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들인 랜드마크 서울영화센터, 영화인들이 외면한 진짜 이유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서울시가 무려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들여 준비한 서울영화센터가 지난 11월 28일 드디어 문을 열었습니다. 한국 영화의 심장부인 충무로에 영화인과 시민을 위한 거점 공간이 생긴다는 것은 본래라면 영화계 전체가 기뻐하고 환영해야 할 경사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개관식 날의 현장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화려한 테이프 커팅식 뒤편으로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습니다. 도대체 500억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된 이 거대한 건물이 왜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는지, 그리고 이 건물의 등장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민들의 소중한 공간 오!재미동의 안타까운 사연까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충무로의 새로운 랜드마크
먼저 서울영화센터라는 공간 자체만 놓고 보면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는 매우 훌륭합니다. 지하 3층부터 지상 10층까지 이어지는 넓은 연면적은 충무로역 인근에서 단연 돋보이는 위용을 자랑합니다. 시설 면에서도 정말 작정하고 지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상영관이 3개나 마련되어 있으며 기획 전시실, 영화인들이 네트워킹할 수 있는 공유 오피스, 미디어 교육실, 그리고 남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옥상 야외 극장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1관에는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35mm 필름 영사기를 설치해 고전 영화 상영이 가능하도록 했고, 2관과 3관에는 최고급 리클라이너 좌석까지 도입했습니다. 서울시는 이곳을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 영화 창작과 향유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야심 찬 청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영화인들이 개관식을 보이콧한 이유
하지만 정작 이 화려한 공간의 주인이 되어야 할 영화인들은 이곳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들은 물론이고 한국독립영화협회나 영화수입배급사협회 같은 주요 영화 단체들이 개관식 참석을 거부하고 보이콧을 선언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 공간의 핵심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시네마테크 기능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시네마테크는 쉽게 말해 영화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입니다. 프랑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처럼 영화 필름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그것을 연구하고 시민들과 공유하는 것이 핵심 역할입니다. 이 사업은 영화인들이 오랫동안 염원해 온 서울 시네마테크 건립을 목표로 시작되었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가장 중요한 필름 수장고와 아카이브 열람실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한국영상자료원에 이미 수장고가 있으니 중복 투자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행정적인 효율성이나 비용 논리로만 보면 상암동에 있는 한국영상자료원 수장고와 기능이 겹치니 굳이 세금을 들여 충무로에 또 만들 필요가 있냐는 해명이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계가 반대하는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는 단순한 공간 중복의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영화인들이 지적하는 문제의 본질은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째,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이를 도서관에 비유하자면, 서울에 국립중앙도서관이 하나 있다는 이유로 동네 구립 도서관이나 시립 도서관들이 책을 소장하지 않고 열람실만 운영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소장하지 않는 도서관은 독서실에 불과하듯, 영화 유산을 직접 수집하고 보존하여 연구하지 않는 시네마테크는 단순히 영화를 틀어주는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주장입니다. 박물관에서 유물 창고를 없애고 필요할 때마다 빌려와 전시하라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둘째, 국가 기관과 도시 기관의 역할 차이입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국가 기관으로서 한국 영화 중심의 거대한 보존과 복원이 핵심입니다. 반면 서울영화센터가 지향해야 할 도시형 시네마테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색깔을 담아 실험적이거나 마이너한 독립 영화, 혹은 다양한 해외 고전들을 독자적으로 수집하고 발굴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내 냉장고에 내 재료가 있어야 독창적인 요리를 개발할 수 있듯이, 재료를 매번 빌려 써야 한다면 기획 프로그램에 한계가 생기고 독자적인 색깔을 잃게 됩니다. 해외에서는 국가 아카이브 외에도 지역별로 복수의 시네마테크가 공존하며 이를 중복이 아닌 분업과 상호 보완으로 봅니다.
셋째, 15년 동안 쌓아온 신뢰의 훼손입니다. 수장고와 연구 기능은 지난 15년간 서울시와 영화계가 합의했던 핵심 설계 중 하나였습니다. 건물이 완공될 무렵 행정 편의를 이유로 이를 일방적으로 삭제한 것은 그동안의 논의와 합의를 무시한 처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설 요구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줄 영화적 기억과 정체성을 지키려는 요구에 가깝습니다.
운영 주체 선정과 검열 조항의 공포
건물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운영 방식이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불신도 깊습니다. 영화계는 영화인들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민관 협치 모델을 기대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서울경제진흥원(SBA)에 위탁했습니다. 영화를 문화와 예술로 접근해야 할 곳을 산업적 관점과 경제 논리가 앞서는 기관이 맡게 된 것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여기에 결정적인 반발 요소로 검열 논란이 더해졌습니다. 운영 사업자 입찰 공고 내용 중 상영작에 대한 사전 및 사후 심의가 가능하다는 조항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서울시 예산으로 운영되니 목록 정도는 확인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할 수 있지만, 영화계는 이를 단순 확인이 아닌 기획 통제로 악용될 수 있는 위험한 독소 조항으로 보고 있습니다.
심의 주체가 영화 전문가인 프로그래머가 아닌 행정가들이 된다는 점은 전문적인 큐레이션에 비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줍니다. 또한 영화 상영 후 심의를 하겠다는 사후 심의 조항은 과거 블랙리스트 사태 때 지원금을 끊거나 감사를 통해 압박했던 방식을 떠올리게 하여 사실상의 자기 검열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공공 영화센터는 상업성이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사회적으로 논쟁적이거나 권력에 비판적인 영화도 상영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야 합니다. 하지만 시의 심의를 받게 되면 민원이나 이미지를 이유로 특정 영화들이 배제되어 결국 서울시 홍보 영화관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습니다.
사라진 오!재미동
서울영화센터 개관의 불똥은 지하철 충무로역 역사 내에 있는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으로 튀었습니다. 2004년 문을 연 이후 21년 동안 시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온 이곳은 누구나 무료로 5,000여 편의 영화 DVD를 빌려보고 저렴한 비용으로 소극장을 대관해 작은 영화제를 열 수 있는 보물 같은 공간입니다.
서울시는 서울영화센터 건립으로 기능이 중복된다며 오!재미동의 운영 종료를 통보했습니다. 하지만 서울영화센터는 유료 및 산업적 성격이 강한 반면, 오!재미동은 시민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드는 생활 밀착형 무료 공간입니다. 두 공간은 대체재가 아니라 상호 보완재 관계입니다. 오!재미동 폐관 소식에 1,800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대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영화 학도들의 배움터이자 어르신들의 쉼터, 독립영화 동호회의 아지트인 이곳을 없애는 것은 대동맥을 짓기 위해 모세혈관을 자르는 것과 같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서울영화센터라는 거대한 하드웨어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영화인들과의 협력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잃고, 시민들이 가꾸어 온 공간이라는 휴먼웨어마저 없애버리는 결과를 초래한 셈입니다.
문화 예술 지원의 대원칙을 위하여
영화인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이라는 문화 정책의 대원칙을 지켜달라는 것입니다. 15년을 기다린 서울영화센터가 텅 빈 유령 건물이 되지 않으려면 시네마테크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오!재미동 같은 풀뿌리 공간과 공존할 수 있는 생태계적 관점의 행정이 절실합니다.
문화는 효율과 규모로만 측정될 수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화려한 새 건물과 21년 된 낡지만 따뜻한 지하철 안의 도서관,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가치는 어디에 있을지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