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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Jul 18. 2023

왜 이리 늦었어

       

  견딜 수 없이 심심해서 그렇게 생각해 본 것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저 혼자 번쩍 켜지는 현관의 센서등. 귀신을 보면 헛짓는다는 개가 있었으면 왈왈, 하고 짖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혼자였다. 정적에 가까운 안락한 실내 소음에 둘러싸인 생활은 분명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다만 물처럼 새어 들어오는 외로움이 있어서, 정적의 안락함은 점차 탁하게 휘저어졌다. 온라인 게임은 꾸준히 이어갈 의지가 없어서 하지 않았고 그건 커뮤니티나 SNS 활동 역시 매한가지였다. 요구 사양이 높지 않은 패키지 게임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건 성미에 맞았지만, 이상하게도 엔딩을 보면 게임 속 세상에서 내쳐졌다는 기분이 들어 언젠가부터는 최종장까지만 플레이하고 접었다. 마찬가지로 영화나 드라마, 만화를 볼 때도 결말을 앞두고 하차했다. 몸을 움직여 누군가를 만나기는 시간과 의지 둘 다 부족하여 쉽지 않았다. 동료 직원과 직장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떠드는 게 교우관계의 전부였다. 그들과 있으면 진이 빠져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는데, 가끔 붙들리다시피 그들과 저녁을 먹을 때면 사실 나쁘지 않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여간 그런 생활 속에서 홀로 번쩍 켜지는 현관을 바라본 것이었다. 대략 열한 시쯤인가? 저 혼자서 불이 켜지고 있었음은 진즉에 알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생각이나 감상을 불러온 적은 없었다. 어릴 때와 달리 귀신이나 영혼을 향한 믿음은 애써도 되살아나지 않으니까. 귀신을 부르는 아주 소박한 의식을 직접 벌여본 적도 있었음에도 그랬다. 밤중에 식칼을 물고 거울을 바라본다거나 손톱과 머리카락을 인형 속에 집어넣고 옷장에 숨어드는 식이었다. 물론 그런 의식은 한두 번 시도하는 것에 그쳤는데, 식칼을 문 자신을 바라보거나 떼어낸 신체 일부를 집어넣기 위해 멀쩡한 인형의 배를 뜯는 행위가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감수성을 훼손시키는 일종의 자학처럼 여겨져서 그랬다. 비틀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는 건 귀신과 마주하는 것보다 두렵고 내키지 않았다. 나는 울적한 마음으로 식칼에 묻은 침을 수세미로 닦았고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 골라낸 인형의 배를 실로 꿰매 주었다. 인형은 이제 손때가 묻어 조금 쪼글쪼글해진 모습으로 항상 내 이부자리에 게으른 백수처럼 누워 있다. 그러니까 귀신 따위를 연상할 리가 없었는데, 그날따라 문득 불이 들어온 현관을 보다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어쩌면 야근에 시달리는 귀신과 함께 지내는지도 모르겠어.’

  무심결에 스쳤던 이 상상은 꽤 마음에 들었는데 무언가를 찌르거나 부술 필요가 없어서 아무리 반복하더라도 마음이 비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멋쩍게나마 혼잣말의 구실이 생긴 셈이기도 했다. 아침에 “다녀올게” 말하거나, 밤중에 “고생했어” 하고 건네는 인사에는 유쾌한 구석이 있었다. 거기에 강박적인 규칙을 정한 건 아니었기에, 때로 홀로 켜지는 현관을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 내키면 뒤늦은 인사를 건넸다. 집안일에도 약간의 즐거움을 느꼈다. 매번 늦은 귀가를 하는 귀신 대신 해주는 청소와 빨래가 일종의 역할 놀이, 소품 따윈 없는 시시한 소꿉놀이의 일부로 여겨졌던 것이다. 귀신을 위한 이부자리를 마련하기까지 했다. 인사 이상의 구체적인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는데 거기에는 아무 이유가 없었다. 간혹 평소와 다른 시간에 현관이 번쩍, 하고 밝아지는 이상한 날에만 “오늘은 일찍/늦게 왔네?” 따위의 변형된 인사를 건네는 정도였다.     


