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현 Feb 21. 2023

인류멸망 고양이

    원룸 천장이 뜯어졌다고 집주인이 세윤을 찾아와 노발대발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하며 차를 타고 도망쳤으니까. 그렇게 허겁지겁 움직이면 고양이들이 쫓아올 텐데 괜찮을까. 세윤은 뜯어진 천장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아파트만 한 고양이들이 유유히 동네를 누비는 게 보였다. 몸집이 커진 건 세윤과 함께 지내는 방울이도 마찬가지였다. 세윤은 방울이의 품에 숨어 있었다. 애웅, 애웅, 하고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핸드폰이 울렸다. 같이 쭉쭉이 얘기 나눠서 즐거웠어요, 로 끝나는 회사 대표의 메시지였다. 마지막까지 이 사람의 연락을 받아야 한다니. 세윤은 핸드폰을 뒤집어두고 텔레비전으로 눈길을 돌렸다. 고양이와 전면전을 펼치는 미군의 모습이 전 인류의 희망 속에서 생중계되고 있었다. 탱크를 콕콕 박살 내는 고양이 머리 위로 낙하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고양이가 앞발로 그것을 후려치자 엄청난 폭발과 함께 버섯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곧 화면에 나타난 것은, 두 발로 서서 버섯구름을 걷으며 다가오는, 천수관음처럼 수많은 앞발이 돋아난 고양이였다. 곧 중계 화면은 노이즈로 가득해졌다. 고양이 빼고 다 죽어, 생각한 적 있었지만 안 죽어도 되는 사람까지 죽으란 뜻은 아니었다.

  그럼 누가 죽어도 될까, 생각하던 세윤은 핸드폰을 집어서 대표님 고양이 한번 보고 싶어요, 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 회사에서 만나요! 하는 대표의 답장이 곧바로 돌아왔다. 세윤은 방울이의 털을 잡고 목덜미까지 기어올랐다. 머쓱하게 야아옹! 외치자, 용케 알아들은 방울이가 건물을 부수며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대표는 중증의 고양이 애호가였다. 신입사원이던 세윤은 그걸 몰랐다. 그 중요한 사안을 인수인계 받기도 전에, 대표는 이미 세윤의 핸드폰 바탕화면의 방울이를 발견해 버렸다. 대표는 틈만 나면 세윤에게 고양이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도 쭉쭉이라는 고양이를 키우는데 사정이 있어 보여줄 수는 없다며 아쉬워했다. 심지어 주말에도 고양이 관련 유튜브를 공유했다. 무엇보다 난처했던 것은, 대표가 자신의 권한으로 세윤을 야근에서 빼버린 일이었다. 세윤 씨는 방울이 돌봐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게 이유였다. 곧 세윤은 회사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달리는 방울이의 머리 위에서, 세윤은 저도 모르게 털을 붙든 주먹을 꽉 쥐었다.



  먼저 도착한 세윤은 방울이와 함께 빌딩 사이로 숨었다. 대표를 발견하는 즉시 방울이에게 잡아먹도록 할 예정이었다. 대표의 고양이가 있더라도 방울이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방울이는 동네 대장 고양이 출신이었으니까.

  그때 세윤의 등 뒤로 거대한 그림자가 나타났다. 몇 걸음 물러나고서야 대표와 그의 고양이가 보였다. 처음에는 두 발로 선 고양이 머리에 대표가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저 고양이가 거대한 거였다. 방울이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고층 빌딩보다 높은 고양이 머리에 앉은 대표가 이쪽을 내려다보며 해맑게 손을 흔들었다.

“놀랐죠? 우리 쭉쭉이는 사바나캣이거든요. 근데 국내법상 불법으로 들여온 거라 아무도 보여줄 수가 없었어요.”

  방울이가 몸을 움츠리고 벌벌 떠는 게 느껴졌다. 이런 게 어딨어. 마지막까지 너무 불공평하잖아. 세윤은 망연자실했다. 거대한 사바나캣이 포효하듯 하악질을 했다.




-독립문예지 한다(https://tumblbug.com/magazinehanda?ref=%EA%B2%80%EC%83%89%2F%ED%82%A4%EC%9B%8C%EB%93%9C) 수록작품-

작가의 이전글 붕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