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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May 20. 2021

일기콘3일차<고독 의자.>

이제 곧 두 돌이 되는 딸 쌍둥이를 보러 가는 날이다. 비록 아이를 나보다 사랑할 순 없을 것 같아 딩크를 선택했지만 그래도 여동생, 친구들의 자식은 귀엽다. 만나면 힘껏 안아주고 '귀여워', '사랑해'를 남발하는 나를 보면서 아이 엄마들은 한결같이 "네가 안 키워서 그래~"라고 말한다. 하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기저귀 가는 것만큼은 직접 하지도, 남이 가는 걸 보지도 못하겠다.


쌍둥이는 아주 친한 친구가 3년 전 결혼하고 얻은 아이들이다. 친구 남편이 아이들 첫 돌 때쯤 해외로 장기출장을 갔고 친구가 독박 육아를 시작했다. 그때 내가 자주 찾아가 아이들과 놀아 주 정이 들었다. 친구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고서부터는 발길을 끊었는데 마침 19일 친구 남편이 출근한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을 결정했다.


아이들 두 번째 생일이 곧 다가와 생일 선물로 똘똘이 카트(?)를 사서 향하는 발길이 왠지 설렌다. 흡사... 연애 초기에 남편을 만날 때 감정이랄까. 친구 집에 도착해 신발을 벗고 있는데 현관 입구에서 친구와 나를 반기던 첫째가 갑자기 '아아아아아~'소리를 내며 복도를 뛰어가 거실 놀이매트에 들어 눕는다. 거실에 앉아 있던 둘째는 첫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웃기 시작한다.

"야, 아기들 왜 이러는 거야??"

"흥분했네..."

"응??? 왜???"

"지금 좋아서 그러는 거야."

친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첫째 딸은 놀이매트와 소파를 왔다 갔다면서 '아아아아아'소리를 내며 뛰고 있다. 여기서 '아아아아'는 웃는 소리다. 둘째는 미소를 지으며 걸어와 내 바지 자락을 잡는다.

"와, 얘네들이 너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네."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 몇 분을 왔다 갔다 하더니 갑자기 책을 가져와 내 다리사이에 앉는다.

"읽어 달라는 거야?"

친구도 그 모습이 웃기다는 듯 "읽어 달라는데. 야~ 내가 네 덕분에 오늘 오랜만에 청소 좀 해야겠다."며 갑자기 청소를 시작한다. 난 꼼짝없이 앉아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또 읽고 첫째와 둘는 번갈아 가며 내게 책을 가지고 온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데?"

"계속??................"

"................... 진짜 많이 컸네 우리 쌍둥이 책도 읽어 달라고 하고. ^^^^^^^^^"

거의 한 시간째 앉아 책을 읽어 주고 있니 이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친구가 청소를 끝내고 볼풀을 거실로 가져와 풀어놓자 아이들의 흥미가 책 읽기에서 볼풀놀이로 옮겨간다. '휴, 다행'이라며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켜본다.


첫째가 볼풀에서 20~30분쯤 놀다 흥미를 잃었다는 듯 볼풀장을 탈출해 다른 장난감 사이를 기웃거리다. 거실 창 한쪽에 놓인 소파에 앉아 밖을 멍하니 바라본다.

"재 뭐 하는 거야??"

"그냥 저기 앉아서 밖을 보는 걸 좋아하더라." (참고로 친구 집 창에서는 교회가 보인다.)
"아... 투철한 신앙심인가...."

농담하는 내게 친구는 그런 농담은 하지도 말라는 손짓을 보낸다.

아이는 한참 동안 말없이 창 앞에 앉아 밖을 내려다본다. '고독을 즐기는 아기라니...'


그러고 보니 친구 집 거실에 아기 의자가 세 개가 있다. 놀이&공부 의자가 2개, 아기 소파가 1개 그걸 보고 있으니 소로의 책 [월든]에 나온 고독, 우정, 사교라고 칭한 의자 세 개가 생각났다. 내면에 집중하기 위해 속세를 버리고 월든 호수에서 2년을 자급자족하며 살았을 때 버릴 수 없는 삶의 자리 세 개 중 하나가 고독이다. 혼자 있는 걸 즐기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비워내는 자리. 소로가 놓은 의자 세 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마음에 지고 나오는 자리와 비슷하다.  타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 은 즐겁지만 외롭다. 진정한 우정을 나누며 위로를 받기도  고독을 통해 내면의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나도 우정이라는 의자에 앉아 힘들이지 않고 아이들의 이쁜 모습을 보며 행복을 맛보고 세상사에 지친 마음을 순수한 눈길로 위로받고 있으니 소로의 의자 세 개는 에도 기본적인 자리인 것이다. 이제 세상에 첫 발을 내디딘 아이가 그런 인간 삶의 자리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가만히 앉아 밖을 응시하던 아이가 고개를 돌려 웃었다. 고독한 시간을 끝내겠다는 신호다. 둘째가 '다다다'뛰어가 첫째에게 장난을 친다. 이제 우정의 자리 옮겨 앉는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는 아니었으니  '외로움이란 의자를 만들어 옆에 두진 않겠지.'라는 마음이 들어 가슴을 쓸어내린다.


거실에서 레몬과 토마토를 연신 썰어대는 쌍둥이들 사이에 앉아  "이모 토마토 주세요."라고 말한다. "아아어다어아아" 반으로 잘린 플라스틱 토마토를 입에 넣어 준다. "아~ 맛있다아~~" 맛있어하는 내 표정을 보고 만족한 미소를 보내는 아이들. 그 틈으로 바람이 분다. 월든 호숫가에서 불었을 잔잔한 바람이 아이들의 불그스레한 두 볼에 머물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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