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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12. 2021

마음 쓰지 마라.

설이건 추석이건 시댁에선 오라고 하신 적이 없다. 그건 친정도 마찬가지다. 나랑 남편은 결혼 10년 차에 접어든 올해까지 명절에 시댁이든 친정이든 방문한걸 손에 꼽으라 한다면 3손가락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맞이하는 명절은 긴 주말이고 우린 그 주말을 이용해 해외여행을 다니거나 호캉스를 즐겼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몹쓸 전염병 때문에 긴 주말도 집콕 생활 중이다.


남편과 나는 작년 12월에 회사를 그만뒀다. 이제 직장 생활을 하지 않으니 더 이상 명절은 긴 주말이 될 수 없었다. 나와 남편은 딩크족이다. 그러니 당연히 식구는 단출한 2인. 시부모님도 두 분만 살고 계시니 2인이다. 두 가구가 만나도 4인이니 5인 이상 집합 금지에 해당하지 않아 이번 설엔 시댁을 가야 하나? 망설였다.

2월 초 시어님이 아들에게 전화를 하셨다. "혹여나 해서 전화했다. 올 생각 말고 집에서 쉬어라. 옮기는 병이라는데 그게 4명만 모인다고 걸리지 않는 건 아니니 모두 건강하세 지내자꾸나." 어머님스러운 전화라고 생각했다.


시어머님은 결혼을 앞 둔내 게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고 나는 딸이 있었던 적이 없어 딸과 며느리를 어떻게 대하는지 모르겠구나. 며느리와 시어머니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는데 결혼을 하고 2~3년 살아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어머님은 내가 시댁에 가면 가족과 손님 사이의 어디쯤에 둔 사이로 대하신다. 나도 가끔은 손님처럼 가끔은 가족처럼 대하는데 그렇게 대하니 선을 넘지 않게 되고 편하게 지내면서도 예의는 지키게 되는 것 같다.


시집와서 한 번도 시부모님께 서운한 적 없다 하면 그것도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처음 시집왔을 때 두 어번 어머님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거리감을 두게 되는 게 사실이다.  시어머님도 삶의 지혜를 터득할 만큼 살아오신 분이니 그걸 모를 일 없을 것이다. 결혼 2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어머님이 내게 전화를 따로 하셨다. 원래 며느리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으시던 분이라 조금은 걱정스러운 맘으로 전화를 받았다. "며느리 밥 한번 사주고 싶은데 아들 없이 엄마랑 오붓하게 밥 먹는 거 어떠니?"라고 물으셨고 난 떨리는 맘으로 어머님과 만나기로 한 식당으로 향했다.


어머님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데. 어머님이 대뜸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혹여나 본인이 실수를 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 어머님이 나이를 먹어 그런 신가 보다."라고 이해를 해주면 어떻겠냐고 하시며, "조심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가끔은 편하게 생각될 때가 있구나. 나이를 먹으면 고집은 세지고 가끔은 상식이 통하지 않기도 한다. 그건 엄마도 경험해봐서 안단다. XX야 혹시 마음에 담아둔 게 있다면 미안하다."라고 하셨다. 그때 난 내심 놀랐다. 친구사이에도 하기 힘든 게 '사과'고 가족 사이에는 잘못된 일이 있다면 '무마'시키지 '사과'를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자식을 보면 부모가 보인다. 고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있으니. 남편은 시부모님을 골고루 닮아 모난 구석이 없다. 상대방의 상황을 잘 공감해주고 때에 따라서는 자신을 낮출 줄 알고 사람과의 사이에 높고 낮음의 경계를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난 학력도 낮았고 10인 미만의 소규모 회사에 다녔으며 친정은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남편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자기는 나보다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어른스러운 면이 있어 같이 있으면 즐겁다."라고 했다. 연애와 결혼을 하고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살면서 난 내 남편과 나의 관계를 마음으로 맺어진 인연, 평생의 동반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남편을 만난 게 복권이라면 진심으로 존경할 시부모님을 만나게 된 건 인생의 로또다.


설날 아침에 눈을 뜨고 전화를 걸었다. 방금 일어나 전화를 받으신 듯 목이 잠겨있는 시어머님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있다 전화드릴게요."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11시쯤 전화를 드렸다. 떡국은 드셨는지 별 다른 일은 없는지 여쭤봤다. 어머님도 "떡국은 먹었니? 건강은 하지?"라며 질문을 하신다. 우리는 웃었다.

"우리 아들이 돈을 많이 벌어야 XX가 더 많이 행복할 텐데."

"어머님, 저 행복해요."

"XX가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그래야 우리 가족이 행복한 거지. 새해 복 많이 받고"

"네 어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래, 우리 마음 쓰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행복하려무나."


어머님의 마지막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남편이 차려준 떡국으로 아침을 먹으며 '이게 행복이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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