭이라며 다른 친척 어른들이 나를 부르던 호칭이었다. 딸 셋 중에 막내딸이고, 아빠 나이 마흔 하나에 얻은 늦둥이라 주변 친척들은 모두 그러려니 한 것 같다.  얼마나 이쁠까 하며 말이다. 내가 아이를 둘을 키워보니, 둘째가 너무 사랑스러운 나머지 첫째에게 보다 훨씬 관대해져서, 그리고 그 존재 자체로 너무 귀여워서, 만약에 내가 셋째를 낳는다면 정말 예쁘겠구나 생각을 한 적이 있다. ( 안 낳을 거다. 열 낳아도 다 아들일 것 같다.) 그래서 아빠가 나를 그렇게 편애하셨겠구나.


그런데 서른일곱 살에, 비교적 이르다면 일찍 아빠와 이별을 하고 보니 어쩌면 아빠는 막내와 지낼 일이 제일 짧을 줄을 아시고 짧은 시간 동안 동량의 사랑을 베푸시느라 마치 편애하는 것처럼 사랑을 마구 퍼부으신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가을이 시작되는 괴산 국립호국원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꿈을 꾸었다. 꿈에 아빠가 휠체어를 타고 우리와 여행을 가셨다. 많이 아프셔서 돌아가시기 전에는 많이 마르셨었지만 그 꿈에는 건강하던 아빠의 모습과 다름없었고, 단지 휠체어에 앉아계실 뿐이었다. 그 꿈에서 모처럼 놀러 왔는데 나 때문에 네가 못 놀아서 어쩌냐고 미안하다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꿈 이후 몇 시간 후에 아빠는 하늘로 가셨다. 못 놀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을 남기시고는.


돌아가신 한 달쯤 되었을 때도 꿈에 나오셨다. 아빠가 주무시던 친정 집 안방 문을 열고 나오셔서는 곧 손님이 오실 거라며 집 정돈을 해야 한다고 죽 한 그릇을 드셨다. 그 꿈을 꾸고 나서는 아빠가 하늘나라에서 손님을 맞을 만큼 적응을 잘하고 계시나 보다 하고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날 꿈에는 아주 개구쟁이처럼 바나나 모양 뽀빠이 바지를 입고 나오시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나중에 내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나의 엄마 아빠와 함께 행복했던 유년의 모습으로 영원히 있고 싶은데, 그러다가 우리 애들이 하늘나라에 오면 나는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바나나 뽀빠이 바지를 입은 아빠를 보며 하늘나라는 어떠한 정형 定型도 필요 없는 곳, 내가 있고 싶은 모습으로 그냥 나 이면 되는 곳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내가 유년의 모습이든, 부엌칼을 휘두르는 애엄마의 모습이든 상관없는 곳. 바로 하늘나라.


 얼마 전 꿈에는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듯 집으로 와서 우리 둘째 녀석 하고만 한참 놀아주다가 출근하듯 나가셨다. 우리 둘째는 아빠가 많이 아프실 때 태어나서 아빠는 한 번도 아기를 제대로 안아주지 못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가 집에 와서 우리 둘째랑만 놀아주다 가시는 꿈은 두 번이나 꾼 것 같다.


아빠는 내 꿈에만 나온다. 언니들은 왜 니 꿈에만 나오냐며 나보고 우리 집 신녀 神女라고 하는데 신기 없는 신녀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나랑 제일 적게 같이 살은 것이 마음에 걸려 내 꿈에만 나오시는 거라면 아마 아빠의 계산으로 언니들과 얼추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싶으실 때쯤 내 꿈 출입을 안 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 해도 그랬고, 9월에 가는 충북 괴산은 참으로 청정하고 아름답다. 여름의 초록이 생생히 남아있고, 가을 하늘이 시작되며 파란 바탕을 더한다. 거기에 주황색, 빨간색이 점점이 찍혀 있다. 기일이 추석 즈음이라 명절과 기일 참배를 그냥저냥 한 번으로 퉁치게 해 주는 것도 번거로운 것 싫어하는 아빠와 닮았다.

괴산에는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도 많다. 괴산 쌍곡계곡


나는 내가 벌써 이 나이가 된 것이 아쉽기도, 슬프기도 하여 천주교 신자로서 하느님 나라를 믿으면서도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태어나 또 한 번 재미진 세상을 살 고 싶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데, 아빠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로는 나중에 내가 죽으면 아빠를 만나러 하늘나라에 가야겠다는 생각에 그다음 생에 대한 생각과 미련을 비워버렸다. (다는 아니고 4분의 3 정도.)


박정현의 <꿈에> 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들을 때마다 운다. 전주가 시작되는 순간 아득 해지며 건강하던 아빠의 모습과, 아빠와 같이 사는 나의 모습이 필름처럼 돌아가서 날 안아 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하며 나를 위로하네요. 부분에서 눈물이 폭발한다. 노래는 나 괜찮아요 다시 오지 말아요.로 끝이 나지만, 나는 매일매일 꿈에 아빠가 나왔으면 좋겠다. 神女 보다 더 한 신년이라도 상관없다.



아빠는 내가 중국에서 어학 연수를 할 때에 이메일을 배우시는 것 같더니 귀국과 함께 다시 컴맹이 되셨다.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난 너무 가슴이 떨려서
우리 옛날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나고 있네요.
날 안아주네요. 예전 모습처럼.
그동안 힘들었지 나를 보며 위로하네요.
내 손을 잡네요. 지친 맘 쉬라며.
지금도 그대 손은 그때처럼 따뜻하네요.
이제 다시 눈을 떴는데 가슴이 많이 시리네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나 괜찮아요 다시 오지 말아요. 박정현, 꿈에

매일 꿈에 오세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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