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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Jan 07. 2023

붕괴


  죽을 것이다, 생각하며 떠올린 곳은 한강의 어느 대교였다. 자살 희망자들의 명소.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 국가에서 자살 방지 문구까지 새겼던. 드디어 그곳에 갈 때가 되었다. 결심하자마자 관장약을 구해 항문에 주입했다. 그러고는 금식을 유지하며 뚝뚝 끊어지는 묽은 변을 계속 보았다. 삐져나온 변이 변기로 떨어지지도 못하게 되자 흐르는 물과 손가락으로 항문 안쪽을 깨끗이 닦았다. 물론 여전히 더러울 테지만 그런 불가능에 집착하지는 않았다. 와중에 동네 미용실에서 파마했다. 운 좋게 아무도 앉아 기다리지 않는 미용실이었다. 나는 시원하게 이마를 깔 수 있는 형태를 부탁했고, 한 시간 정도 걸려 파마는 완성되었다. 다음 날까지는 샴푸 하지 마세요, 당부한 미용사는 머리를 어떻게 만지면 되는지 멋지게 보여주었다. 구불구불해진 머리가 손가락을 타고 탄력적으로 흔들렸다.

  결심한 지 하루가 지났을 때, 목욕재계를 마치고 온몸에 향수를 뿌렸다. 배운 대로 머리를 손질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바깥에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다면 다시 해보려 머리를 감았을 거였다. 옷을 고르고 머리를 만지는 데 한 시간이나 쓰다 보니 조금 더웠다. 경이로운 열기였다. 일정한 소음을 내거나 내지 않는 작은 집의 가구들의 영혼이 느껴졌다. 그리고 집을 정리할 청소부들에게도 미안했지만, 누구보다 이 가구들에게, 많은 사과와 작별을 남기고 싶었다.

“안녕.”

  내가 말하자 다들 소리 없이 손을 흔들었다. 문을 열었다. ‘문을 열었다’는 표현과 현상이 믿을 수 없어서, 감각과 판단을 의도적으로 지연시켜보려 했지만 나는 가차 없이 문밖에 있었고 등 뒤로 문은 굳게 닫혔다. 걸음이 신기했고 탄생도, 건축도 마찬가지였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에게 정말 삶이란 게 있는지, 실은 어느 비밀창고로 돌아와 충전을 마친 뒤 각자 할애된 시간과 동선에 맞춰 움직이는 건 아닌지 하는 철 지난 망상에 사로잡힌 채 걸었다. 간판이, 자영업자가 놀라웠고 아이들과 노인이 놀라웠다. 지하철에 타자 이처럼 많은 생이 한 공간에 있음에 경탄했다. 나는 어설프게 만진 머리를 창에 비추어 보며 최대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움직임과 안내방송도, 머리 위로 쏟아지는 온풍마저 마술 같은 일이었다. 그렇게 세상을 처음 마주하듯 속으로 감탄하며, 한 번도 죽음은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자 위로받지 못할 슬픔마저 기뻤다. 나오기 전 뿌렸던 향수 냄새가 어깨를 감쌌다. 문이 열리고, 내가 먼저 내리자 밖에서 기다리던 이들이 열차로 들어섰다.

  대교로 향한 이유는 간단하다. 정말로 죽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죽기 위해서는 이런 감정의 격정에 물을 끼얹어야 했다. 이런 도취의 흐름은 세상을 잘 구성된 유원지로 만들어 죽음 바로 앞까지 나를 손쉽게 운송해내지만, 정작 죽음 직전에 다다라서는 다른 엉뚱한 감동을 선사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역으로 수행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이때 난간에 새겨진 글귀라면 그 감동에 물을 끼얹기 충분할지도 몰랐다. 자살 방지 기능에 실패한 그 난간이 마지막으로 내 등을 떠밀 수 있기를 바란 셈이었다.

  대교에는 예상보다 사람이 많아 난감했다. 무엇보다 다리를 오가는 대부분이 인부들이었고, 그들이 어설픈 자살 방지 문구가 새겨진 다리 난간을 보강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이미 기존의 난간 뒤에 새로운 난간이 세워져 있었는데 높고 안쪽을 향해 큰 곡선을 그린 모양이 자살 희망자들의 결의를 시험하려는 장치처럼 보였다. 마지막 힘을 짜내 죽음을 시도하려는 이들을 자격 미달자로 양성하여 결국 살아 돌아갈 수밖에 없도록 하기 위한. 이미 이중의 난간이 세워진 탓인지 오가는 행인을 통제하지도 않는 인부들은 낮은 난간에 새겨져 있던 자살 방지 문구 위로 약품을 칠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지나온 난간은 아주 깔끔하게 칠해져서 이전까지의 불명예를 안고 있던 문구는 온데간데없었다.

  다리를 따라 걸으니 아직은 지워지지 않은, 이를테면 ‘힘들지?’ 따위의 문구가 보였다. 대교 입구에서 중앙으로 향할수록 난간의 문구는 일종의 고취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부담스러울 정도의 표현을 남발하고 있었다. 누구도 감히, 심지어는 스스로에게도 전할 수 없을 말들이 공무원 혹은 설계자들에 의해. 처음에는 저들끼리 좋다며 문구를 선정하는 모습을 떠올렸지만, 이내 어떻게든 조건에 맞추기 위해 권태로이 머리를 쥐어뜯는 모습이 얄팍한 문구 이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도 나는 거기서 위로 비슷한 것을 느꼈는데, 짜증 날 정도로 얄팍한 문구들, 그 낱말의 형상들이 오랜 세월 속에 지워지고 가려지고 깎여져 있어 많은 것을 소진한, 믿지 않음에도 맡을 수 있는 유일한 배역이기에 외로이 같은 대사를 반복하여 되뇌는 무기력한 배우처럼, 혹은 애써 어둠을 외면하는 음울한 선교사처럼 보여서 그랬다. 그것들이야말로 누구보다 소진되어도 강제로 가동할 수밖에 없는 자살 자격 미달자, 혹은 박탈자였다. 대교의 중간지점에서, 과학적 설계를 거쳐 수많은 구조물과 차량, 사람을 마술처럼 짊어지고 있는 그곳에서, 뻗은 시야와 발아래의 강이 불러일으키는 충동 역시 이중의 난간에 의해 통계 혹은 그 기대를 업고 지탱되는 그곳에서, 나는 효능을 입증하는 데 실패한 문구의 마지막을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문구는 난간과 함께 뜯어지는 게 아니라 그저 색칠의 방식으로 사라졌고, 그건 사실상 안대를 씌우거나 칠흑의 공간으로 유폐시키는 것과 다름없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 대사가 영원히…….

