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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May 17. 2021

50+ 인생.

코로나 19 때문에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보통 쓰레기 버리기와 사람 없을 때 동네 산책 가는 정도가 전부다. 몇 주 전 밤에 자려고 누워 남편이 "요즘 너무 나태해지는 것 같아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드네..."라고 말했다. 계획했던 일들이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고 무얼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매일을 쉬면서 보내고 있으니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난 그런 오빠에게 "우리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매일을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잖아.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하는 요즘 난 더없이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라고 말해주었다.


퇴사 후 쉬고 있는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나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 둥 거리고 있는 게 조금은 답답해지려고 하던 참이었다.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면서 아파트 광고판에서 '다시 뛰는 감성, 디카시'를 봤다. 사진을 찍고 짧은 시를 쓰는 인문학 수업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사진 촬영이랑 시 쓰기를 알려주는 건가. 보내...'라며 광고지 사진을 찍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참가비(재료비)는 1만 원 일주일에 한 번 참석하는 10회짜리 수업이었다. 신청을 하고 만원을 입금했다. 그리고 저번 주 목요일 무얼 배우려나? 싶은 맘으로 '예술 공판장'이라는 복합 문화예술관으로 향했다.


들어서는 순간 '아차'싶었다. 평일 오전 10시 수업 시작이라 같이 강의를 듣게될 사람들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일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엄마와 같은 연배의 분들 사이에 앉아 있으려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강사님도 계속 '50+인생을 위한 수업'임을 강조해서 말한다. 1차시, 수업 방향과 디카시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2차시, 자기소개를 시작한다.

'나이는 노코멘트할 것, 자신의 취미와 자랑을 곁들인 긴 자기소개'를 해주세요.라고 먼저 말을 꺼낸 강사님은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생김새가 어떤지 고양이가 집에 오고 나서 집안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애견을 키우는 분들이 계시면 같이 반려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끝인사까지 50+이신대 요즘 젊은이 못지않은 감각으로 소개를 끝낸다. '아차'싶던 마음이 선입견에 갇힌 내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반성했다. 이어진 자기소개 진돗개를 키우고 사진 찍는걸 너무 좋아한다는 히피펌을 한 말괄량이 소녀부터  텃밭이있는데 그곳에 꽃밭을 가꾸고 싶다는 소녀감성 아주머니. 글쓰기가 좋아 시인이 됐다는 문학소녀까지. 저마다의 이야기를 꽃피웠다.


드디어 내가 나를 소개해야 하는 시간. "저는 50+세대는 아니지만 글 읽는 걸 좋아해 글을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신다고 했는데 저도 하던 일을 모두 마무리짓고 조금 이른 인생 2막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로 말문을 열었다. 자기소개가 끝나고 강사님은 "우리 모임 막내시네요. 어디를 가도 막내가 가장 이쁨 받는 거 알죠. 모두 많이 이뻐해 줄 거예요. 다른 분들이 50+라고 부담 갖지 말고 10회 꼭 참석하길 바랍니다. 환영합니다."라고 말한다.


처음 공간에 들어섰을 때 느꼈던 선입견 그것이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 왜 강사님이 '나이는 노코멘트할 것, 자신의 취미와 자랑을 곁들인 긴 자기소개'를 해달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사람은 모두 눈에 보이는 것 중 자신이 알고 있는 기초지식에 의해 50% 이상 판단하려고 한다. 나조차 상대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 기준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내게 '난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속내를 숨기고 포장하려고 했다는 걸 오늘 수업 첫날 들켜 버린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햇살이 미세먼지 층에 가려 뿌연 밝음만 아래로 비춰주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알아갈 사람들을 미세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 햇살만큼 모르고 있진 않은지 곰곰이 생각한다. 뿌옇고 흐린 사람들 그들에게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을 발견할 수 있도록 내 생각에 들어찬 미세먼지를 걷어 내는 연습을 조금 오래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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