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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가나나 Feb 07. 2021

가난에 대하여.

나의 10대와 20대를 지배했던 가난은 무질서했으며 두려웠다. 20년을 가난하게 살았고 그 가난에서 탈출하면서 다시는 가난이라는 굴레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 아등바등 살았다. 소유해본 적이 없어 소유하고 싶었고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걸 소유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기억하고 싶지 않은 가난을 빼놓고는 유년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거다.


청춘을 함께 보냈던 친구 같은 여동생 집에 가면 나란히 누워 밤새 이야기를 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말 던지고 주워서 나눈다.

그런 밤중의 하루 추억의 단면을 나눈다.

"우리 참 대단해.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언니, 난 가끔 우리가 그때 좀 더 부지런했더라면... 그때 왜 그렇게 게을렀을까? 그런 생각 한다."

"그땐 그럴 수 있을 때였어. 모두 사춘기였잖아."

"그런가... 내가 고2 때 입시학원 6개월만 보내달랬는데 아빠가 돈 없으니깐 공부하지 말라고 했던 거 생각난다. 결국 다니긴 했지만..."

"진짜? 난 몰랐네... 나도 선생님용 문제집 주워서 공부했는데 뭘..."

"나도 그랬잖아 답 있는 거 주워서 답 지우고 풀고..."

"진짜 가난했다. 니 외상으로 이하고 온 거 진짜 웃겼는데ㅋㅋㅋ"

"그때 이가 엄청 심각했다니깐... 의사한테 엄마가 외상으로 할 수 있으면 하랬다니깐. 원래 안 되는 건데 치료 안 하면 안 되는 거라 해준다고 하고 해 줬지..."

"외상으로 한다고 생각한 것도 웃기고 그걸 해준 의사도 대단하고..."

항상 기억나는 건 전기가 끊겨 촛불에 의존해야 했던 검은 밤, 빨간딱지를 붙이러 온 법원 아저씨들, 기름이 떨어져 추위 속에서 지내야 했던 무수히 많은 겨울, '가난은 부끄러운 게 아니야'라며 나를 다그쳤던 많은 날들,  왜 우리 집은 그토록 가난했을까?라는 물음이 '나 때문인가?'로 향했던 이유 없이 불안한 계절들. 그런 모든 날을 함께했던 누군가와 나누며 과거를 털어내고 위로받는다.


"언니, 그래도 우린 행복했어. 아빠가 우리 데리고 놀러 엄청 많이 다녔잖아."

"그러게 우린 여름마다 바다 가서 텐트 치고 잤는데."

"우리 남편 그거 엄청 부러워해. 오빤 아빠랑 놀러 다닌 기억이 없대."

"우리 오빠도 그러던데."

찢어지게 가난하고 빈곤했던 무질서한 청소년기를 보내면서도 삐뚤어지지 않았던 건 아빠와 함께 보낸 지나치리 만큼 푸르렀던 여름 햇살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어둠이 내린 적막한 바다 위에 드리운 생선 비닐처럼 반짝이던 5개의 낚싯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픈 이를 치료할 수 없을 만큼 가난했던 우리는 그 가난 속에서도 아빠로부터 양분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행복한 기억보단 행복할 수 없었던 기억이 더 많았던 유년기를 보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항상 웃고 잘 먹고 잘 사는 걸 보면 나의 기억이라는 것이 '가난'이란 두 글자로 내 유년을 왜곡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항상 추운 겨울을 보냈던 고향을 다시 찾았다. 다시 찾은 고향의 겨울은 포근하고 따듯했다. 햇살을 받아 흔들리는 하얀 물결 그 파동으로 퍼져나가는 동그란 울림을 봤다. 어두운 바다를 흔드는 건 따듯한 햇살 한 스푼.


전영근 화백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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