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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23. 2022

김치와 나.

알고 보면 친한 사이.

 바야흐로 김장시즌이다. 아이들도 유치원에서 김장을 하고 왔다. 생태 유치원이라 직접 심어 키운 배추와 무를 뽑아 김장을 해서 몇 날 며칠에 걸쳐 밭에 나간다, 버무린다, 말이 많았다. 주로 선생님들의 수고로 이루어진 작업이었겠지만 아이들은 직접 심어 키운 배추가 김치가 되는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이다. (유치원 선생님 극한 직업) 매운 거라고는 후추도 잘 못 먹는 아이들이라 고춧가루에 버무린 깍두기 하나를 큰 용기를 내어 먹은 것이 고사리손으로 한 이번 유치원 김장의 유일한 소득이었다. 빨간 김치는 유치원에서나 한 개씩 배식받아먹는 모양이고, 집에서는 엄두도 내지 않으며 백김치도 한두 번 몇 개씩 먹을까 말 까라 집밥에서는 나도 김치를 잘 주지 않는다.


 나는 김치를 좋아한다. 맛있다. 우리 아빠의 입맛이 독특하여 생김치, 겉절이만 드시고 익기 시작한 김치는 드시지 않았기에 엄마는 일주일, 열흘에 한 번씩 배추 한 두 포기씩 김치를 담갔다. 익기 시작한 김치는 모아 두었다가 찌개를 끓였는데, 익은 김치는 안 드시는 아빠도 김치찌개는 드셔서 우리 집은, 아니 우리 엄마는 김치를 소량씩 자주 담가 먹었다. 나는 김치를 생김치, 익은 김치, 신 김치 가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는다. 뭐랄까 김치의 맛이 나에겐 너무 압도적이라 사이드에 두고 매일 먹기엔 부담스럽다. 밥상에 올라오는 반찬들 중 맛과 향의 최강자라고 생각한다. 나 김치야! 덤벼봐! 이겨줄게! 하는 느낌. 그래서 내가 김치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른 여타의 반찬들을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결이고, 불고기, 제육볶음, 계란찜 등을 아무리 좋아해도 매일 먹진 않듯이 김치도 매일 먹지 않을 뿐이다. 가끔씩 먹는 김치를 정말 맛있게, 메인 요리로 먹는다. 흰쌀밥에 생김치만 해서 먹을 때도 있고, 김치찜이나 김치찌개, 두부김치, 등 내가 김치를 먹는 날은 거의 김치가 주인공인 날이다. 라면을 먹을 때에도 김치를 먹지 않는다. 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느낌에 라면 맛이 다 똑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장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 자의에 반하는 소식좌가 된 나는 출출해서 편하게 라면 하나 먹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정 라면이 먹고 싶어서 정말 가끔 라면을 먹는다. 그것도 소화제를 먹을 각오를 하고 말이다. 그런 사정이니 내가 그토록 원하는 라면 맛을 해치는 것, 계란, 파, 김치를 일절 허용하지 않고 라면만 대기업의 레시피 그대로 따라 끓여 호로록 맛있게 먹는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라면을 먹을까. 하는 노래가 전혀 와닿지 않는다. 나는 그냥 라면 맛이 좋아 라면을 먹을 뿐이니.



 이렇게 나도 김치를 매일 반찬으로 먹질 않으니 당연히 애들에게도 김치를 잘 챙겨주지 않게 된다. 어쩌다 백김치를 얻거나 사게 되면 반찬으로 주는데 한 입이나 두 입 정도 먹으면 먹을 것 다 먹은 듯 김치를 외면한다. 내가 그 마음을 알아서 그냥 그렇게 두는 편이다. 김치 대신 다른 채소를 먹이려 하고, 김치의 유산균 대신 요즘 잘 나오는 몇십억짜리 유산균, 혹은 요구르트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람이니 김치를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고 이 세상에는 김치를 안 먹고도 잘 사는 사람이 많아.라고 생각하고, 어릴 때부터 김치를 먹어야 커서도 먹지, 하지 않고 때 되어 그 맛을 알게 되면 알아서 먹겠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은 김치를 안 먹거나 한 개, 혹은 많아야 두 개를 먹는 편이지만, 김치를 좋아하니, 싫어하니 물어보면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좋아하니까 매일매일 많이 먹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려 한다. 나는 일고 여덟 살쯤 라면과 떡볶이를 먹기 시작하며 매운맛을 텄고, 그 이후에 김치찌개에 들어간 고기를 먹으며 김치 맛을 알게 되어 김치를 좋아하지만 매일 먹지는 않는 사람이 되었다. 김치를 매일 먹지 않는다고 해서 내 식생활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 한 끼씩 급식을 먹는 아이들이 김치를 매일 먹어야 해서 김치를 싫어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있었는데 요즘 선생님들은 그렇게 엄하게 식사 교육을 하시진 않는 듯하여 그 부분도 안심이다.


 내가 내 손으로 김치를 담그는 날이 올까? 하는 물음에 신랑도 회의적이다. 사 먹는 게 싸지 않겠니. 시댁은 김치에 진심이신 시어머니 덕에 사계절 내내 김치냉장고에 종류별 김치가 그득하다. 김장도 예전보다는 포기수가 줄었지만 겨울 한철 행사로는 하시는 편인데 결혼 첫 해에 나를 부르시더니 그다음부턴 부르시지 않는다. 포기김치를 담아 본 적도 없으니 골고루 속을 넣어 예쁘게 여며야 하는데 영 맘에 안 드셨던 모양인지, 아니면 어머님 친구분들과 고수들의 솜씨로 후딱 끝내시는 게 편하신 건진 모르겠다.


 김치를 좋아하지만 매일 먹진 않는 나와 언제나 냉장고 한편에서 나 좀 드쇼 하는 김치의 관계를 생각한다. 서로 죽고 못 사는 연애 관계는 아니고, 해로한 부부의 관계라고 하면 좋을까. 아니면 잘 보여야 하는 사회의 관계가 아닌,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익숙한 오랜 벗과 같을까. 여하튼, 김장시즌. 여기저기에서 김장 소식, 김치 사진들이 올라오니 김치가 먹고 싶어 어제는 생굴을 사다가 김치와 먹었다. 역시 맛있었다. 어제 먹었으니 아마 앞으로 며칠간은 김치를 안 먹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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