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을 잃어버렸다.

by 몰드브 회사원



온 집안을 뒤져봤지만 지갑이 없다. 체념하고 잠자코 기다려보려 했는데 현희가 한마디 했다. '주민등록증에 예전 집 주소 있지 않아?'



나는 그 집을 나왔다. 그날 나는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집에 가려는데 동생이 초조하고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집이 난리가 났다며 경찰이 출동했다고 말했다. 아빠가 폭력을 행사해도 우리 가족의 선택지에 경찰에 신고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 가족 중 누구도 아빠를 신고해 본 일이 없. 우리 가족은 그 다음 날 화가 조금 식은 아빠를 달래고 일상생활을 지속하는 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방식으로 체득했을 뿐이다.



아빠의 난동으로 경찰이 출동한 것은 내 생애 처음이니까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고 경찰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을지 그 강도를 예상케 하는 단서였다. 나는 어쩌면 폐허가 되었을지 모르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아빠를 마주 서고 내가 어떤 표정과 어떤 말을 해야 안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아빠를 달래야 할까. 혐오와 원망으로 뒤덮인 나의 마음을 처절하게 숨기고 아빠를 마주하는 고통은 죽어야만 끝이 날 것 같았다. 나는 아빠의 화가 가라앉고 또다시 여느 날처럼 불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찾아오면 돌아올 요량으로 최소한의 짐만 챙겨 다급하게 집을 나왔다.



두려움이 내 일상에 틈을 벌리고 뜬금없이 끼어드는 것은 집을 나온 데 따르는 부작용 같은 것이었다. 두려움은 단순히 싫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지갑을 잃어버리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귀찮고 싫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주민등록증 앞에 있는 주소로 지갑이 배송되어 새 주소를 알게 된 아빠가 나를 죽이러 찾아오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불안은 확실함을 좇지만 내 앞에는 늘 불확실함만 가득했다. 지갑을 찾으려고 시도할수록 나는 두려움에 조금씩 지고 있었다.



언젠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전부터 내 상상은 극단적으로 흐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항상 나를 가장 두려운 곳으로 내쫓는 것은 상상이었으므로 이번에도 나는 상상 속에서 옅은 비린내가 나는 나의 예전 집으로 초대되었다. 그 순간이 돌아올 때마다 내가 하는 일은 상상의 손을 잡고 상상이 인도하는 세계를 탐험하는 것인데 그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그 세계에 들어서면 꼭 그 일들이 곧 실현될 일인 것처럼 가슴을 뛰게 하고 불안 속에서 잠 못 들게 한다. 내가 어떻게 해도 그 결론이 죽음이라면 나는 다른 갈래의 가능성은 포기한 채 침잠하듯 바다 속으로 서서히 걸어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나는 그 우울한 바다 끝에서 되돌아오는 짓도 때마다 반복한다. 어푸어푸하고 솟아오르듯 두려움은 제대로 된 프로세스를 잘 숨긴다는 사실을 기억해낸다. 제대로 된 프로세스는 지갑이 주민등록증 뒷면, 스티커로 덧대진 이전된 제 주소를 찾아 잘 배달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길거리에서 쓰레기로 버려져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고 새 주인을 만날 수도 있겠지. 지갑이 아빠의 손에 들려 내게로 돌아오리란 상상은 개중에서도 확률이 낮은 개꿈이다.



아빠가 없는 일상을 경험하며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건 이제 영원히 불가능했다. 한평생 내 집이었던 그곳이 어쩌면 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천천히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지갑은 2주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갑은 길을 잃었을 것이다. 이제 몇 주만 더 지나면 지갑은 영영 내게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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