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9.1-9.10)
2025년 9월 2일 화요일
새벽 04시 40분입니다. 한국 시각으로 11시 40분입니다. 잠을 자야 할 텐데 눈만 감으면 꿈을 꿉니다. 자꾸 돌아가신 분들이 꿈에 나타나네요. 로마로 오는 비행기에 상당수가 노년층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아버지, 고모, 삼촌, 그분들도 살아계셨으면 저들처럼 저기에 있었을 텐데, 꿈에서 본 고인(故人) 모두 행복해 보여 그나마 다행입니다. 뒤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왔어요." 언젠가 우리에게도 마지막 여행이 있겠지요. 우리 부부가 두 다리 성(盛)할 때까지, 심장이 두근거릴 때까지 계속 걸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4박 5일 머물 로마숙소는 꽤 유명한 명소에 있었네요. 숙소 앞에 나보나 광장이 있고, 광장에서 5분 거리에 유명한 판테온(Pantheon)이 있습니다. 책에서만 보던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잠만 잤군요.
4대 강분수(유럽의 다뉴뷰강/아프리카의 나일강/아시아의 갠지스강/남미의 리플라타강 표현), 베르니니 설계. 1651년 완공됨. 맞은편 건물은 베르니니의 라이벌 보로미니가 설계한 산타녜세 인 아고네 성당. 베르니니의 4대 강 동상은 형태가 제각각인데, 그중 머리를 손으로 가리거나. 천으로 얼굴을 가린 동상은 보로미니가 설계한 성당이 무너지거나, 보기 싫다는 베르니니의 욱한 심정을 표현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호사가들이 만든 이야기로 실제 성당은 동상이 만들어진 지 2년 후 지어졌다고 합니다.
아침 로비에서 "굿 모닝" 했다가 좀 낭패를 당했습니다. 앞으로는 "본 죠르노" 해야겠습니다.
8시부터 제공되는 조식을 간단히 먹고, 길을 나섭니다. 우선 안경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가이드와 조인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평점 5.0의 안경점을 찾아 새로 테를 구입했습니다. 183€, 생각지도 않게 이태리 안경을 쓰게 되었네요. 먼 곳까지 볼 수 있어서 살 것 같습니다.
바티칸시국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이태리 가서 피자/ 파스타 먹는 버킷리스트 하나가 또 달성되네요. 생각보다 짠 피자와 생각보다 맹탕 파스타가 묘하게 조화를 내네요. 아주 맛있다기보다 뭔가 새롭다는 생각이 드는 이태리 피자/파스타입니다. 양이 많아 1/5 가량 남겼습니다.
바티칸 박물관투어를 마치고 호텔에 들어온 시간은 20시입니다. 12시 30분 가이드를 만나서 바티칸시티에 입장한 시각이 13시였으니까 거의 6시간에 걸쳐 걸으며 관광하고, 2시간 걸어서 이동 및 저녁식사를 한 셈입니다.
0.44km의 이 작은 바티칸시국은 수많은 역사를 품으며 변화되어 왔습니다. 고대 로마의 언덕에서부터 무솔리니의 주권국가 인정까지 바티칸은 엄청난 시련을 겪으며 역사적 보물창고가 되었습니다.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의 천장벽화와 피에타 원형을 직접 보고, 라파엘로 방에서 드디어 아테네 학당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500년 전 거장들의 숨결이 그대로 내려와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숨 막히는 거장의 작품아래 우리는 아주 작은 존재일 뿐입니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 디오게네스가 알렉산더대왕이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제안에 "햇빛을 가리지 말아 주시오" 했다는 설명이 계속 남습니다. (중간에 거의 눕다시피 않아있는 현인이 ‘디오게네스’ 임)
사진 찍는 것이 허용치 않은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성당 천장벽화는 작품이 그려진 방 안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이드들이 관광객을 모아놓고 설명해 주는 모습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었습니다. 단 몇 분을 올려보기도 힘든 이 벽화를 4년 6개월 (1508-1512) 동안 그려낸 미켈란젤로는 신이 만들어낸 천재 예술가 임이 분명합니다. 벽화 아래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1536-1541) 이 그려져 있습니다.
로마의 예술가들은 어떻게 이런 신비로운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전기와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은 중세, 르네상스, 매너리즘, 바로크시대 1,400년 동안 이 조각과 그림들은 어떻게 마법처럼 생겨났을까요. 사진을 찍을 수도 없는 시스티나 천장벽화를 올려다보며, 미치거나 천재일 수밖에 없는 예술가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런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시대를 초월한 이 거장들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은 인간임을 깨닫습니다.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합니다. 하우스와인을 시켜봤는데 유리병에 꽤 많이 나오네요. 치킨&감자가 먹을 만하고, 파스타는 소금에 절인 듯 짭니다. 다음부터는 가이드북에 나온 거 달라고 해 봐야겠습니다. 메뉴선택에 계속 실패하네요. 이탈리아 로마에서의 첫 여행, 거장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긴 바티칸 걷기 투어였습니다. 다리가 후 덜덜 떨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