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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05. 2021

엄마와 빈집.



 코로나로 세계여행을 취소하고 통영에서 지낼 생각으로 여동생 소유의 빈집 청소를 시작했다. 누구의 짐인지 알 수 없는 짐을 털어 내는 데만 꼬박 3일이 걸렸고 버린 양만 1톤, 비용은 40만 원이 들었다.

그 짐은 동생 짐도 아닌 바로 엄마의 짐. 어디서 버리려고 내놓은 것들 중 쓸 만해 보이면 빈집에 쌓아 두 길 반복했나 보다.

 

 집 청소가 끝날 무렵 내가 왔다는 소식에 동생 집으로 온 엄마는 물건을 버렸다며 고함부터 지른다. "쓸 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라는 내 말은 엄마의 고함에 묻혀버렸다. 하다못해 뒤 베란다에서 햇빛에 삭아 원래의 용도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한 튜브를 버린 걸로도 5분간이나 잔소리를 해댄다.

 코팅이 전부 벗겨진 15년 된 냄비도 유통기한이 5년이나 지난 밀가루도 전부 보물이었던 것처럼 말하는 엄마를 보며 혀를 내두르고 집을 나와 버렸다.

 

 집주인인 동생에게 전화해 엄마가 저장강박증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동생이 "언니, 엄마 늙었잖아. 늙으면 그런다더라 목소리는 커지고 고집은 세지고... 나도 엄마가 그럴 때마다 이해 안돼. 근데, 거기서 사는거 아니니깐.. 이해하려고 하지마. 어차피 이해 못 해.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나보다 더 어른 같은 말을 하는 동생과의 통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싱크대 위에는 방금 무친 고소한 톳 나물과 잘 손질된 고등어 세 마리가 있었다.


 빈집을 정리하고 내 맘이 어질러진 듯 복잡했던 그날 이후 엄마랑 싸우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통영에 머물러 있는 지금 또 사달이 났다.

 사람 있는 집에 올 때는 전날 연락하고 와달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건만 엄마는 여느 때처럼 불쑥 찾아왔다. 그것도 15년이 지난 세탁기와 브랜드도 생소한 중국산 TV 들고. TV는 보란 듯이 침대 위에 던져두고 "누가 새 거를 버린다길래 얻어왔다."라고 말하며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로 가는 엄마를 쫓아갔다.

 전화를 하지 않고 찾아온 것도 화가 나는데 있는 세탁기를 교체한다며 아저씨 한 명을 데리고 왔다. 못마땅한 얼굴로 계속 쳐다보는 내게 "세탁기가 오래됐어도 빨래가 억수로 잘 된단다." 그러곤 뜯어낸 세탁기는 역시 뒤 베란다 한쪽에 놓는다.

 

 쓰레기 같은 물건을 정리한 지 반년도 안된 그곳엔 거치형 해먹을 비롯해 엄마가 가져다 놓은 물건이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엄마가 가져다 놓은 요상한 쓰레기들을 보며 "엄마. 여기 쓰레기통 아니야. 세탁기랑 TV 당장 가져가"라고 말했다. "새 거니깐 고만여놔나라"(여기다 둬라)라고 답하곤 쏜살같이 나가버린다.


 '띠리리릭'도어록 소리와 함께 한숨이 나온다. 도대체 어딜 봐서 tv가 새 거라는 건지. 15년 된 세탁기가 작동은 될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간신히 화를 꾹꾹 누르며 설치한 세탁기 통 세척을 시작했다. 돌려도 돌려도 계속 나오는 먼지를 보며 눌러둔 화가 눈물로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그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니 엄마랑 싸웠나? 엄마 화나서 전화했든데..."

"또 집에 쓰레기 주워온다."

"언니 통영에서 살 거 아니잖아 그냥 그러려니 하라니깐. 언니나 엄마나 똑같다. 세탁기 더러우면 고만 쓰지 말고 세탁방 가라. 괜한 걸로 싸우지 말고..."

 동생도 이젠 흥분상태의 엄마를 받아 주기 어려우니 아예 싸울 일을 만들지 말라는 투다. '나랑 엄마가 똑같다니...' 쉽게 흥분하는 성격이 닮았나?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고 화를 가라앉히며 맞은편에 걸린 가족사진을 봤다. 한복을 입고 앉아 있는 고운 엄마 얼굴을 보니 '우리 엄마 그래도 미인이네'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얼굴과 대조되는 두 손이 보였다.

겨울이면 굴 까러 다니느라 퉁퉁 부풀어 올라있던 엄마 손이 생각났다.


 엄마도 내 맘을 모르듯 나도 엄마 맘을 모른다.

 늙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잘 살아 본적이 없었 필요한 것만 소유하는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닐까. 넉넉하게 살게 된 지금. 과거의 구질구질했던 가난을 기억하는 이는 '엄마의 몸'뿐인 것 같아 유난히 아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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