  A에게 그 귀신 이야기를 했을 때 A는 가만히 현관을 응시하다가 내가 말한 시간에 불이 켜지는 모습을 보며 “정말 그렇네” 하고 말했다. A가 처음 내 집을 들르게 된 것은 언제나처럼 붙잡혀 회식에 끌려가게 된 어느 날이었다. 비가 꽤 내리던 날이었지만 기상예보에 따르면 아홉 시 쯤에 그칠 예정이라고 했다. 직장 동료들은 식당까지 향하느라 이미 흠뻑 젖었으면서도 비가 그친 뒤에 일어나자며 자리를 뜨질 않았다. 나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먼저 일어날 수 없는 신세였다. 술이 계속 들어가자 멍하니 식당 창문 너머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아홉 시가 가까워지는데도 비는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다. 결국 동료들은 하나둘 택시를 잡아 떠나려 했다. 문제는 주변이 전부 그런 직장인 투성이었고 도로에는 슬슬 얕은 개울 수준으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택시가 바로 잡히지 않았다. 나는 집이 가깝다는 이유로 계속 앉아서 택시를 타고 떠나는 동료들에게 조심히 들어가라고 말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A는 마지막까지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늦어갈 무렵에 느닷없이 호우경보라며 핸드폰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하며 도로를 보니 바퀴의 절반이 잠긴 승용차들 옆으로 겨우 버스가 끙끙 지나다니고 있었다. 취한 A는 하염없이 택시를 기다릴 뿐이었다. 내가 저것 좀 보라고 말하자 그제야 얼굴이 어두워져서는 허둥지둥 숙박 어플을 뒤지던 A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하루만 재워줄 수 없느냐고 말했다. 그나마 제정신을 붙들던 다른 직장인들이 잽싸게 예약하는 바람에 주변에 빈방이 없던 것이었다. 그렇게 나와 A는 우리 집에서 씻고 나왔다. 각자 들여다보던 핸드폰에서 폭우 피해 내용이 쏟아졌다. 어색함에 잠도 잘 오지 않아서 나와 A는 빗소리를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왠지 말이 통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건 A도 마찬가지였는지, 우리는 곧 좋은 사이가 되어 함께 술을 마시거나 영화를 보았다. A는 종종 내 집으로 왔다. A와 내가 조금 안 맞는 순간이 있다면, 번개처럼 느닷없이 번쩍 켜지는 현관 센서등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였다. 하루는 A가 거의 현관을 노려보다시피 해서, 나는 함께 사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재밌지 않느냐는 식의 농담으로 달래려 했다. A는 저건 고장 난 거라고 했다. 그런 셈이란 걸 나도 안다고 했다. A는 벌떡 일어나 현관 센서를 만지작거리더니, 다음 주쯤에 새 센서등을 사 와서는 갈아 끼워 버렸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열한 시까지 기다렸다. 현관이 계속 어두웠다. A는 자기 말이 맞지 않느냐며 뿌듯해했다. A는 그 뒤로도 내 집에 자주 들러서 함께 잤다. A가 이직할 때까지 그랬다. 이직한 A와의 연락은 점점 드문드문해졌다. 번거롭다는 마음이 들 무렵, 우리는 자연스레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다시 집은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 나는 간혹 열한 시 전에도 센서등이 켜졌던 일을 떠올리며 현관을 바라보았지만 센서등은 항상 정확하게만 기능했다. 불이 켜지지 않으니 혼자 소리 내 인사를 건넬 일은 없었다. 여전히 청소는 기꺼이 해냈다. 그것이 누구를 떠올리는 행위인지는 복잡했다. 많은 것을 빼앗긴 기분이라 기꺼이 입에 식칼을 물 수 있을 듯했다. 집이 아니라 마주 본 거울이 있는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무수히 번갈아드는 나의 얼굴과 뒤통수 사이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귀신을 찾아내도 좋을 정도였다. 외로움은 그리움과 손을 잡았고 그리움은 원망과 손을 잡았고 원망은 자조와, 자조는 아무도 달래주지 못한다는 외로움과 손을 잡았다. 그런 되먹임에 사로잡힌 어느 날에는 초연해 보려 노력했고, 어느 날에는 자포자기의 자세를 취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직원들 사이에서 나는 불편한 존재가 돼 있었다. 비교적 사람 좋던 동료 하나가 내게 넌지시 A의 안부를 물었을 때야 그걸 알았다. 싹싹하게 굴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들이 더욱 불편해하는 게 보여서 그만두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철벅거리며 돌아다니는 추억에 눈길을 빼앗겼는데 점차 내가 바라보는 것은 붉게 녹슬어가는 모서리였다.

