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시댁에 가서 고기 파티를 하고 왔다. 삼겹살과 항정살 구이에 어머님표 꼬막 무침과 배추전, 파무침과 무생채, 채소쌈이 한가득 차려진 점심. 과식을 안 할 자 누구인가.
다른 집 아이들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과식을 하지 않는다. 보통은 허기만 면하게 먹고 그만 먹겠다 해서 조금만 더 먹이려 애를 쓰는 편이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도 잘 안 된다. 정말 좋아하는 면요리를 받으면 배부르게 먹는다. 잘 먹을 뿐이지 과식은 아니다. 어른에게 과식이란,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는다거나, 배가 너무 부른 나머지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는 그런 상태인데, 아이들은 그런 과식은 내가 알기론 한 적이 없다. 혹 모르겠다. 아기 때 분유 먹고 토한 게 과식이었는 줄은, 하지만 일반식을 아이들과 함께 먹으면서는 애들은 과식을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맛있어도 최대 정량, 그 이상이면 먹을 것이 먹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는 전기 불판에 고기를 잘 굽지 않는다. 기름이 튀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애들이 얼마 먹지도 않고 일어나버리기 때문에 남편과 내가 먹자고 마룻바닥에서 삼겹살을 굽는 일은 두어 번인가 밖에 없었다. 보통은 팬에 구워서 접시에 담아 먹고 먹인다. 애들도 먹을 만큼 먹고 일어나고, 어른은 애들이 일어나면 김치를 고기와 같이 구워 한 판 더 먹거나 이런 식이다. 가끔 시댁에서 고기 파티를 하는데 앞에서 지글지글 구워가며 먹는 고기가 참 맛있어서 나도 과식을 하는 편이다. (참고로 나는 선천성 위장장애 소식해야 사는 사람). 애들은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저 먹을 만큼 먹고는 그만 먹겠다 하는, 할머니표 맛있는 음식들을 앞에 두고도 평소만큼만 먹는 놀라운 일관성을 보였다. 이런 날은 좀 곤란하다. 신랑과 나는 점심을 많이 먹었으니 저녁은 간단히 먹거나 생략하고 싶은데 아이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상을 차려줘야 하니, 배불러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늘어지고 싶은데 밥을 차려야 하는 귀찮음은 평소의 배가 된다.
어제 먹은 김밥도 남은 어묵 볶음에 참치, 당근, 단무지만 들어간 뚝딱 김밥이었다.
계란밥을 먹일까, 컵라면으로 대충 때울까 하고 있는데 둘째가 와서 김밥을 싸 달라고 한다. 엄마가 어제 싸준 김밥 맛있었다고. 그런 김밥은 최소한의 마음 준비와 재료 준비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걸 아이는 아직 모른다. 그 김밥 말고 그냥 김 싸 먹으면 안 되냐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 가정보육 기간에 한동안 엄청 자주 먹었던 조미김 반찬을 요즘은 자주 내어주지 않은 것 같다. 이유는 딱 하나, 밥은 안 먹고 김만 먹어서. 아이들은 김을 좋아한다.
그래, 오늘 저녁은 김 싸 먹자. 김밥 싸 달라는 아이에게 그냥 김 싸 먹는 걸로 퉁쳐버렸다. 과식을 안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온 가족이 같이 과식하고 저녁은 느지막이 대충 때우면 좋겠거니 생각한다. 아니다, 그래도 과식을 안 해서 아기 때 말고는 토하거나 배탈 난 적이 한 번도 없는 아이들이니 그건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밥 한번 더 차려 주는 게 어때서 애들한테 과식을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나 하고 반성도 한다.
오늘의 저녁은 김 싸 먹기. 조미 김과 계란이 없었으면 이런 날 너무 힘들었을 것 같다. 조미김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을 사는 게 새삼 감사했던 저녁이었다. 김밥 싸기와 김 싸 먹기는 한 글자 차이, 그러나 엄청난 온도차가 있다. 외국인에겐 어려운 문제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