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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05. 2021

비오는 고향을 걷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릴 땐 내가 태어난 여수라고 말했다. 언제부턴가 "아가씬 고향이 어디예요?"라고 물으면 "통영이요."라고 답한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경기도 여자에게 고향이란 태어난 곳이 아닌 몸에 자연스럽게 베어있는 기억이다.


 비가 왔다. 하루 종일 뜨끈하게 데워진 집에서 뒹굴거리다가 해가 진 고향길을 걷는다. 이어지는 길마다 어린 내 모습이 보였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초등학교 앞 오래된 4층짜리 맨션 3층에서 나를 부르던 친구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물을 잔뜩 머금은 맨션은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아빠와 단둘이 살았던 그는 아직 그곳에 머물러 있는지 문득 궁금 해졌다.


 빈 상가를 지나고 또 지나며 비가 와서 외로운 그런 거리를 걷는다. 오늘따라 거리의 가로등은 더 밝게 빛나고 정처 없이 걷던 나는 이문당서점 앞에 멈췄다. 오래 비어있었던 건물엔 '임대'라는 종이 주변으로 '쿠팡 물류센터 반값 세일'이라고 적힌 빨간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었다. 

 

한때 지식의 창고였고 통영문인의 주 활동 무대였던 이문당서점. 그 쓰임을 잃고 낡아가는 2층 건물을 보며 내 청소년기의 한 면도 힘을 잃어 간다. 이문당서점앞 교차로로 강구안이 보이고 그틈으로 '디피랑'의 일부가 보인다.  검게 물든 바다의 고요한 수면위에 디피랑에서 쏘아올린 빛이 스민다. 낡고 힘없는 오랜  것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그런 자리를 대체하는 조금은 현명한 문화가 자리 잡은 밤. 비가 와서 그저, 조금 쓸쓸한 밤. 난 오래도록 그곳에 서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통영운하는 왜 이리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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