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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현 Nov 11. 2023

[단편소설] 사랑과 흔적(2)

  바닥에 흙을 깔아둔 커다란 플라스틱 통에다 지네를 키우는 애호가가 올린 영상이었다. 그는 지네에게 특별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쥐. 뱀이 쥐를 산 채로 삼키는 건 동물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럭저럭 접할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지네가 쥐를 붙잡고 뜯어먹는 모습은 그 시절엔 꽤 낯설었다. 그때 나는 쥐를 응원하는 쪽이었다. 친구네 집 플라스틱 통 안에서 부지런히 쳇바퀴를 돌리던 얼룩무늬 햄스터의 부드러운 털 촉감이 생생했으니까. 쥐의 고통스런 죽음으로 끝나리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나는 영상을 끝까지 보았다. 잘 관리된 타르 빛깔 지네의 굵직한 풍채에 압도당한 탓인지도 모른다. 낯선 플라스틱 상자에 던져진 작은 쥐는 수십 초 앞의 비극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달려든 지네가 온몸으로 쥐를 휘감았다. 수많은 다리 하나하나가 게걸스럽게 쥐를 더듬었는데, 어둠이 빛을 집어삼키는 형상이 우연 속에서 표현되는 듯했다. 모든 게 순리 속에서 평화롭게 진행된다고 느껴질 무렵, 지네와 쥐에게로 향하는 손이 나타났다. 카메라를 고정한 채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지네 애호가의 손이었다. 망설임도 없이 지네의 발 사이로 파고든 손은 쥐를 붙잡아 위로 들어 올렸다. 쥐에게 독니를 박았던 지네가 붙들려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문제는 쥐도 마찬가지로 지네의 옆구리에 앞니를 박아넣었다는 사실이었다. 애호가가 강제로 쥐를 뜯어내려 하자, 자연스레 지네의 옆구리까지 따라 들렸다. 쥐를 다시 바닥으로 내려놓은 애호가는 쥐의 주둥이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혼신의 힘으로 천적의 옆구리를 부수려던 쥐의 시도는 손가락에 의해 입이 강제로 벌려지며 좌절되었지만, 앞니 끝에서 독처럼 흘러나온 저주는 무의미하지 않았다. 으깨진 타르 빛깔 옆구리에 불길한 샘처럼 솟아난 체액은 내게 똑똑히 보였다. 영상은 거기까지였다. 직후에는 쥐의 최후에 대해 생각하던 나였지만 점점 쥐에게 역으로 당한 지네의 운명이, 그것을 발생시킨 것이나 다름없는 애호가의 심정이, 빗나갔거나 서러우리만큼 운이 없었던 그의 애정이 나를 붙들었다. 문득 지네의 상처가 잘 아물었을지 궁금했다. 영상이 무사히 올라와서 어떤 우연에 의해 나에게까지 도달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세상에는 예상치 못할 족속들이 넘쳤고, 애호가 역시 그런 부류라서 죽어가는 지네가 담긴 플라스틱 통을 옆에다 두고 인코딩까지 거쳐 영상을 올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전부 옛날의 일이었으니 지네는 그때 죽었든 회복하여 건강을 되찾았든 지금은 죽어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방파리는 쥐의 털보다도 무력한 날벌레였다. 지네는 내 콧구멍에서 안전하게 나방파리를 먹었다. 나는 지네를 자극하지 않도록 휴지 한 장을 돌돌 말아 인중 부근을 천천히 문질렀다. 종잇장처럼 찢어진 미세한 벌레 조각과 거기에 붙어 있을 병균을 닦아내기 위함이었다. 물 묻힌 휴지로 인중을 닦아내는 동안 휴지와 손을 응시하는 지네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네와 조금 친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지네의 얼굴과 엉덩이의 위치가 떠올랐다. 지네의 엉덩이에서, 엉덩이가 아닌 어디서라도 시간이 지나면 배출될 배설물을 떠올리자 친밀함은 요원해졌다. 정감을 주고받더라도 지네를 내보내지 못한다면 콧속은 이내 화장실이 될 거였다. 콧구멍의 입구도 아닌 깊숙한 내부가 화장실로 변하는 상상은 다시 지네를 끔찍한 존재로 만들었다. 전까지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그쳤다면 이제는 역겨움이 더해진 셈이었다. 콧속 점막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졌다. 발과 더듬이 혹은 꼬리의 감촉이 자꾸 점막으로 떨어지는 배설물로 느껴질 정도였다. 당장은 과민반응이었을 그 예민함이 두어 번의 헛구역질을 일으켰다. 차라리 구토해 버릴까? 입을 두 손으로 틀어막으면 어쨌든 콧속의 지네가 배출되지 않을까? 충동이 잠시 나를 휘감았지만 그만두었다. 그런 식의 구토는 그것대로 끔찍하고 괴로운 짓일 게 뻔했다. 나는 친절하게 나방파리를 지네의 바로 앞까지 들이밀었음을 후회했다. 날개 등을 떼어내서 휴지 위에 얹어두고는 지네 앞에서 흔들어 밖으로 나오도록 유도해 볼 수도 있었을 텐데…… 화장실 여기저기를 뒤졌으나 나방파리는 더 보이지 않았다.


  세면대 아래까지 살펴보려 고개를 숙였을 때 지네가 콧속을 단단히 붙들었다. 날카로운 자극에 온몸이 절로 움츠러졌다. 천천히 똑바로 서자 지네가 힘을 풀었다. 문득 내가 배려 없이 움직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네는 지금 휘청이는 거대한 탑에 매달린 기분일지도 몰랐다. 지네에게 편안한 상태를 제공할 필요를 느꼈다. 아직 근심에 가까울 배설물에 대한 상상을 멈추기 위해서도 그랬다. 나는 걸을 때마다 발을 타고 올라올 충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무릎까지 살짝 굽혔다. 그렇게 이부자리로 향했다. 이런 상황에 휘말린 지네도 잠들 시간이 지나 피곤할지 모를 일이었다. 어둠 속에서 지네를 잠들게 하면 어떨까 싶었다. 지네가 악몽을 꾸다 벌떡 일어나는 일은 없겠지? 그런데 지네가 밤에 잠드나?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 그새 어둠에 익숙해졌던 눈에 빛을 쐬자 순간적으로 시린 자극이 일었다. 내게 이 정도라면 지네에게는 눈이 멀 정도의 섬광일 수 있었다. 놀란 지네가 콧속에서 발광할지도 몰랐다. 재빨리 손으로 코를 가렸다. 한 손으로만 검색을 이어가다 지네가 야행성이라는 정보를 알아냈다. 지네를 잠들게 하려던 계획은 헛되었음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지네가 빛을 싫어한다는 정보는 아주 쓸모없지는 않았다. 빛을 쐬지 않도록 계속 주의하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야행성인 지네의 움직임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 아닐까 싶은 근심이 일기도 했지만, 빛과 어둠의 줄다리기에서 내가 손을 들어준 쪽은 어둠이었다. 어둠의 움직임이 활발이라면 빛의 움직임은 발광일 테니까. 거기에는 난폭한 운전자의 음주 여부와 같은 큰 차이가 있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주변은 충분히 어두웠다. 지네는 안정을 찾았는지 얌전해졌다. 나도 함께 노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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