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했다. 먹이느라, 먹느라.
우리 집 스텐 식판이 졸업 수순을 밟고 있다. 큰 아이가 돌 무렵부터 쓰던 스텐 5구 식판이 집에 여러 개 있다. 어린이집마다, 유치원마다 하나씩 주기도 했고, 아이들의 친구들이 놀러 올 때가 가끔 있어서 여분으로 자동차 모양의 식판과 친환경 식판 등 유아용 스텐 식판이 여러 개 있는데 아이들이 커가며 점점 쓰지 않게 되어 이 참에 졸업하고자 한다. 스텐 식판은 여러 가지로 편리했다. 정량을 배식할 수 있으니 아이가 받은 건 싫어도 먹도록 할 수 있었고, 한번 사면 영원히 쓸 수 있을 것 같은 내구성도 갖추었으니 아이 식판으로는 백점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며 스텐 식판을 점차 쓰지 않게 되는 건 먹는 양이 아무래도 늘어서 그렇다. 밥은 조금 먹어도 곰탕이나 만둣국 같은 국은 어른 사발에 캬아 하며 들이켜 먹는 걸 좋아하게 되었고, 돈가스나 군만두 등의 좋아하는 반찬을 먹기에는 스텐 식판의 반찬 칸은 턱없이 작았다. 각자의 앞 접시 사용을 습관으로 하다 보니 반찬을 놓아줄 접시 사용이 너무 많아져서 이참에 그냥 큰 식판으로 바꾸었다. 어른용 스텐 식판도 있지만 너무 군대 짬밥 같이 보일 듯하여 강화유리 식판으로 바꾸어 주니 아이들이 좋아한다.
조건을 달았다. 너희들이 형아가 되어서 밥 많이 먹으라고 바꾸어 준거야, 이 그릇은 깨지는 그릇이니 조심히 다뤄야 해.라고 말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밥 많이 먹으라고 바꾸어 준 것은 맞지만, 깨지는 그릇이니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말은 아이들이 아닌 나에게 해야 할 말이다. 결혼하고 그릇을 깨 먹은 적이 많이 있는데 8할은 내가 그랬고, 한 두 번 정도 남편이 깼으며 애들이 깬 건 최근에 둘째가 깬 접시 하나밖에 없다. 아이들은 잘 먹기만 하면 되고, 나는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면 된다.
똑같이 밥을 차려 줘도 첫째는 반찬만 먹고 둘째는 밥만 먹을 때가 많아서 웬만하면 식판을 사용하여 할당량? 은 먹도록 하고 있다. 간식을 먹을 때에도 한 접시에 주면 싸울 때가 많아 개인 접시에 나누어 준다. 위생적으로, 영양적으로 더 좋을 것 같아서 설거지가 조금 더 나오더라도 그렇게 하는 편인데 개인 접시에 먹으니 먹으며 밥과 반찬을 뒤적거리거나 말거나, 지껀데 뭐, 하는 마음으로 신경 쓰지 않았더니 여러 사람이 같이 먹는 식사자리에서 포크로 음식을 뒤적거리는 일이 있어서 그 부분은 조금 더 가르쳐줘야 할 것 같다. 식탁 가운데에 서빙되는 탕수육 같은 메인 음식들에 아이들이 자기 침 묻은 포크 수저를 다이렉트로 뻗는다. 어차피 거의 조부모님과 함께 하는 가족 식사 자리이니 큰 문제가 되진 않지만 그래도 그러는 거 아니라고 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면 아유 괜찮다, 우리 강아지들 얼른 먹어라 하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리니 아이들에겐 내 말은 씨알도 안 먹힌다. 가끔은 우리 집에서도 식탁 가운데에 놓인 메인 음식을 뒤적거리지 않는 것, 자기가 집었으면 먹어야 하는 것을 가르쳐야겠다. 복스러운, 그러나 정갈하고 우아한 식사예절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나는 그릇 욕심이 1도 없는 주부이다. 지금 쓰는 도자기류의 그릇들은 그릇 쇼핑을 즐겨하시며 예쁘고 비싼 그릇을 그릇장에 모셔 놓고 몇십 년째 코렐과 락앤락만 쓰시는 시어머니께서 주신 것들이다. 내가 산 것은 스텐 접시와 그릇들 몇 개 밖에 없는데 처음으로 깨질 수도 있는 강화 유리 식판을 샀다. 언제 하루 날을 잡고 스텐 식판들을 정리해야겠다. 버리긴 아까운데, 당근으로 나눔을 하기에도 너무 오래 쓰던 것들이라 여의치 않을 듯하여 어떤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 중이다. 스텐 식판이 작아질 만큼, 애들이 컸다. 그동안 해 먹여 키우느라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