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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May 19. 2021

일기콘 2일차 <어른은 싸우면서 되는 거야.>

나와 남편은 아이 없는 행복한 삶을 꿈꾸며 딩크를 선택했고 내 삶에 대한 주체권을 가지고자 파이어족을 선택했다. 주변에서 그런 우리를 보며 '대단하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마음이 잘 맞으니 한 번도 싸우지 않았을 것 같다.'나... 부부 사이에 싸움이 빠질 순 없다. 나와 남편은 큰 싸움은 없지만 잔잔한 싸움은 자주 하는 편인데 어제는 잔잔한 싸움이 크게 번져 결국 산책을 나갔다가 따로 집으로 돌아오기에 이르렀다.


싸움의 원인은 보통의 연인, 부부처럼 아주 사소한 것이었는데 나의 말줄임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을 결기라고 하는 것과 같은 줄임말을 남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단어가 없는 것도 아니고 길지도 않은 말을 굳이 줄여서 말하는걸 본인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당신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경고를 몇 번 들은 참이었는데 결국 내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남편은 "아... 진짜 줄임말을 왜 쓰는 거야?? 좀 쓰지 마."라며 인상 + 명령조로 말했다. 순간 기분이 너무너무 상한 나는 남편의 손을 놓고 자전거 도로로 비켜서서 걸었는데 "자전거 도로로 걷지 마"라는 2차 공격을 받았다. 나는 길을 건너는 남편에게 "좌, 우를 왜 안 살피고 걷는 건데? 손들고 걸어"라고 맞대응했다. 그런 무의미한 공격이 5분 정도 이어졌고 화가 폭발한 남편은 "이제 그만 하자"라는 신호를 보냈으나 결코 끝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싫은데?"라고 대답했다.


남편은 갑자기 뒤돌아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뛰어가서 붙잡고 "뭐 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같이 걷고 싶지 않아"라고 대답하길래 "나 지금 집 갈 거니깐 오빠가 더 걷다 오던지 해!"라며 빠른 걸음으로 남편을 스쳐 지나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나간지 10분 만에 벌어진 일이다. 집에 도착해 남편을 20여분 정도 기다리면서 오늘 나의 유치함에 대해 반성도 했다가 남편에게 화도 났다가 하는 전형적인 '화난 상태'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화'라는 감정은 참 대단한게 온몸에 혈액순환을 돕는 기능 이외에 과거의 일을 기가 막히게 기억나게 한다는 점이다.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었는가 싶게 말이다. 어느새 오늘 있었던 일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저저번 달에 있었던 일 이 년 전에 있었던 일 하다못해 신혼여행에서 있었던 일까지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나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오빠가 나한테 서운하게 대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까지 이르렀다. 점 점 붉어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얼굴을 한채 거실에 앉았다.


'띠리릭'현관문이 열리고 오빠가 들어왔다. 팔짱을 끼고 흘겨보며 '나 화 아주 많이 났고 오늘 안 풀 거거든'이라는 표정을 시전 하는데 오빠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 웃어버렸다. 무장해제의 순간이다. 참, 부부 사이라는 게 사랑하는 사이라는 게 이런 건가? 싶다. 화가 나서 흥분한 동물도 이토록 쉽게 풀리진 않을 것 같아 허망한 순간이었다. 남편은 웃고 있는 내게 다가와 '미안하다'며 손을 잡았다. "자기 손을 놓고 그렇게 따로 가자고 하면 안 됐는데... 내가 생각이 짧았어... 절대 다음에 그러지 않을게..."라는 긴 자기반성을 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싸우면서 성장한다.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원하는 게 어떤 건지 알아달라고 울고 쓴다. 나를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들은 그런 내게 사랑과 정성을 주며 키워낸다. 그렇게 사회에 나와 아주 어릴 때는 또래와 다투고 조금 더 크면 보호자와 다투다 자립을 하게 되면 사회의 모순과 다투기도 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삶에게 떼쓰고 가끔은 토라지고 상처 주기도 한다. 그러다 상대를 이해하고 내 잘못을 반성하며 '용서'와 '화해'라는 걸 배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화'를 안고 태어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고등 감정을 더 잘 배우고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화'를 내지 않는 것보다 잘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한다. 화난 감정을 표현하고 그 상태를 잘 다스리면서 사람과 사회는 발전한다. 리나라도 신군부 집권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게 되자 민심의 화가 들끓었고 전남과 광주에서 5월 18일 민주항쟁이 시작된다. 그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판을 다질 수 있었다. 먼 타국 미얀마에선 현재 진행 중인 들끓는 민심의 . 크게는 개인이 국가를 바꿔버리는 화의 원천이 무엇일까. 개인의 이익이나 욱하는 마음과는 다르다. 다수가 공감할만한  불의와 맞서는 정의. 은 것을 향하는 마음. 그리고 평등의 쟁취인 가장 고차원적인 '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민심의 화가 승리하면 화해하고 용서하며 새로운 사회를 구축해 나간다. 화를 내는 대상에 따라 화를 내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용서와 화해로 성장하게 된다는 건 공통된 결과가 아닐까.


어젯밤 다른 날 보다 더 많이 대화했고 더 많이 포옹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망쳐버린 어제 저녁 산책을 씻어내기 위해 산책을 나가 하루의 첫 이슬을 맞으며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나와 남편은 죽을 때까지 싸우고 용서와 화해를 반복하며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터득할 것이다. 그러면서 언젠간 성숙한 어른이 되어 공동의 목표인 사랑을 더욱 공고히 다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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