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 마켓에 6개월 전에 올려둔 스피커를 산다는 연락이 왔다. 거래를 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집 앞 다이소로 향한다. 남편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하얀 푸들이 주인과 함께 내 옆을 지나간다.
"요즘 애견 키우는 집이 엄청 많나 봐. 우리 고양이 키우자"라고 슬며시 말을 꺼내본다. 오래전부터 난 고양이가 무지막지하게 키우고 싶었으나 남편의 반대에 부딪혀 데려오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남편에게 도대체 왜 반대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첫째, 자기 하나 수발드는 것도 힘들다. 둘째, 자기 하나 밥해 먹이는 것도 힘들다.'는 두 가지 이유를 댄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남편의 말에 반기를 들지 못한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거의 모든 집안일을 남편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고양이는 키우고 싶다. 결국'고양이 케어는 내가 하겠다. 사료도 내 용돈으로 사겠다.'는 절충안을 내놓아 보지만 '퍽이나'란 표정을 지으며 '하나도 안 들려'라는 몸짓을 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안 들리는 척 대답이 없다.
"아니, 아니, 오빠, 오빠"
"왜?"
"고양이 키우자."
"...."
이런 대화를 50번쯤 했을 때
고양이 키우자는 내 말에 "야옹~"이라고 대답한다. 뭐냐고 물으니 우리 집 고양이 소리란다. 어이가 없어 "나비야 촘 촘 촘"이라며 부르는 손짓을 했다. "야옹~" 다시 고양이 소리다. "오빠, 우리 집 고양이는 개냥이야?"라고 물었더니 조용하다. 오빠 개 같은(악센트는 '같은'에 주면서) 고양이 냐고."라고 다시 묻는다. 남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돼냥이란다. "뭐? 돼지 같은 고양이???"그건 생각할 것도 없이 나다. 내가 남편을 흘겨보자 웃는다. 난 "우리 집엔 고양이가 두 마리 있어 개~같은 고양이랑. 돼지 같은 고양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내가 돼지라 다행이라며 동물농장에선 돼지가 주인이고 개는 돼지 보디가드쯤은 되는 것 같다고 했더니 '그게 뭔데?'라는 표정을 짓는다. "오빠가 동물농장을 읽었으면 절대 나한테 돼지라고 안 했을 텐데 고! 마! 워!"라고 말해준다.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돼지는 중요한 역할을 갖는다. 동물을 속박하는 인간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이념을 심어준 동물도 메이저라는 수퇘지였으며(결국 젊은 수퇘지 나폴레옹에 의해 쫓겨나게 되지만...) 동물농장 7계명을 기본으로 하는 유토피아를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쯤 동물들의 독재자로 군림한 이도 나폴레옹이라는 수퇘지였다.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동물의 노동을 착취하고 마지막에는 인간과 같은 식탁에 앉아 술을 나누어 마시는 두발로 걷는 수퇘지는 '인간 같은 돼지, 돼지 같은 인간'으로 보인다. 실제로 돼지는 동물 중에서 높은 지능을 가지고 있는 편에 속하니 소설 속 돼지의 권력이 아예 허구처럼 보이지도 않는 것 같다.
남편이 내게 '돼지'라고 한 걸 보면 결국 우리 집의 절대 권력자는 '나'라는 걸 인정했다는거 아닌가 싶어 남편에게 '이제부터 내가 시키는 건 무조건 해야 한다.'라고 으름장을 놨더니 어이없는 표정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선 내가 대장이니깐 어쩔 수 없다.'라고 했더니 "자기는 돼지가 아니라 고양이인데 돼지 같은 거야."라고 대답한다. 허를 찔린 기분으로 '어버버버'하고 있으니 "자기는 고양이인데 돼지 같은 거고 나도 고양이인데 개 같은 거야. 그러니깐 결국은 둘 다 고양이인 거지." 남편은 명료하게 오늘의 대화를 정리한다.
나는 '아.... 둘 다 그냥 고양이구나?'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조지 오웰은 소설에서 혁명은 소수의 깨어있는 시민에 의해 시작되지만 결국 승리를 쟁취한 혁명가의 권력에 의해 '순간의 꿈'이 되고야 만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집 혁명가인 남편은 권력자가 되기엔 소심하고 그렇다고 내 명령을 순순히 들어주자니 못마땅하다. 결국 남편은 내게 '돼지가 될 수 없는 고양이(그냥 쌀찐고양이....ㅠㅠ)'라는 현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동등한 '부부'라는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해야 하는 거라고 말이다.
"남편, 근데 결국 우리 사람이니깐. 고양이 한 마리 키울까?" 잠자리에 들기 전 이불속에서 묻는다. '암, 쿨, 쿨, 쿨'요란하게 코 고는 소리, 일부러 꼭 감은 두 눈이 들어온다. "그래, 잠이나 자자." 조용히 불을 끈다. 오늘 꿈에는 고양이가 100마리쯤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