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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l 05. 2022

Shift + Delete

이제 새롭게 채워 넣을 시간

 눈만 뜬 시체처럼 보인다는 말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의 빈도수와 맞먹게 듣던 때가 있었다.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던 그때의 나는, 일생을 종교도 가져본 적 없는 사람이었지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기도를 했다. '오늘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가게 해 주세요.'라고. 그 '일'이라는 존재는 달갑지도, 반갑지도 않았지만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머리와 마음의 문을 두드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다른 형상으로 찾아왔다. 어느 날은 동료 직원으로, 어느 날은 팀장으로, 어느 날은 난생처음 나와 말을 섞어보는 누군가로.


 누구나 '기억'이라는 하드 디스크에서 단순히 'Delete'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Shift + Delete'을 하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매일 아침 습관처럼 기도를 하던 그 시절이 내겐 그랬다. 하루 중 눈 뜬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던 회사는 날 갉아냈고, 옭아맸다. 버틸 수 있다는 미련한 생각으로 꽤 오랜 시간을 버텨냈다. 아둔했던 나는 모든 일상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주 제대로 무너졌다. 결국 인사팀과 팀장 면담에서 '두 분은 제가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분들이에요.'라는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하고 발칙한 말을 뱉을 정도였으니까.


 처음에는 PMS증후군(월경 전 증후군)인 줄로만 알았다. 그 시절, 월경이 시작하기 열흘 전부터는 늘 나는 사연 많은 사람이었고, 세상이 유독 내게만 등을 돌렸고, 파고드는 외로움 속에서도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넘쳐나는 부정적 감정은 삶의 의지를 뺏어갔다. 댐에 생긴 작은 유격은 물의 엄청난 압력을 곧 견디지 못하고 더 큰 유격을 만들어 내, 둑이 터져버리게 한다. 터진 둑 사이로 거센 물살을 일으키며 보관된 물이 보호막을 빠져나가기를 수 시간. 시간이 지나면 곧 고요해지듯, 쌓이고 쌓인 스트레스는 한계점을 아슬아슬히 넘다 월경이 끝나가는 시점에는 잠잠해졌다. 사실 월경은 어떻게든 반복되는 이 상황을 우울증이 아니라고 애써 믿고 싶어서 만들어 낸 기제에 불과했다. 이미 스스로 우울증이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동안은 집에 돌아와 혼자 있을 시간이 무서워 일부러 밖을 돌아다녔다. 너무 쉽게 나를 놓을까 봐.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잡다한 생각을 잊어버리게 위해 따릉이를 빌려 자전거를 타고 멀리 다녀오기도 했고, 한강길을 따라 10km가 넘는 길을 걷기도 했다. 한강길을 따라가다 보니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 그나마도 얼마 하지 못했다. 그렇게 방에 나를 가뒀다. 따져보면 갇혔을 수도 있다.


 방에 있는 시간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고 멍하니 있는 시간과 도저히 참지 못하고 흉골이 아플 정도로 때리며 우는 시간 외에 다른 일은 생기지 않았다. 피폐해졌다. 나날이 정도는 심해졌다. 최후의 카드를 꺼낼 시간이었다.


'휴직'.


 그렇게  달하고도 15일을   있었다. 물론 회사에서는 휴직 기간에도 끊임없이 전화가 왔고, 모바일 메신저가 왔고, 복직 기간을 앞당길  없냐며 복직을 보채는 전화가 왔다. 45일이라는 시간은 확실한 전환점이 됐다.  나은 ,  나은 일상, 잡생각을 하지 않도록 바쁜 일상을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사, 대학교 복학, 취미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물론 복직하고도 다른 골머리를 썩게 하는 일이 있어 얼마간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하나씩, 조금씩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이사를 계획했다. 계약이 끝나자마자 새로 이사 온 지금의 집은 해가 뜨는 시간부터 해가 지는 시간까지 빛이 들어온다. 북악산 아래에 있기에 창문을 열어두면 아침에는 새소리가, 저녁에는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도 들리며, 창문 너머로 흔들리는 나무는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집이 주는 편안함은 컸다. 마음의 땅굴을 파고 싶어도 빛을 받으니 창문을 내다보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나가고 싶어져 활동성이 늘었다. 햇빛의 소중함을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대학교를 복학했다. 주경야독은 확실한 잡생각 브레이커였다. 방학을 제외하고는  틈이 없었고, 다른 생각을  틈이 없었다. 학위 취득과 바쁜 일상.  토끼를  잡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


 마지막으로 취미 생활을 찾아보기로 했다. 공연 보기, 여행, 사진, 산책. 가장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공연은 COVID-19로 공연 당일 취소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올해는 상황이 많이 좋아져 꾸준히 볼 수 있었다. 오늘 당장 내가 숨 쉬고 있고, 이 공연을 봤고, 이 배우와 이 가수의 음악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벅참이 더해지며 찾아오는 울림과 감동. 공연의 매력은 나날이 커져가는 중이다. 덕분에 티켓팅 후 공연일자를 기다리는 일이 큰 낙이 되는 중이다.

 마지막은 여행과 사진이다. 난생처음 혼자 뚜벅이 여행을 다녀왔고, 카메라 렌즈를 화각별로 구매했다. 먼저 여행의 경우 두려움을 이겨내며 낯선 환경을 적응해나가고,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불안을 잊었다. 올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혼자 담양을 다녀왔던 것, 여수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던 것을 꼽을 것이다. 여행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해나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틀에 갇힌 사고를 깨는 성숙함을 장착하게 했다. 여행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단단해졌다. 특히 사고가. 유연해졌고, 다양해졌다. 조만간 또 다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떠날 채비를 할 예정이다. 그때의 여행에서도 분명히 얻어 오는 것이 있을 거다.


 사진은 단순히 촬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Viewfinder 속의 세상과 사유를 도와주는 매개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잘 찍는 것'이 아닌 '잘 생각하며 느끼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세상을 담으며 다양한 생각, 다양한 경험,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 위해 노력 중이다. 촬영된 결과물은 구도와 색감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기에 보다 특별하다. 그때의 시선과 감정이 결과물에 담겨 있기에 내가 보는 내 사진은 한계가 없고 다채롭다. 사진을 남기기 위해 밖을 나가고, 걸으며, 눈에 담고, 마음에 기억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쓴다. 덕분에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담는 날은 우울이라는 감정을 느낄 여유가 없다. 요즘 사진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다.

 누군가 내게 이렇게 말했었다. '네가 이런 얘기를 남에게 한다는 건, 이미 네가 그걸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이렇게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우울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지금은 그것들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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