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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Apr 29. 2021

금연을 시작합니다.

올해 63세인 내 엄마의 새해 계획은 언젠가부터 '금연'이었다. 우리를 키울 때만 하더라도 담배에 관대한 시절이었으나 여자의 담배에 있었어 만큼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인던 때였다. 언젠가 엄마에게 담배를 어떻게 피우게 됐냐고 물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 치매 수발할 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헛구역질만 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그때 큰고모가 엄마손에 쥐어준 게 담배였는데 담배를 피우고 났더니 속이 개운해졌다고... 그때부터 엄마의 흡연은 시작됐다고 했다. 우리를 임신하고 키울 때는 끊기도 했다는데 내게 엄마의 모습은 담배와 맥심으로 기억된다.


엄마가 60을 바라볼 즈음부터 연초만 되면 일출 사진과 함께 '금연' 두 글자를 적어 문자를 보내오곤 했다. 첫 해에는 엄마의 금연을 응원했고 두 번째 해엔 반신반의하면서도 지지했다. 세 번째해쯤 넘어가자 으레 오는 안부 문자 정도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딸들에게 엄마의 '금연'은 아무 의미 없는 새해 인사가 돼버렸다.


올 해초엔 남동생이 보건소 앞에서 엄마와 함께 '브이'를 하고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우리 여사님 금연 시작했습니다."

"어머, 엄마랑 보건소 갔어??"

"네~누님, 엄마 금연 주사도 맞았습니다."

엄마의 금연계획이 매년 실패하는 걸 보고 남동생이 엄마를 데리고 보건소를 찾은 거였다. 그러고 보면 엄마가 '아들, 아들'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아 웃음이 지어졌다. 매년 엄마 생일이면 고향을 찾아 미역국을 챙겨 주는 것도 아들이었고 엄마와 사진관을 찾아 젊은애들이나 찍을법한 이미지 사진을 찍는 것도 아들이었다.


얼마 전 엄마는 남동생이 해외직구로 사준 원피스가 한국으로 오고 있다면 외국 사이트에서 캡처한 사진을 보여준다. "예쁘네~"라고 대답했더니 "해외에서 오는 거라 오래 걸리는갑드라."라며 함박웃음이다. 남동생이 엄마의 금연을 위해 노력했음에도 엄마는 금연에 실패했고 담배와 라이터를 넣어 다니는 작은 손가방은 엄마 손에 들려있다. "스트레스받으면서 끊지 말고 피고 싶으면 펴~ 근데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피해는 주지마."라고 말하는 내게 "참~ 신기하재 부모가 둘 다 담배를 피우는데 딸도 아들도 담배 피우는 사람이 없다. 냄새도 싫다고 담배만 꺼냈다 하면 나가라고..." 엄마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정말 신기한 이야기인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흡연을 시작하는 것도 싫지만 언젠간 후회하고 금연을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 더 싫다. 나는 지금 다이어트와 폭식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내년 초에 엄마한테선 또 일출 사진과 함께'금연'이라는 문자가 오겠지 난 그 문자를 매년 반복되는 새해인사로 여길 테고 항상 1월만 빼곡하게 적는 다이어리엔 빨간 글씨로 '다이어트 목표 48kg'라고 적어 놓겠지... 남동생은 금연에 실패한 엄마에게 또 긍정의 응원을 보낼 테고 남편은 다이어트에 실패한 내게 "자긴 살찌면 귀여우니깐 괜찮아."라는 닭살 멘트를 날리겠지.


새해 계획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않고 매해 똑같은 계획을 세운다. 그래도 누군가는 그 계획을 믿거나 혹은 믿지 않아도 지지해준다. 그게 가족인가.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은 벌써 코 앞에 다가왔는데 올 해도 얼굴 보고 인사하긴 글렀구나 싶은 맘에 속상한 밤. 엄마의 하얀 담배연기가 조금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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