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길의 애정 Jun 28. 2022

왜 나는 나를 찌르지 못해 안달일까

부추김의 쿡쿡

 익숙한 맛은 그 맛을 다 느끼기도 전에 다른 맛을 내놓으라며 떼를 쓴다.


 9개월 전 즈음인가, 입사 후 6년을 넘게 A라는 팀에서만 같은 일을 하다 전혀 다른 일을 하는 B팀으로 발령이 났다. A팀에서의 탈출을 너무나도 원했고, 썩 좋은 방법으로 벗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긋지긋했던 A팀에서의 탈출이 확정되는 순간, 교차하는 만감 속에 희열이라는 감정이 가장 선명하게 다가왔다. 


 희열은 아주 찰나였다. 발령이 나기 전 B팀의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며 나라는 인간에 대해 참을 수 없는 한심함을 느꼈다. 한계를 느꼈다. 이제 곧 전임자가 될 B팀의 C씨는 본인의 언어로, 매우 빠른 속도로, 매우 표면만을 훑듯이 알려주고 2주간의 휴가를 떠나버렸다. A팀에서의 역할이었던 '장(將)'은 B팀에서는 의미가 없었기에 처음 입사한 새내기 사원처럼 한동안은 크고 작은 실수를 번갈아 하기 일쑤였고, 그 뒤 찾아오는 절망감은 너무도 괴로웠다. '도대체 왜, 이해 자체가 안 되는 걸까', '이래서 가방끈이 중요하다는 걸까.'라는 말을 매 분, 매 초마다 입으로 뱉어내고 있었다. 반복되는 자책이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석 달가량 자책과 책망은 계속됐다. 


 C씨보다 훨씬 이전에 C씨의 업무를 했던 내 절친한 동료 D씨는 석 달은 누구나 힘들다고 얘기하며 누구보다 애써서 나를 달래줬다. 7년이라는 시간을 몸담은 이곳은 대중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유명 기업이지만 누구 하나 인수인계서 하나 남기지 않으며 구두로 아주 대략, 이 일을 수박도 아닌 금귤의 겉껍질만 핥을 수 있을 정도로만 업무 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인수인계를 마쳤다고 하는 배려가 없는 기업이다. D씨 역시 그룹사로 전적 발령이 나는 E씨에게 온갖 엑셀 단축키로 별다른 설명 없이 파일 작업을 하는 모습만 며칠 보고 E씨·내 전임자 C씨·지금의 내가 하는 업무를 했었기에 내 절망감을 너무나도 잘 이해했다. 석 달은 지독히도 힘들 것이고, 도저히 이해도 안 될 것이고, 이게 맞는지도 모를 거라며 그 기간을 잘 버티며 네 것으로 만들라고 했다. 

  D씨는 과연 경험자다웠다. 시 생길 대무자를 위해 나름대로 캡처와 설명을 깃들여 업무 자료를 만들었고, 자료를 만들다 보니 Rule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흐름과 방법을 깨치니 C씨는 이제 막 ㄱ, ㄴ, ㄷ을 배우는 사람에게 갉, 떫, 훑이라는 글자를 알려주며 모든 한글 글자를 넣되, 음률을 살려 시조를 지으라고 하는 격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바람과 빛과 흙과 물을 원동력으로 삼아 홀씨를 날려 정착해 씨를 발아하고 노란 꽃잎을 틔우는 민들레처럼 잘 자생할 수 있을 거라며 위안을 했다.


 알려주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수준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았지만 시간은 흘렀고, 내가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채워나가야 했다. 일의 특성상 정해진 시간 내에 꼭 진행이 되어야 하는 업무의 루틴은 더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시간에 쫓겨 일을 하던 그 기간 동안 난 남들의 눈에는 그저 '미친 듯이 바쁜 사람'이었다. 바쁜 게 아니라 몰라서 마음만 급하고 어디부터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던 건데 말이다. 이 맥락을 깨우치기까지 딱 석 달이 걸렸다. 


 석 달 동안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했고, 느닷없이 발생하는 변수는 대수롭지 않은 척 담담하게, 또한 매끄럽게 해결해야 했다. 물론 이 기간 동안 스스로에게 하는 힐난과 자책과 채찍질은 난무했지만 '새로움'이라는 색이 입혀지며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던 이 회사를 아직까지 더 다닐 수 있게 만들어줬다. 

  어림잡아 6개월 정도 더 지나니 이제는 반복되는 업무는 완벽에 가깝게 적응이 되었고, 익숙함은 같은 일을 더 빨리 끝내게 했고, 다음 업무까지 시간이 비어버리니 그 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을 찾지 못하니 시간을 버리고 있었고, 일 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지루함을 낳았다. 5시간의 시간을 도대체 뭘 하며 보내야 할까. 


 지금 이 고민을 듣는 누군가는 시간이 비는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꽤나 고역이다. 직장인에게 일이 없다는 건 들에 핀 잡초처럼 제거해야 할 타깃이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같다. 꽃이 아니라는 이유로 제거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고운 꽃이 되어야 한다. 


 당장 생각해낸 것은 e-learning이고, 다음 달은 두 개의 e-learning을 신청해놨지만 임시방편이다. 몇 시간이면 다 보는 분량이라 지속적으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다른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기에 업무를 더 받고 싶다는 면담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맞는 방향을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지루함과 익숙함은 이제 식상하지 않냐며 내 마음 안의 소리가 자꾸 나를 찌르고 있다. 또 하나의 날카로운 자극이 필요한 시점인가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