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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May 18. 2021

일기콘 1일차 <나 원래 게으른 사람이야.(아니야)>

백수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회사 그만두면 하고 싶은 것 목록을 만들었더니 손바닥만 한 수첩 몇 장을 채웠는데 아직 시작한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니 살짝 우울해진다. 2017년부터 계획했던 세계여행은 코로나로 무기한 연기했으니 수첩 상위권에 적혀있는 두 번째, 세 번째 목록에 있는 것들을 해도 좋았으련만...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노동이라고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로 일 년의 1/3 이상이 날아가버렸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면 아직 1/2을 날려 보내진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저번 주부터 시작한 디카시에 이어 인터넷 플랫폼 '100일 같이 글쓰기' 콘텐츠 '일기콘'을 시작했다. 결국 게으름을 이 길 방법은 약간의 책임감이 아닌가 싶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내 일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소처럼 일했다면 이번엔 '약속'이다. 꼭 지켜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지켜야 하는 것.


사회생활을 할 때는 가끔 만나는 사람들이 "언제 밥이나 먹죠?"라는 무의미한 말을 하곤 한다. 난 "지금 당장 날짜를 잡죠?"라고 응수한다.  그러면"언제 한번 연락드릴게요."라며 진심이 담기지 않은 인사치레였음을 들킨 듯 내빼곤 했다. 그럴 때면 내심 속으로는 '저런 실없는 농인지 진담인지를 왜 던지지?'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이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난 적어도 그처럼 가벼워 보이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와의 약속은 모르겠지만 타인과의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내게 약속은 인간관계의 깊이, 혹은 순서를 정해놓고 달성해야 하는 과제가 아닌 말에 대한 책임이다.


일단, 100일 글쓰기를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여러 사람과 약속을 했으니 하루, 하루 글 쓸 주제를 찾아 흰 백지에 검은 글을 채워야 할 터인데 이게 또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될 것 같아 조금은 두렵다. 사실 매일 글을 쓰려고 도전했던 게 열 손가락을 족히 채우고도 남의 손가락까지 빌려와 샘을 해야 할 판이다. 첫 번째 도전은 '책 리뷰'였으나 다섯 번 정도 올리고 게시판을 닫았다. 그 외에 언박싱, 일상 글 등, 등, 등 시도도 많이 했고 중간에 포기했던걸 이어서 하기도 했는데 결국 며칠 하다 포기하고 말았다.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내 게으름 때문이었겠지만 난 그 이유를 항상 외적인 상황에서 찾았다. 책 리뷰를 쓸 때는 '너무 스포를 뿌리는 것 같아서...'라는 터무니없는 이유였고 일상 글을 쓸 때는 '매일 집에서 놀고먹고 항상 단조로운 일상인데 여기서 글의 주제를 어떻게 찾아.'라는 이유였다. 그래도'매일 글 안 쓰는'걸로 결정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와... 나 진짜 게으르네...'라며 약간의 자기반성을 하긴 했으니 게으름의 원인이 결국 내부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개월을 하다 말다를 반복했으니 지칠 법도 한데 나름대로 계속 쓸 방법을 찾고 궁리하던 끝에 글을 매일 쓰고 싶다는 사람들과 함께 으샤 으샤 해서 써보기로 '약속'까지 하게 됐다. 단군신화에선 100일 동안 동굴에 갇혀 쑥과 마늘만 먹었다는데 난 100일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뚝딱 거려야 한다. 성실한 사람은 못되더라도 게으른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은 곰이 사람 되는 것만큼 어렵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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