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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Apr 20. 2023

강아지 재우기

  그토록 사 달라고 떼를 써도 꿈쩍없던 엄마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연모는 엄마의 핸드백 지퍼 밖으로 얼굴만 빼꼼 내민 강아지를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그건 유튜브나 친구네 집  혹은 거리에서 만난 강아지를 보았을 때 느낀 감정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감동적인 이유였다면 좋았겠지만, 연모는 강아지가 다소 못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강아지는 순종도 아니었다. 웰시코기나 포메라니안이나 골든리트리버가 아니었고 프렌치불독도 시바도 말티즈도 아니었다. 미술학원도 다닌 적 없는 아이가 엉망으로 칠한 듯한 무늬가 강아지의 얼굴부터 꼬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새까만 색도 아니고 뭔가 진흙 같은 색이었는데, 연모가 느낀 바를 가감 없이 표현하자면 똥색이었다. 엄마는 똥색 무늬의 강아지를 데려온 거였다. 연모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뭔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핸드백에서 내려놓은 강아지는 그렇게 살갑지도 않았다. 강아지는 바로 방바닥에 오줌을 누면서 연모를 흘끔흘끔 쳐다봤는데, 그때 연모는 강아지와 눈싸움하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강아지는 오줌을 밟고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그러자 거실 바닥에는 흐릿한 오줌 발자국이 새겨졌다. 엄마는 핸드백에서 애견용 샴푸를 꺼내며 연모에게 강아지를 씻겨 보겠냐고 물었다. 연모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앞으로는 네가 씻겨야 돼! 하고 따끔하게 말하고서는 강아지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대신 연모는 강아지의 오줌을 걸레로 닦아야 했다. 오늘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엄마의 잔소리까지 들었다. 연모는 오줌 냄새를 맡고는 으엑, 헛구역질을 했다.


  연모가 상상했던 강아지는 하얀 털뭉치의 모습이거나 토실토실 식빵의 모습이거나 긴 털을 휘날리며 웃음 짓는 모습이었지 똥색 무늬가 아니었다. 다시 생각해도 연모는 그런 강아지를 본 적이 없었다. 허리가 길거나 코가 길거나 혹은 납작하거나 주름이 자글자글한 강아지는 본 적이 있었지만 똥색 강아지라니. 그런 강아지는 우쭐한 마음으로 프로필 사진에 올릴 수도 없을 거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연모는 엄마한테 강아지를 다시 돌려보내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 순간, 연모의 무릎이 살짝 젖었다. 연모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오줌 발자국에 젖은 거였다. 연모는 강아지를 때리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곧 목욕을 마친 강아지가 엄마 품에서 수건에 싸인 모습으로 나왔다. 젖은 강아지는 더욱 형편없이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모는 강아지 구석구석을 닦는 엄마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결국 제대로 혼이 나고 말았다.


  엄마는 강아지에게 사람 음식을 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연모는 애초에 줄 생각이 없었다. 못생긴 강아지는 조용히 기다릴 줄을 몰랐다. 밥 먹는 내내 똥색 무늬의 강아지는 낑낑 울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쓰읍, 쉬이이, 같은 소리를 내 보았지만 강아지는 전혀 진정하지 않았다. 엄마는 앞으로 강아지 훈련도 함께 시켜야 할 거라며 연모에게 자꾸 강조했다. 갑자기 숙제가 산더미로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저녁을 다 먹은 연모는 바로 젤리를 꺼내 우물거리며 소파에 앉았다. 유튜브를 보려던 연모는 소파 아래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강아지의 시선을 느꼈다. 아무래도 젤리 때문인 것 같았다. 강아지는 소파도 오르지 못한 채 다시 낑낑거렸다. 문득 연모는 강아지 사진을 찍어는 보자고 생각했다. 강아지인 것은 짐작할 수 있는 대신 똥색 무늬가 잘 보이지 않게 찍는다면 당장 자랑하는 기분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 연모는 강아지를 들어 소파 위로 올렸다. 강아지는 연모를 보지 않고 젤리만 바라보았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젤리로 강아지의 시선을 움직여야 했다. 연모는 한 손에는 핸드폰을, 한 손에는 젤리를 들었다. 강아지는 얌전히 있을 줄 몰랐다. 사진에는 얼굴이 나오면 안 되는데 강아지는 핸드폰도 신기한지 종종 카메라를 향해 코를 들이밀었다. 그럼 연모는 강아지의 눈앞에 대고 젤리를 흔들어야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엄마에게 이 모습을 들킨다면 꽤나 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느라 연모를 바라보지 않았다. 연모는 못된 짓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강아지가 연모의 손에 들린 젤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연모는 젤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급히 몸을 틀었다. 손에 들린 젤리는 뺏기지 않았지만, 연모가 쳐서 떨어뜨린 봉지에 담겨 있던 젤리는 거실 바닥 곳곳으로 흩어졌다. 강아지는 놀라운 속도로 소파 아래로 몸을 날려서 마치 로봇청소기처럼 젤리들을 전부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았다. 연모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강아지에게 달려들었다. 그 소란에 결국 엄마까지 달려오고 말았다. 연모는 너무 서러워 울고 말았다.     