  

  비가 꽤 내리는 날이었다. 나는 새빨간 두드러기로 뒤덮인 추억을 여지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추어서 불 꺼진 방이 구석구석 환해지는 모습이 창에 비쳤다. 온 세상이 컴컴해졌다. 가전제품들의 은은한 적색 혹은 녹색 불빛까지 전부 사라지고 그것들이 낮게 흘리던 소음마저 뚝 끊겼다. 창밖의 풍경 역시 누군가 검은 종이를 갖다 댄 것처럼 일순 컴컴해졌다. 세상이, 혹은 내가 완전히 끝장난 것일까 기대하는 사이에 현관 너머로 문을 벌컥벌컥 열고 쿵쿵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위아래로 정신없는 울림에 나 역시 몸을 움직였다. 핸드폰을 집어 플래시를 켰는데 눈을 찌르는 불빛에 드러난 멀쩡한 집 내부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문을 열고 복도로 고개를 내밀어 두리번거리자 비슷한 행동을 하는 같은 층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를 서성이며 서먹한 이웃과 낮게 수군거리는 중이었다. 방으로 들어가지 않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에 든 플래시 탓에 검은 윤곽으로만 보이는 그들이 나를 지켜주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내 뒤에서 말을 걸었다. 

  “벼락을 맞은 것 같아요. 건물이.”

  그는 굳이 플래시를 켜고 있지 않았고 내가 그에게 빛을 비춘 것도 아니었지만 다른 이웃이 켠 불빛 때문에 낡은 공포 영화의 귀신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른 것보다 냉장고가 빨리 작동돼야 할 텐데, 집주인이 기사를 불렀는지 모르겠어요.”

  그러자 다른 이웃이 나 대신 그에게 대답했다.

  “불렀대요.”

  “아아.”

  그는 그렇게 대꾸하고서 별 말없이 어정쩡하게 있던 내게 더욱 가까이 와서는 속삭였다.

  “혹시 요새 친구 데려온 적 있어요?”

  “예?”

  “누구 불러서 놀거나 그랬냐고요.”

  “아뇨, 아무도 안 부른 지 꽤 됐는데요.”

  “그래요? 밤마다 너무 시끄러운 데가 있는데 몇 호인지 모르겠네. 복도까지 막 울린다니까요?”

  영문을 모르겠어서 가만히 그를 바라보자 그가 부러 과장되게 속삭였다.

  “섹스요. 섹스!”

  “예에…….”

  “여기 사람들 중 하나가 광란의 생중계 섹스를 하고 있다구요!”

  나는 한심하다 생각하면서도 속으로 조금 웃었는데, 그가 ‘여기 사람들 중’과 ‘광란의 생중계 섹스’를 말할 때 손발을 하도 마구잡이로 휘젓는 게 귀신의 집에서 일하는, 분장도 지우지 못한 채 빵을 나누어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 아르바이트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또 복도에서 의미심장한 윤곽으로 보이는 이들 사이에 광란의 생중계 섹스의 주인공이 섞여 있다고 생각하자 나름대로 은밀한 유쾌함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 편한 마음이 된 나는 그에게 농담을 건넸다.

  “그쪽이면서 남한테 뒤집어쓰는 건 아녜요?”

  “아닌데요?”

