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에 빠지는 우리들에게
본문은 구어체로 작성된 리뷰 방송 대본을 AI를 활용하여 다듬은 글입니다.
포스터나 예고편만 보면 흔히 떠올리는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 영화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이 작품은 훨씬 더 깊고 넓은 단위의 삶을 조명합니다. 사랑이 중요한 테마이긴 하지만, 그보다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고 이별을 맞이하는지에 대한 통찰에 가깝습니다. 가볍고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영화의 결이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습니다.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만, 극 중에 노출 장면이 꽤 직접적으로 등장합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상황을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연출이긴 한데, 방심하고 있다가 마주치면 당황하실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출산 묘사가 상당히 길고 사실적입니다. 저 역시 보는 내내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갈 정도로 몰입감이 컸는데, 이런 직관적인 묘사에 예민하신 분들이라면 미리 알고 가시는 편이 낫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시간이 순서대로 흐르지 않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쉴 새 없이 교차하는 비선형 구조를 취하고 있죠. 초반에는 지금 이게 어느 시점인지 헷갈려서 어리둥절할 수 있지만, 감독이 굳이 왜 이 소중한 시간들을 뒤죽박죽 섞어 놓았는지 그 의도를 곱씹어보며 따라가다 보면 후반부의 여운이 훨씬 짙어질 것입니다.
10년의 시간이 뒤섞이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초반 도입부를 살짝만 짚어보겠습니다. 한밤중에 호텔 가운 차림으로 편의점을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는 남자, 토비아스가 있습니다. 이혼 서류에 사인을 하려는데 하필 볼펜이 안 보여서 그 황당한 차림으로 밤거리를 나선 거죠. 그런데 정말 운명의 장난처럼 그는 달려오던 차에 치이고 맙니다. 그 차의 운전석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 오픈을 코앞에 둔 셰프 알무트가 타고 있었고요.
결코 유쾌할 수 없는, 오히려 최악에 가까운 이 교통사고를 시작으로 두 사람의 10년이 스크린 위에 펼쳐집니다.
영화는 세 가지 굵직한 시점을 오갑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던 눈부신 시기, 알무트에게 난소암이라는 병마가 처음 찾아왔던 시기, 그리고 기적처럼 딸을 낳고 행복을 누리다 또다시 암이 재발해버린 시기. 이 파편화된 시간들이 영화 내내 이리저리 뒤섞이며 등장합니다.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맞춰가다 보면, 영화가 끝날 때쯤엔 가슴 한구석이 턱 막히는 먹먹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지금부터는 영화의 결말과 핵심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직접 보실 분들은 여기서 잠시 멈춰주시길 바랍니다.
비선형 구조가 만들어낸 기억의 마법
위 리브 인 타임.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는 직관적인 문장입니다. 인간은 시간을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는 유한한 존재죠.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유한함의 끝을 뻔히 알면서도 왜 누군가를 기꺼이 사랑하는지, 그 무모하고도 아름다운 본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다 되어 세상을 떠나더라도 그냥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남겨둔 사소한 흔적들은 남은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 숨을 쉽니다. 알무트가 딸과 남편에게 남긴, 계란은 모서리가 아니라 평평한 바닥에 쳐서 깨야 한다는 그 아주 작은 요리 습관처럼 말이죠. 우리는 그저 증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작은 것들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는 위로를 건넵니다.
감독은 왜 하필 영화를 비선형 구조로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추억할 때를 떠올려보면 답은 쉽게 나옵니다. 우리는 기억을 연도별로 정리해서 꺼내지 않잖아요. 어느 날 문득 그 사람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가, 또 다른 날에는 함께 걷던 날의 공기가 맥락 없이 불쑥 튀어나오곤 합니다.
이 영화의 전개는 마치 남겨진 토비아스가 훌쩍 커버린 딸 엘라에게, 엄마 아빠는 이렇게 만났고 네 엄마는 이런 사람이었어라며 두서없이 하지만 너무나도 애틋하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처럼 느껴졌습니다. 흥미로운 건 감독이 촬영을 다 마친 후 편집실에서 결말부의 순서를 완전히 뒤엎었다는 사실입니다. 앤드류 가필드조차 자신이 찍은 어떤 씬이 마지막에 쓰일지 몰랐다고 하니, 철저하게 계산된 편집의 힘이 이 짙은 여운을 완성해 낸 셈입니다.
