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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09. 2021

엄마의 엄마는 엄마를 모른다.

 

키가 컸던 외할머니는 호탕하신 분이셨다. 어렸을 때 그러니깐 내가 8살 여름방학 때 엄마가 시장에서 사준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진 노란 원피스를 입고 여동생과 함께 배를 타고 여수를 갔다. 뱃멀미와 우리 둘 뿐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통영에서 여수까지 가는 배안에서 나와 여동생은 계속 울었다. 여객선터미널에 마중 나와있던 이모는 우느라 엉망이 된 나의 새 원피스를 보고 와락 끌어안으며 그만 울어도 된다며 다독여줬는데 그때 맡았던 따듯한 다림질 냄새는 아직도 생각난다.


그렇게 찾아간 외할머니 집은 신축 아파트였고 할머니 혼자 살고 계셨다. 내가 아는 외갓집은 잘살았다. 만약 엄마가 아빠와 야반도주를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도 괜찮은 남자와 결혼을 했을 테고 교양과 기품이 있는 이모들처럼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얼굴만 뜯어먹고 살 줄 알았다. 이년아'라는 엄마의 말처럼 엄마는 아빠의 인물에 반했고 부산에서 잠깐 시작했던 연애 끝에 통영으로 야반도주를 하기에 이르렀다.


엄마는 평생 외할머니에게 아픈 손가락이었고 천하의 불효 막심한 딸이었다. 엄마는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 했고 우리가 외갓집을 갈 때는 이쁜 옷을 사 입히고 정갈하게 보냈다. 그래도 '꼬질꼬질한 본모습'은 어디 안 간다고 먹는 거 앞에서 사죽을 못쓰는 식탐은 여전했고 외할머니는 우리가 있는 동안 쌀을 몇 가마니를 먹었다느니 예의범절을 모른다느니 하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맛있는 것도 잘 사주고 우리를 따듯하게 대해주셨다.


그런 할머니가 몇 해 전 치매로 요양원에 들어갔다는 연락을 받았다. 엄마는 외할머니가 오늘내일하는 중이라 언제 우리 모두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게 될지 모르니 다 같이 가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5월, 언니를 제외한 엄마와 4남매가 함께 외할머니가 있는 요양원을 찾았다. 전라도 어디쯤에 있었던 가톨릭 재단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에 계신 걸 보고 새삼 놀랐다. 부처님을 모셨던 할머니는 한 달에 두 번은 절에 가서 천배를 올리던 분이셨는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요양원 다인실에 계셨다. 쾌쾌한 기름 냄새와 건조하고 탁한 공기에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러졌다. 엄마는 가운데 병상에 누위 있던 외할머니를 보며 "엄마, XXX이 왔다."라며 할머니 침대 한쪽에 걸터앉았다. 그렇게 앉은 엄마는 외할머니를 앉히려 애쓰며"엄마, 살이 왜 이렇게 빠졌는가, 나 알아보겠는가? 나 XXX."라고 말했고 눈만 떴다 감았다 하던 외할머니는 알아보는지 못 알아보는지 "어, 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엄마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계속 자신의 이름만 반복해서 말했고 할머니는 울듯 말듯한 표정과 '정말 난 네가 누군지 몰라.'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셨다.


여동생이 "엄마 할머니 울긋다. 고마해라."라는 말에 엄마는 우느라 막힌 코를 풀었고 할머니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서 쓸어내렸다. 엄마는 따듯한 죽을 먹이고 싶어 했지만 "방금 밥 먹였어요."라는 요양보호사의 확실한 거절에 "그럼 요플레라도 먹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뭐든 할머니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엄마는 요플레를 할머니 입에 떠먹이며 "엄마, 맛있어?"라고 자꾸 묻기만 했다. 결국, 요플레 한 통을 다 먹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일어나며 그날 입고 간 갈색 원피스에 눈물과 요플레 범벅이 된 손을 닦아 냈는데 그 모습이 그동안 쌓인 모든 감정을 훌훌 털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타고 온 흰색 마티즈에 다섯 식구가 몸을 실었다. 엄마는 보조석에 앉아 창문을 열고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이제 어디로 갈끼고?"라며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다음 행선지가 어딘가.하는 물음의 의미 보단 '이제 엄마는 엄마를 보낼 준비가 됐다.'는 말처럼 들렸다.


바람이 자꾸만 자꾸만 차 안으로 들어왔고 하얀 하늘 아래 엄마의 머리카락 날렸다.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꼬부랑 거리는 전라도의 시골길을 달려 땅끝마을 해남으로 향했다. 그렇게 할머니를 보고 온 1년 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고 끝내 엄마는 엄마를 기억하는 엄마를 보지 못했다.


가끔 바람이 많이 불어 원피스 자락이 들릴 듯 흔들리는 날엔 그때의 엄마와 엄마의 엄마 생각이 난다. 기억의 어디쯤에 영원한 아픈 손가락이었을 엄마를 숨겨두고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떠난 호탕한 외할머니가 그립고 젊은 날 엄마의 곁을 떠나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자식을 길러내느라 손도 마음도 아물 날 없었을 젊은 날의 엄마가 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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