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브스 아웃:웨이크 업 데드맨' 상징과 결말 해설

종교 권력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인간 본질에 대한 따뜻한 시선

by 나이트 시네마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https://youtu.be/R7WH7gBOiO4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웨이크 업 데드맨'을 감상했습니다.


시리즈의 시작이었던 1편 '나이브스 아웃'은 개봉 당시 상영관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극장에서 관람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정통 추리물의 형식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세련되게 풀어내며 추리 장르의 새로운 고전이 탄생했다고 느꼈었죠. 그 기대감 탓이었는지 2편인 '글래스 어니언'은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전작의 쫀쫀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겉만 화려할 뿐 실속과 재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3편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번 '웨이크 업 데드맨'은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1편 특유의 재미가 되살아난 것은 물론, 종교와 신앙, 그리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까지 담아내며 오락성과 메시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수작이었습니다. 시리즈 특유의 블랙 코미디는 여전했고,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이야기를 힘 있게 끌고 가는 연출력이 돋보였습니다. 단순한 범인 찾기 게임을 넘어 인간의 죄와 구원에 대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권력에 대한 풍자와 세계관의 확장

라이언 존슨 감독은 매 시리즈마다 다른 권력 집단을 풍자하며 세계관을 확장해오고 있습니다. 1편이 특권 계층과 유산 상속을 둘러싼 가족들의 탐욕을, 2편이 허세 가득한 IT 신흥 부유층의 위선을 다뤘다면, 이번 3편은 종교와 신앙을 조명합니다. 도덕적 우위를 점하려는 종교 권력과 그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이중성을 타깃으로 삼은 것입니다. 논리의 화신인 탐정 브누아 블랑이 믿음의 영역인 종교와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시너지가 이 영화의 핵심 관전 포인트입니다.

제목과 공간의 의미

제목 '웨이크 업 데드맨'은 처음에는 좀비물이나 예수의 부활을 연상케 했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죽음 같은 고통 속에서도 눈을 뜨고 살아가라는 희망적인 메시지임을 깨닫게 됩니다. 공간 연출 또한 탁월했는데, 특히 성당 내부를 강단은 높고 신도석은 낮은 수직적 구조로 묘사하여 종교적 공간이 동시에 권력의 요새임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누가 위에서 설교를 하고 누가 아래에서 그 말을 듣는지를 계급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내는 연출이었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

영화에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이라는 대사가 반복해서 등장하며 인물들의 내면 변화를 관통하는 핵심 테마로 작용합니다. 이는 기독교인을 핍박하던 사울이 다마스쿠스 도상에서 신의 음성을 듣고 바울로 회심했다는 성경 일화를 차용한 것입니다.


주인공 주드 신부는 과거 폭력적인 삶을 청산하고 사제가 된 인물로, 이미 한 번의 다마스쿠스를 겪었습니다. 그는 영화 중반까지 정의 구현이라는 명분으로 범인 찾기에 몰두하지만, 결국 자신이 탐정이 아니라 죄인을 주님께 인도해야 할 목자임을 깨닫는 두 번째 다마스쿠스를 경험합니다. 탐정인 브누아 블랑 역시 이번 사건을 통해 변화를 겪습니다. 범인과 트릭을 밝혀내는 논리적 승리에 집착하던 그가, 주드 신부의 선택을 보며 진실을 폭로하는 것보다 때로는 덮어주는 은총이 중요함을 깨닫는 인간적인 성장을 보여줍니다.


반면 윅스 몬시뇰이나 마사 같은 인물들은 왜곡된 다마스쿠스를 보여줍니다. 윅스는 권력 유지를 회심으로 포장하고, 마사는 살인을 신의 뜻이라 합리화합니다. 브누아 블랑은 이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을 진정한 회심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늑대와 양

영화는 늑대 이미지를 통해 현대 사회의 혐오 문화를 꼬집습니다. 윅스 몬시뇰은 양 떼를 지키는 척하지만 실상은 신도들을 이용하는 늑대입니다. 늑대를 상대하다 보면 이해 못 하는 모든 사람이 늑대로 보인다는 대사는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윅스의 선동에 세뇌된 마사는 성당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마저 늑대로 간주하고 공격합니다. 결국 외부의 늑대를 막겠다던 마사 자신이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가장 흉포한 늑대가 되어버리는 비극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를 적으로 규정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고해성사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주드 신부가 블랑에게 답을 구하는 장면입니다. 연출이 묘하게도 마치 주드 신부가 주님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묘사되었습니다. 주드 신부는 애원하지만 블랑은 대답하지 않습니다. 주드가 무언가 감추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응답을 듣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진실을 고백해야만 비로소 들리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완전한 고해성사 없이는 사죄도 없다는 종교적 개념을 추리극의 문법으로 탁월하게 치환해 보여준 장면이라 소름이 돋았습니다.

진정한 성직자의 자세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대사는 주님은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죄인인 채로 사랑하신다는 말일 것입니다. 이는 주드 신부가 수사 중 걸려 온 전화에 응대하는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는 추리를 멈추고 상대방을 위해 기도를 최우선으로 해줍니다. 판단하고 교정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듣고 동행하는 것이 그가 보여준 성직자의 자세였습니다.


이 태도는 결말부 마사의 고해성사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주드는 살인을 저지르고 죽어가는 마사를 심판하는 대신 증오를 놓아버리라고 권면합니다. 이는 그녀 영혼을 갉아먹던 증오라는 지옥에서 해방시켜주는 진정한 인도를 의미합니다.


영화가 말하는 구원 또한 흥미롭습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행복해지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마사에게는 증오로부터의 해방이, 만성 통증을 앓던 첼리스트 시몬에게는 병의 치유가 아닌 하루를 견딜 수 있는 동행과 묵상이 구원이었습니다. 탐욕스러운 싸이에게는 다이아몬드를 감춰버림으로써 그의 욕망이 공동체를 파괴하지 못하게 막는 차단이 구원이었고, 블랑에게는 논리보다 은총을 선택하는 내적 성장이 구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드 신부는 자신이 구세주가 아니라 길을 안내하는 또 다른 죄인임을 받아들이며 자기 혐오에서 벗어납니다. 엔딩에서 다이아몬드를 십자가 안에 넣는 장면은 세상의 죄와 자신의 짐을 온전히 신에게 맡기겠다는 상징으로 다가왔습니다.

총평

나이브스 아웃 웨이크 업 데드맨은 우리가 완벽해져야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깨진 상태 그대로 사랑받기에 변화할 용기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겉모습은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지만, 그 안에는 단죄보다 깊은 이해와 연민,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눈을 뜨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를 향한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의 치밀한 설계가 돋보이는, 추리 팬들과 영화적 상징을 즐기는 분들에게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영화가 될 것입니다.


혹시 이 영화를 보신 분들은 어떤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으셨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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