  그때 복도 전등이 밝게 켜지면서 이웃으로 지내던 이들의 시시한 얼굴을 선명히 볼 수 있게 되었다. 농을 치느라 무심코 실실거리는 얼굴을 하고 있던 게 머쓱했던 나는 재빨리 표정을 풀었다. 더는 귀신의 집 아르바이트생 같은 모습이 아니게 된 그도 발끈한 얼굴을 하다가 민망함에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서 벗어난 우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슬금슬금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각 층의 문들이 닫히며 발생한 몇 번의 울림 이후로 건물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곧 내 신경은 빗소리를 향해 모여들었는데 집중할 것이 그뿐인 탓이었다. 다음 날부터는 은근히 광란의 섹스 소리를 기대하며 귀를 기울였다. 몰래 복도로 나와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광란의 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내 옆에 사는 그에게 소리를 언제 들었는지 슬쩍 묻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 그것 때문에 문을 두드리기가 난감해서, 우연을 빙자해 그와 마주쳐 보려 했다. 물론 종일 복도나 건물 정문에 서 있는 식으로까지 한 건 아니고,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릴 즈음에 문을 열어보는 식이었다. 어쩌면 당연하게도 그와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견디다 못해 그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욕먹을 각오를 하고서 밤 열 시쯤에 다시 시도해도 마찬가지였다. 옆집 문에다 시간 나면 연락을 달라는 메모를 한 종이를 붙이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 그 종이를 떼어낸 건 나였다. 종이를 쓰레기통에 구겨 버리면서 출근길에 떼어낼 걸, 하고 후회했다.

  누워서 별생각을 했다. 별생각은 유력한 미래에너지 후보처럼 아무리 반복해도 질리거나 익숙해지지 않는 무한동력을 지니고 있었다. 꽤 오래 눈을 감은 채였지만 잠은커녕 마음만 견딜 수 없이 아팠는데도 괜히 눈을 뜨기 싫었다. 눈을 감았던 시간이 아까웠다. 잠시 시간을 확인하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고 모든 신경을 요란하다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똑똑히 깨워둔 그 상태에는 기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어쩌면 드디어 선을 넘고 말았는지도 몰랐다. 마음이 비틀어져 자진하여 몸을 던진 어둠 속에서 그것을 끌어안고 떠밀기를 반복하는 못말리는 사람, 아무도 없는 곳에 숨어 누구 없냐며 외치는 꼴사나운 짓만이 희망인 그런 사람이 된 것이었다……. 이때 멀리서 서서히 스며들어오는 빛이 나타났다. 도무지 믿을 수 없어서 가만히 바라본 그 빛에는, 얼굴도 몸도 없는 빛이었지만, 왠지 등산이나 곤충채집 혹은 직거래 장소를 찾아가다 길을 잃은 듯한 어리둥절함이 엿보였다. 빛 역시 나를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눈이 부시다 못해 시려서, 고집을 꺾고 눈을 뜨자 눈앞에는 켜진 현관이 있었다. 

  현관을 밝히던 빛은 멀뚱멀뚱 서 있다가 깜깜해졌다.

  나야말로 멀뚱멀뚱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옷장 문을 열어 이불과 베개를 꺼내 바닥의 빈 부분에 다급히 깔았다. 너무 좌우 폭이 좁은 것 같아 내 이부자리를 끌어당겨 이불을 펼 공간을 마련했다. 잽싸게 손으로 이불 표면을 쓸어 주름을 폈다. 그러고는 내 이부자리로 돌아갔다. 어디를 보면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방금 펼쳐 둔 이부자리를 바라보며 뒤늦은 인사를 건넸다.

  “오늘 좀 늦었네.”

  발치에 뒹굴던 인형을 머리맡에 누이면서, 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왜 이리 늦었어?”

  기이한 후련함을 품은 묵묵부답 속에서, 어디선가 괴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대는 게 들렸다. 만취한 이가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서 홀로 보내는 기립박수 같은 소리였다. 그게 박수가 아니라는 것은 조금 이따 알게 되었지만, 나는 무언가 조금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사가 포근해져서, 앞으로가 걱정이지만 당장은 나쁘지 않았다.

  쿵쿵쿵!

  “시끄러워요, 시끄러! 그런 건 모텔에 가서 하라고!”

  쿵쿵쿵!

  쿵쿵쿵!

  쿵쿵……. 

  좋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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