  강아지는 밤에도 시끄러웠다. 엄마가 바구니에 이불을 깔아 만든 집에 바로 들어갔던 강아지였는데, 막상 자기 위해서 불을 끄고 문을 닫으니 방문을 마구 긁었다. 아직 오줌을 아무 데나 누는 강아지를 이불 위에 재울 수 없다며, 엄마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강아지는 지치지도 않고 문을 긁고 냄새를 맡고 끙끙 울었다. 겨우 잠드나 싶던 연모는 끙끙 소리와 함께 넘어지는 꿈을 꾸며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결국 엄마는 연모에게 문을 열라고 했다. 조심조심 방문 앞까지 걸어간 연모가 문을 열자마자 작고 따뜻한 것이 발목을 스치며 지나갔다. 방에 들어온 강아지는 더욱 서럽게 울어댔는데, 연모는 문득 거실 바람이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겨울인데 거실에 혼자 잤다면 강아지가 춥고 무서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는 바로 엄마의 얼굴을 핥으며 낑낑 우는 모양이었다. 엄마는 내일 출근해야 한다며 연모에게 강아지를 안고 있으라고 했다. 연모는 강아지를 안고 누웠다. 강아지는 아무런 저항 없이 연모의 옆에 누웠다. 하지만 추운 건지 무서운 건지 몸을 떨고 조용히 끙끙 울었다. 연모는 강아지에게 이불을 덮어준 다음, 머리부터 꼬리까지 천천히 쓰다듬었다. 강아지가 조금씩 안정되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연모가 쓰다듬는 것을 멈추면 금세 끙, 소리를 냈다. 연모는 강아지를 계속 쓰다듬었다. 강아지는 쉽게 안정됐지만 금방 잠들지는 않았다. 목욕을 해서 그런지 강아지는 향기로웠다. 털은 보드라웠고, 몸은 따뜻했다. 왠지 강아지가 잠들 때까지 쓰다듬어주지 않는 것은 못된 짓 같았다. 매일 밤마다 강아지를 이렇게 쓰다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너무나 막막했다. 매일같이 졸음을 참아야 하는 걸까?


  강아지가 색색 소리를 내며 잠들었을 때, 연모는 자세가 조금 불편했다. 강아지를 쓰다듬기 위해 왼쪽으로 누워 있었는데, 어깨를 누른 자세가 갑갑했다. 그렇지만 편하게 눕기 위해 움직이다가 겨우 재운 강아지를 깨울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강아지가 다시 끙끙거린다면? 연모는 아주 천천히 자세를 바꿔야만 했다. 자세를 그렇게 바꾼 적이 없어서 너무 불편했다. 겨드랑이에서 뜨겁게 열이 나는 것도 같았다. 겨우 편하게 누운 연모는 몸을 덮었던 이불도 천천히 걷어낸 후에야 잠들 수 있었다. 잠들기 직전, 연모는 자기도 모르게 잠든 강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잠든 연모는 가슴 위에서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똘똘 뭉쳐지는 것을 느꼈다. 연모는 그걸 바라볼 수 있었는데, 작은 공만 한 것이 야광 스티커만큼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게 가슴에서 배 쪽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작고 따뜻한 손이 연모를 쓰다듬는 것 같았다. 연모는 그 작고 포근한 빛이 왠지 모르게 슬프게도 보였다.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연모는 자신도 그 빛을 쓰다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연모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빛은 연모를 희미하고 따뜻하게 비추었다. 가슴에서 배 쪽으로, 계속 아래로 내려가던 빛은 어느새 발끝을 지나며 멀어지고 있었다. 연모는 그 야광 스티커만큼 희미한 빛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다만 몸은 아주 따뜻해졌다.



  그리고 점점 축축했다?     



  연모는 일어나자마자 이불을 걷었다. 미지근한 지린내가 훅 밀려들었다. 이불과 잠옷과 팬티가 전부 축축했다. 엄마는 옆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창밖으로 푸른빛이 옅게 도는 새벽이었다. 연모는 이불에 오줌을 쌌음에도 들키지 않았던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팬티를 갈아입은 뒤 이불에 수건을 깔고 다시 잤더니 엄마가 전혀 알아채지 못한 날이 있었다. 연모는 엄마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끙끙, 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새벽이었기에, 연모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똥색 무늬 강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강아지는 마치 자신을 두고 가지 말라는 듯 끙끙 울기 시작했다. 곧 코골이를 멈춘 엄마가 뒤척였다. 연모는 강아지랑 같이 끙끙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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