  외로움에 몰입하던 나는 죽음으로 향하는 마음이 뒷전으로 밀리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당장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기보다는 그 감정에 오랫동안 몸을 담그고 있길 원하는 쪽이었다. 자리에서 한발 물러섰다. 인부가 내 앞의 난간을 칠할 차례가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딪치지 않을 간격을 유지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문구가 감쪽같이 사라진 난간에는 약품이 덜 말라 약간의 광택만이 흘렀다. 나는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새 문구가 사라져 단순한 직선 무늬로 전락한 대교 난간은 단조로웠다. 그러나 특수 외벽으로 보기 좋게 가린 교도소 내부 복도를 가로지르는 기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자리를 벗어나는 편이 좋았다. 이런 불쾌한 감정은 나를 가라앉게 만들어서 난간을, 지금처럼 보강되기 전이더라도, 넘어갈 힘마저 전부 앗아갔다.

  대교의 중간지점에서 멀어진 곳의 난간의 표면은 겉보기에는 아주 잘 마른 채였다. 나는 각자 일에 열중하는 인부들 몰래 손으로 그곳을 더듬었다. 잘 칠해진 표면은 나름 매끈했고 그 아래 가두어진 문구의 부피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난간의 이곳저곳을 건드리던 나는 그 뒷면까지도 고개를 내밀어 보게 되었는데, 재밌고 또 다행스럽게도 오래된 대교 난간의 뒷면까지는 색칠되지 않아서 낡은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 곧 이 대교 전체가 하나의 그럴듯한 드라마 혹은 영화 촬영 현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것 같았고, 꽉 막힌 감옥 같던, 빛 볼 새 없던 문구들이 사실은 뒤통수로는 일출과 일몰 중 일부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반신욕의 방식으로 몸을 담그던 외로움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만 문구들이 자유로이 폐기되지 못한 상태로 일출 혹은 일몰을 영구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숨구멍을 등진 채 끝없이 중얼거리리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고, 못된 장난 혹은 심술 아니라면 시위나 나아가 범죄까지 저지르고픈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어떤 인부의 제지도 겪지 않은 채 난간 뒤편을 바라보던 나는, 어쩐 일인지 헐거이 연결된 나사를 두 개 찾아냈다. 손으로 돌려 보자 아무런 저항 없이 회전했다. 나는 두 개의 나사를 손에 쥐어 주머니에 넣었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에 제자리에서 쿵쿵 뛰어 보았지만 대교는 여전히 견고했고 나 따위보다 무거운 자동차들이 등 뒤로 오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안도한 듯 나를 반기는 가구들을 바라보며 머쓱하게 옷을 갈아입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나사는 정말로 거기 있었다. 만질 때마다 녹이 묻어나왔다. 얇게 말라붙은 피처럼도 보였다. 그것의 단단함과 무게와 여태 수행했던 역할을 떠올리자 이 모든 것이 다시금 놀라웠다. 죽으러 갈 힘이 전부 소진됐음이 느껴졌다. 쏟아지는 잠에 기꺼이 쓰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대교가 붕괴했다. 전 국민에게 충격을 안긴 해당 사건의 유력한 원인으로 부실 공사의 가능성이 지목되었을 때, 나는 그제야 서랍에 잠들어 있던 나사 두 개를 떠올릴 수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바로 그 나사를 꺼내자 묘한 전율이 일었다. 인터넷에서는 정중앙에서부터 무너지는 대교의 모습이 촬영된 CCTV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중이었다. 나는 천박한 호기심 속에서 해당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서 보았다. 유포되는 영상은 CCTV뿐 아니라 인근 공원에서 드론을 띄우거나 스마트폰으로 서로를 찍던 시민들의 것들도 포함한 것이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수많은 근거는 고작 나사 두 개 따위가 원인이 아님을 명백히 밝혀냈다. 대충 생각해도 내가 풀어낸 나사는 난간의 것이지 교각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인의 미세한 요인 중 하나가 나의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간절히 자리했다. 그러니까 간절했다. 참사와 잔해가 가라앉거나 떠다니는 한강 표면에서 휘고 비틀어진 난간이 보였는데, 몇몇 영상에서는 유약이 벗겨져 문구 일부가 드러난 모습이었다. 나는 무엇보다, 모든 걸 앞서서, 불경하게도 그들에게 주어진 해방에 기뻤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더는 죽음에 충동을 느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내게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며, 얼굴이 바뀌었고 전체적으로 건강한 심리 상태를 얻어낸 듯하다며 잘된 일이라 말해 주었다. 나는 이에 함구하는 게 최선임을 알았다. 외로웠고, 한편으로는 영원한 어둠 속에 가두어진 신세였다. 다만 내 뒤통수에 일렁이는 빛이 있어서, 그 강렬한 빛을 쬘 수 있기만 하다면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그래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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