반복되는 상징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영화를 보다 보면 유독 눈에 밟히는 행동들이 있습니다. 토비아스는 틈만 나면 초시계를 꺼내 듭니다. 임신 테스트기 결과를 기다릴 때도, 출산을 앞둔 아내의 진통 주기를 잴 때도 어김없이 초시계를 누르죠. 알무트 역시 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끊임없이 타이머를 맞춥니다.
처음엔 그저 직업병이거나 개인의 성향이려니 했는데, 어느 순간 이 영화 전체가 알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남은 시간을 재는 거대한 타이머 같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우리는 흐르는 시간을 잴 수는 있어도, 단 1초도 마음대로 늘리거나 늦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에게 주어진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초시계라는 소품이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머리를 깎아주는 씬도 잊히지 않습니다. 과거 토비아스의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다정하게 다듬어 주던 모습이, 훗날 항암 치료를 앞둔 알무트의 머리를 토비아스가 직접 밀어주는 모습과 고스란히 겹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앞날을 걱정하며 기꺼이 몸을 보듬어주는 행위. 그 다정한 돌봄의 마음이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남편에서 아내로 이어지는 과정이 너무나 뭉클했습니다. 플로렌스 퓨가 이 장면의 진정성을 위해 실제로 삭발을 감행했다는 사실은 이 씬이 가진 무게를 한층 더해줍니다.
남겨질 이들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길
물론 아쉬운 부분도 존재합니다. 극 중 알무트가 과거 레즈비언이었다는 설정은 사실 좀 뜬금없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혼이나 출산 같은 전통적인 굴레에 자신을 가두기 싫어하는 주체적이고 복잡한 세계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해설도 있지만, 굳이 그 설정이 서사에 꼭 필요했나 묻는다면 여전히 고개가 갸우뚱해집니다.
하지만 후반부 알무트의 행보는 그런 아쉬움을 덮을 만큼 강렬합니다. 암이 재발해 몸이 부서져 가는 상황에서도 그녀는 요리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보퀴즈 도르 출전을 밀어붙입니다. 처음엔 그 지독한 고집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왜 저렇게까지 무리를 할까 싶었죠.
하지만 몰래 대회를 준비하다 토비아스에게 들켰을 때 그녀가 토해낸 진심은 꽤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저 평생 아파하다가 일찍 떠나버린 가여운 엄마로 딸에게 기억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끝까지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불태웠던 멋진 사람으로 남고 싶었던 거죠. 아픈 몸을 이끌고 대회에 나가는 건 개인의 헛된 명예욕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상실을 대하는 두 가지 온도
영화는 사랑하는 이를 잃은 후 남겨진 사람들이 상실을 대하는 태도를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영화 엔딩에서 토비아스는 엘라와 함께 요리를 하며, 알무트가 알려줬던 대로 평평한 바닥에 계란을 깹니다. 이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과거 알무트가 아버지를 잃었을 때 보여준 태도와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알무트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즐거움을 남겨줬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알무트는 그 빈자리가 주는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피겨스케이팅 자체를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봉인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토비아스는 상실을 회피하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긴 사소한 습관 하나를 딸과 공유하며 밥을 먹고 일상을 살아냅니다. 대단한 업적이 아니라, 계란은 이렇게 까는 거야라는 일상 속의 작은 숨결 하나가 사람의 존재를 얼마나 오래 붙잡아두는지 보여주는 성숙한 애도의 방식이었습니다.
요리 대회를 마치고 세 가족이 아이스링크에 가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를 잃고 남겨진 아이의 자리에 섰던 알무트는, 이제 자신이 섰던 그 아이의 자리를 엘라에게 내어주고 스스로 세상을 떠나야 하는 부모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을 얼음판 위에서 고요하게 받아들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영화는 사랑 이야기로 문을 열지만, 결국엔 남은 시간을 어떻게 걷고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닫습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계란 깨는 법 하나로 곁에 머무는 삶. 상실을 숨기는 대신 다음 사람에게 다정하게 쥐여주는 방식. 끝을 뻔히 알면서도 결국 또 서로를 안아버리는 우리들의 이야기.
극장을 나선 후에도 한참 동안 누군가의 굴곡진 10년을 함께 살아낸 것 같은 진한 여운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이 영화를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유독 마음을 울렸던 대사나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시선으로 본 영화의 조각들도 함께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