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결제 마감일이 다음주 월요일까지다. 남편은 설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오늘 자기 등록금 결제하자."며 보챈다. 난 "월요일 까진데. 천천히..."라고 말하며 비몽사몽 꿈속을 헤매었다. 이불에서 어렵게 기어 나와 컴퓨터 앞에 앉아 느지막이 입학한 대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방금 일어나 침침한 눈으로 '등록금 조회 및 결제'버튼을 누르고 남편을 불렀다.
"카드 줘." 남편은 나름 우리가 '금고'라고 생각하는 곳에서 카드를 꺼내왔다. 결제에 필요하 카드 정보를 누르고 마지막 버튼인 '결제하기'를 눌렀다.
곧이어 뜬 팝업창엔 '사용 불가 카드'라고 나온다. 남편은 카드를 보더니 "이거 저번에 잃어버려서 분실 신고하고 재발급받았는데... 재발급받은 게 어딨지?"라며 찾기 시작한다.
온 집안을 뒤져도 나오지 않고 내 가방도 뒤지고 있는 걸 보고 조금 화가 나려고 했다.
"오빠, 꼭 그 카드로 결제해야 해?"
"응. 포인트 카드라... 등록금 금액이 크니깐..."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그래. 백순데 카드 포인트라도 받아야지 카드 찾기에 나도 합류해 나는 집안을 찾고 남편은 차를 뒤져본다며 나갔다.
몇 분쯤 흘렀을까 집안을 이 잡듯 뒤져도 나오지 않아 거실 안락의자에 앉아 카드를 마지막으로 본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남편이 양손 가득 영수증 뭉치를 가지고 들어왔다.
"찾았어??"내가 물었다.
"아니. 차에도 없네... 도대체 어디 뒀지???"
"글쎄... 난 카드를 안 쓰니깐... 재발급받은 건 맞지??"
"그건 확실해!!"
"포기하자. 다른 카드로 결제해."
"포기가 안돼. 분명 집에서 봤는데..."
남편은 늦은 아침 준비를 하면서도 카드 생각에 여념이 없는 것 같다. 인덕션 앞에서 떡국을 끊이면서 괜히 환풍기 위쪽을 만지작 거리고 커피머신 아래쪽을 살핀다.
"부엌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라고 말하다 갑자기 번쩍하고 무슨 생각이 났는지 책꽂이가 있는 내 방을 두어 번 왔다 갔다 한다. "이것 봐! 찾았어"라며 환호성을 지른다.
"우와~~ 어디서?"
"내가 책갈피로 썼어. 어느 책에 꽂아 뒀는지 한참을 찾았네..."
"읭?-_-;;"
"아니~ 책갈피가 없어 가지고... 그때 카드로 표시해뒀던 게 생각이 났지"라며 웃는다. 그리곤 내게 카드를 넘긴다.
"지금 결제해."
예뻐서 쓰기 싫었다. 책 선물을 할 때마다 한 장씩 끼워서 주는 맛이 있었다. 선물 받은 사람들은 책 보다 예쁜 책갈피에 만족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싫지 않아서 박스 속에 숨겨 두고 선물용으로 야금야금 소비하고 있었나 보다. 정작 가장 소중한 사람이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니... 박스 속에 숨겨뒀던 책갈피를 꺼냈다. 꺼내놓고 보니 족히 50개는 넘는 것 같았다. 책갈피가 필요했는데 왜 진작 꺼내놓지 않았을까? 이쁜 건 옆에 두고 오래 봐야지. 제일 이쁜 책갈피를 오늘 읽던 창작과 비평 2020년 가을호 중간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동안 모아뒀던 책갈피를 꺼내 가장 눈에 잘 띄는 장소에 올렸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가장 필요로 할 때 잘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