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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쟁이 한제 Nov 27. 2022

엄마, 국물은?

함박 정식에 국물까지 못 해 준다.  

 바쁜 하루였다. 지난번에 만들어 쟁여 둔 함박 스테이크를 다 먹어서 다시 코스트코 다짐육을 사 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만 산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저렇게 냉장고에 냉동실에 테트리스를 맞추다 보니 하루가 힘들었다. 다짐육 스테이크에 넣을 야채를 잘게 다져 볶아 두고, 볶은 소고기 고추장과 이리저리 쓸 일부를 냉장, 냉동실에 소분하여 두고 양푼에 나머지 다짐육을 투하하여 치대기 시작했다. 냉동실에서 말라가는 식빵을 갈아 넣고 계란을 깨어 넣고 간을 적당히 하여 치대니, 반죽 완성. 이제 빚어야 한다. 


 토요일 아침인데 의도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깨 버렸다. 위층에서 울리던 휴대폰 진동 때문이다. 처음엔 내 거인 줄 알고 깼다가, 계속 들리는 소리에 신랑이 급히 오는 전화를 못 받고 있나 싶어 신랑 것도 확인했는데도 아니었다. 위층 사람은 왜 그리 계속 울리는 전화인지 알람인지를 못 듣는 건지. 그때가 여섯 시 조금 안 된 시간, 이른 아침을 맞았지만, 썩 상쾌하진 않았다. 내가 뒤척이면 나와 딱 붙어 자는 큰 아이가 일어난다. 그래서 둘이 거실로 나온다. 남편과 작은 아이는 안 예민파, 엄마와 큰 아이는 예민 파이다. 


아이는 여느 토요일 아침처럼 조용히 종이접기를 한다. 동생이 방해하지 않는 그 시간이 너무나 소중한지 물 한 모금 마시라는 것도 마다하고 집중, 집중, 초집중이다. 동생 일어나면 같이 먹겠다고 하는 눈빛이, 나 이거 할 거니까 건드리지 마, 그런 눈빛이라 그냥 놔둔다. 점심에 함박 정식을 먹을 생각으로 함박 스테이크 빚기를 시작했다. 지난번에도 꽤 많은 양을 만들어 얼려 쟁여두었는데 엄마표 함박 정식이 인기가 좋았다. 생각보다 금방, 맛있게, 잘 먹어주어 다시 만드는 일이 귀찮지만, 귀찮지 않다. 수고를 선불로 내놓으면, 한동안은 좀 수월하기에. 



 빨간 반죽을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떠서 찰싹찰싹 때리는 모습이 신기한 모습인지 아이가 자기도 일손을 돕겠다 한다. 음, 그래. 돕는 게 돕는 게 아니지만 이따가 따로 준비 주겠다고 하였다. 내가 할 몫을 먼저 마치고 아이 몫으로 작은 볼에 스트링 치즈를 잘라 넣어 미니 치즈 함박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엄마와의 쿠킹 시간을 제일 좋아하는 둘째가 하필 그때 강력한 떼 요정이 오셔서 함께 하지 못했다. 어디가 아프다고 우는데, 딱 보니 떼 부림이다. 신랑은 어디가 아프냐고 쩔쩔매는데 진짜 아픈 건 울음소리부터 다르다고, 다섯 살의 떼 요정을 무시해버릴 정도의 내공이 생긴 아들 둘 맘이다. 


왜 그동안 파니니그릴을 생각 못 하고 후라이판에다 구웠을까.


 고기 반죽을 동글동글하게 빚어 치즈를 넣어 오므리는 솜씨가 제법이다. 튀어나온 부분은 엄마가 만져 주었지만, 한 그릇 분량을 금방 마치고 얼른 먹자 하는 아이, 오랜만에 양면 파니니 그릴을 꺼내어 구워주니 아주 십상이다. 진작 함박을 여기에 구울걸. 


고기 굽는 고소한 냄새가 슬금슬금 풍겨오니 어느새 뚝 그치고 다가오는 둘째, 먹을 건데 아프니 먹여 달라며 떼 부림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넣는 게 웃겨 죽겠다. 그리고 차려진 밥상을 보고 하는 말, 


엄마, 국물은??

(뭐 인마???)




새벽부터 원치 않게 깨어서 함박 스테이크를 주무른 어미에게 할 말이냐??! 싶었지만, 아이는 그냥 하는 말이다. 엄마, 국물은? 이 말은 국물도 없이 먹으라는 거야? 국도 안 끓였어? 가 아니라 정말 오늘 국물의 존재 여부를 묻는 말, 하등의 악의가 없이 그냥 묻는 말이라는 걸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안다. 


엄마, 국물은? 의 자매품으로 엄마, 반찬은? 엄마, 밥은? 이 있다. 볶음밥으로 한 그릇 음식을 내어주면 반찬을 찾고, 면 요리 한 상을 내어주면 밥의 안부를 묻는다. 아이는 그저 궁금할 뿐. 나를 탓하거나 반찬 투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 어린이집, 유치원의 식판식, 엄마표 가정식의 식판식에 익숙해져 밥, 국, 3찬 차림이 아니면 꼭 결석한 친구의 안부를 묻듯 다른 안 온 음식 친구들을 찾는다. 이것이 아이의 순수한 직설법이다. 

엄마, 밥은? 


악의 없는 말을 꼬아 들을 때가 종종 있다. 아마 첫 아이 낳고 가장 심했다가, 둘째를 키우며 많이 무뎌졌다. 아이가 말랐네, 왜 콧물을 흘리니, 왜 양말도 안 신었니, 하는 우리네 할머니들의 오지랖이 다 나의 무지, 불찰, 무능에 대한 공격인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악의 없이 하는 말이다. 멘붕의 첫째 육아 시절 같은 말을 계속 들으니 내가 피곤 해졌을 뿐, 둘째를 키우면서는 그런 말들을 유하게 받아넘기게 되었다. 이젠 자주 보기 힘들어진 아기들이 예뻐서, 눈이 가서, 말 걸고 싶어서 하시는 말인 걸 알기에. 


엄마, 반찬은? 

 둘째의 엄마, 국물은? 시리즈들도 같은 맥락이다. 안 온 친구들을 찾는 마음이구나, 국수 먹는 날이니까 밥은 오늘 결석해서 없고, 국물은 못 했고, 볶음밥에 반찬이 다 들어있어서 반찬은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냥 그렇게 말해준다. 몰라서 묻는 것에 화를 내버리면, 아이가 황당할 테니. 


 문제는 타인과 아이에겐 그게 되는데 남편한텐 안 된다는 것. 그래도 안 예민한 남편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아 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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