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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11. 2023

[단편소설] 사랑과 흔적(1)

  잠에서 깨어난 나는 흩어진 꿈의 잔해를 모아보려 했다. 형태나 촉감 따위라도 떠올리기 위함이었는데 그것들은 일순에 뿌연 곡선으로 기화하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다. 몇 차례 반복해도 마찬가지였다. 꿈이 있었다는 증거는 얇게 발린 기묘한 감정만이 전부였다. 당혹, 슬픔, 외로움……. 눈을 뜨자마자 어느 거대한 존재에게 저주를 퍼부었는데, 그게 신인지 거인인지는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의 크기라 알 수 없었다.


  머리맡에 두었던 휴대전화 액정을 두드렸다. 새벽 세 시였다. 저녁 동안 화분을 갈며 흙을 새로 채웠는데, 식물의 이파리까지 일일이 닦아 주는 생색을 낸 탓인지 피곤했다. 잘 자던 도중에 깨어나니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다시 잘 수 있으니 좋은 일이지, 하고 생각하려 애썼지만 바로 잠들 수 없었다. 도대체 어떤 꿈이었기에 이리도 뒤숭숭한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산소가 뇌 사이사이까지 지나며 잡념을 밀어내 머리를 맑게 만들지도 몰랐다. 숨을 내쉬었다. 어떤 효능도 없이 코만 간지러웠다. 실망한 나는 습관대로 손을 코에 가져가서는 흥. 흥. 하고 콧바람을 불었다. 손끝으로 코털을 잡아내 단숨에 뽑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부터 코털이 삐져나오는 일이 잦았다. 자르지 않고 바로 뽑았기 때문이라며 주변에서 핀잔을 준 적도 있었다. 뽑다 보면 자라는 방향이 바뀌어서 계속 보기 흉하게 자라난다고. 또 털이 뽑힌 모공은 병균이 몸 내부로 침입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그렇게 감염되어 죽기도 한다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에게 정말로 그렇게 죽은 사람이 주변에 있기는 한지 묻고 싶었다.


  털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화장실 불을 켜고 세면대 앞에 서서 거울로 얼굴을 내밀었다. 털이 어떻게 삐져나왔는지 궁금했고 정말로 습관 때문인지 판단하고 싶기도 했다. 살펴보던 나는, 뽑으면 죽을 수도 있다던 코털 이야기가 또렷해짐을 느꼈다. 콧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털의 모습은 여간 불길한 게 아니었다. 피 칠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붉었는데 심지어 굵직하기까지 했다. 이런 걸 뽑으면 아주 큰 구멍이 생겨 세균 등이 손쉽게 침입해서 날 죽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고 적당히 잘라 털을 방치하기도 내키지 않았다. 털이 계속 생장하여 굵어진다면 구멍도 함께 넓어지는 셈이니 언젠가 훨씬 위험한 꼴이 될지도 몰랐다. 단숨에 털을 뽑고서 바로 연고로 구멍을 메우기로 했다. 물론 깨끗이 씻은 손으로 말이다.


  거울에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며 엄지와 검지를 코앞으로 가져가다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털이 콧구멍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굵직한 털은 들숨 정도로 빨아들여지거나 뒤덮은 손의 그림자 아래로 감춰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말 그대로 쏙, 하고 들어간 것이었다. 이때 간지러움이 코 입구에서부터 깊은 안쪽까지 번져갔는데, 그 움직임이 부산스럽지 않고 통제를 받은 듯 일사불란했다. 어떤 예감이 들었다. 나는 손을 허공에 정지시킨 채 눈동자만을 움직여 그 안쪽을 살펴보았다. 콧구멍 안쪽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작은 지네 한 마리였다.


  순식간에 온갖 방법을 떠올렸다. 코를 세게 푼다거나 안쪽에 물을 들이붓는다거나 큽, 하고 입으로 넘겨 가래처럼 뱉는다거나 제자리에서 뜀박질을 반복하여 떨어뜨린다거나 이를 악문 채 코를 강하게 잡아 사정없이 비틀어댄다거나…… 끔찍한 상상이 동시에 뒤따랐다. 대개는 지네가 식도로 넘어가다 점막을 강하게 붙들며 강제로 기도 너머로 달려드는 결말이었다. 나의 몸 내부 곳곳에 독니를 박아넣을 가능성은 모든 과정에 포함돼 있었다. 코를 잡아 비틀어 안쪽 지네를 죽이려는 상상은 차마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짓눌린 지네의 신체가 벌일 최후의 발작을, 또 그렇게 죽은 지네의 체액과 껍질이 콧속에 묻고 흐르고 박히는 모습을, 거기다 호흡을 따라 뒤쪽으로 넘어갈 작은 파편들의 경로를 생각하는 것까지. 결국 지네 스스로 콧구멍 바깥으로 나오게 할 방법이 필요했지만 마땅한 수가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때 지네가 콧속에서 수많은 발을 움직였다. 격렬한 움직임이었다면 자리에 쓰러지거나 엉엉 울어버렸을 텐데, 움직임은 자세를 바로잡기 위한 제자리걸음 정도에 그쳤다. 그런 자극에는 곧 익숙해졌다. 좋은 일은 아니었다. 지네의 작은 움직임에 익숙해져 덜 끔찍한 마음이 된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이성을 놓아버릴 기회가 사라진 셈이기도 했다. 대신 지네가 무언가를 불편해하는지도 모른다는 의문에 이를 수는 있었다. 배가 고픈가? 나는 화장실 벽에 붙은 나방파리 한 마리를 발견해냈다. 폭발적인 증식 능력 탓에 온갖 위험에는 속수무책이 된 이 작고 둔한 털복숭이 날벌레는 저항도 없이 붙잡혔다. 코털보다 간단하군, 생각하며 나방파리를 콧구멍 앞으로 내밀었다. 지네는 거대한 손의 접근에 경계하듯 움츠렸다. 제자리걸음과 비슷한 강도의 자극이 콧속에서 일었다. 잠시 나와 지네의, 혹은 지네와 나방파리의 대치가 있었다. 지네는 내가 뽑으려 했던 붉은 털, 정확히는 더듬이를 천천히 움직이더니 이내 유순한 움직임으로 손끝에 붙들린 날벌레를 물었다. 지네가, 나의 콧속에서 머무는 게 가능할 정도로 작은 이 지네가 무언가를 꼭꼭 씹어먹는 모습을 보니 기묘한 마음이 들었다. 나방파리의 날개 조각 따위가 인중 주변으로 흩어져서, 하수구를 통해 화장실로 들어왔을 날벌레의 신체 조각이 입술에 닿거나 혹은 무심결에 삼키는 일을 방지하고자 입술을 안쪽으로 오므리고 있던 나는, 처음으로 지네가 무언가를 먹는 모습을 보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직접 일어난 일이 아닌, 누군가가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모니터로 바라본 것에 불과했지만 여러모로 강렬하고 복잡한 순간임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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