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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14. 2021

드림스.

작년 가을부터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는 남편의 플레이리스트다. 다른 노래들은 한 달에 한번 플레이리스트 정리를 하면서 체인지됐지만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는  4개월이 넘도록 우리 집 거실에서 재생 중이다.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모 사이트의 스피커 커뮤니티에 '크랜베리스 노래 좋아하시는 분 계신가요?'라는 게시글을 올렸을 정도다.


길면 세 달 짧으면 한 달. 크랜베리스 사랑에 종지부를 찍지 않을까 했는데 오래도록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를 틀어놓는 게 괜히 못마땅했다. 딱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도 아닌데 귀에 딱지가 않도록 저 노래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싶었으니. 그의 사랑이 이제는 좀 끝나 줬으면 하던 찰나였다.

창으로 보이는 아웃렛의 조명이 참 밝다. 는 생각을 하며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뽀득뽀득 하얀 세재를 풀어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작은 상념에 빠질 듯 말 듯 밤의 감성에 젓어 들려고 했다.

그때, 스피커에서 익숙한 멜로니 '크랜베리스의 드림스'가 흘러나온다. 뜬금없이 홍콩의 밤과 오늘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왜 홍콩 느낌이 드는 거지..."

"중경림의 주제곡이니까."

"아, 가수가 백인인 줄 알았는데 홍콩 사람이야?"

"(한숨) 그냥 듣기나 하셔." 남편은 어떻게 '크랜베리스를 모를 수 있단 말이야?' 하는 투다.

"제목만 알려줘."

"드림스"

드림스? 꿈? 이 노래를 중경삼림에서 내가 들었던가? 초록창을 열어 검색을 시작한다.

그럼 그렇지. 오른쪽 허벅다리를 오른손으로 탁 쳤다.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를 '왕페이가 몽중인'이라는 곡으로 리메이크해서 불렀단다. 4개월을 들으면서도 오늘에서야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게 유독 이상하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지 라며 위안을 삼는다. TV광고 음악으로 자주 나왔다는데 집에 TV가 없으니 연상되는 광고가 하나도 없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


그러고 보면 드림스는 '중경삼림의 결말 없는 첫사랑'과도 닮았다. 연인과의 이별로 슬퍼하면서도 정작 그 연인의 취향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던 633의 사랑도. 평범하지 않은 집착으로 표현된 사랑이 결코 미워 보이지 않았던 페이의 사랑도. "어딜 가고 싶죠."라는 페이의 질문에 633 은 "아무 데나 당신 좋은 대로"라고 답한다. 이  마지막 장면은 you're everything to me (당신은 내게 전부)라는 가사와 같아 보인다. 둘의 사랑이 결국 이루어졌는지 아니면 633의 첫 연인처럼 사랑하고 헤어졌는지 모른다. 모든 첫사랑은 꿈같은 거니깐.


몽환적인 보이스가 매력적인 크랜베리스의 메인보컬 돌로레스 오리 언더가 2018년 죽었다는 것도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좋아하는 벨기에 가수 애니 코르디 (Annie Cordy)가 죽었다. 는 것만큼 충격이었다. 내 삶은 그들의 노래로 공감받으며 풍족해지는데 정작 그 노래를 불러준 사람은 지금의 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그 음악이 슬프게 느껴진다. 고인이 된 어떤 이의 글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쓰인다.


이 글을 쓰며 남편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며 "크랜베리스의 드림스라는 노래가 왜 좋은 거야?"라고 묻는다. 남편은 "그냥, 좋은데 이유가 어딨어"라는 대답을 한다. 이런 걸 우문현답이라고 하나보다. '그렇지, 좋은데 이유가 어딨어.'

취향이 다른 사람과 함께하며 크랜베리의 드림스의 가사처럼 가능한 모든 방법 에서 내 삶은 매일 변하고 날 변하게 하는 당신은 내게 꿈, 내게 꿈.

남편의 크랜베리스 사랑이 끝날 때쯤 내가 다시 이곡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Oh, my life is changing everyday


In every possible way


though my dreams It's never quite as it seems


Never quite as it seems


'Cause you're a dream to me Dream to me


-  Cranberries의 Dreams 가사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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