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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ghteoff Oct 11. 2021

취미가 뭐예요?

너무 많은데 사실 하나도 없어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쉬는 날 주로 뭐하세요? 퇴근하고 뭐하세요? 취미가 뭐예요?


나 같은 사람이 많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뚜렷한 취미는 없다. SNS만 뒤적거려도 시간이 훌쩍 간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인기글만 구경해도 하루가 끝난다. 하지만 이건 퇴근하고 저녁 먹은 다음의 일상이고, 휴일까지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나중에 후회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질린다. 그래서 다른 것을 한다. 앞서 말한 휴일에 뭐하냐는 질문에 '그냥 폰 해요.' 대신 말할 수 있는 소박한 취미.


오늘은 나의 이런 소박한 취미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한다. 미리 말하지만 취미는 '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하는 것'이다.




1) 생각 정리

이게 취미라고? 싶지만 정말이다.

생각에 형태가 있다면 나의 것은 문장 형태로 서론 본론 결론까지 싹 지어져 서랍에 차곡차곡 담겨 있을 것이다. 그걸 때때로 꺼내서 다듬은 뒤 다시 집어넣는다. 이 짓을 매일 한다. 다듬어진 생각을 누군가에게 말로 꺼내는 일은 드물지만 종종 있긴 하다. 그러면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나의 가치관이 된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 생각이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관이 될 자격이 있는 생각만 말로 옮긴다. 나머지는 머릿속에 그득하다.


며칠 동안 똑같은 서랍에서 똑같은 생각만 다듬다 보면 내가 질려서 글로 그냥 옮길 때가 있다. 지금처럼. 글이나 말이나 표현한다는 점에서 어쨌거나 동일하다. 다만 글로 옮길 때는 더 오래 걸린다. 다음에 거론하겠지만 나의 또 다른 취미인 '글쓰기'와 겹치니까. 한마디로 잘 써야 한다는 말이다. 안 그래도 꽉 찬 생각을 얼른 풀어서 후련해지고 싶은데 글까지 마음에 들게 써야 하니 서론만 낑낑대며 쓰고선 벌써 질려서 그만 엎어버리기 부지기수다. 이곳 브런치 '작가의 서랍'에도 숨겨둔 글이 몇십 개다. 내가 생각해도 피곤하긴 한데 솔직히 나는 이 과정이 너무 재밌다. 기본적인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장의 앞뒤만 잘 맞추면 글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으니까.


말이나 글로 풀고 나서 끝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후련하긴 한데 계속 곱씹는다. 이 의견이 정말 옳은지, 내 성향에 맞는지, 내가 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한 말에 내가 사로잡혀서 사소한 일상에도 시시때때로 붙들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남에게 고민을 잘 털어놓지 않는 편이다'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거나 표현했다면, 그때부터 나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고민을 얘기하기가 꺼려진다. '계획을 잘 세우는 편이다'라고 하면 나는 그야말로 더 계획적인 사람, 플랜맨이 된다.


뱉은 말에 책임감이 상당하다는 뜻이니 어떻게 보면 좋은 거지만, 문제는 내가 변했을 때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내가 나는 이래요, 하고 표현한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변했을 때, 거짓말이라도 한 것처럼 불편하다. 나를 여전히 변하기 전 모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도, 나의 진짜 모습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는 것도, 누군가 나를 오해하는 것도 불편하다. 사실 남들이 나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그렇다.


그래서 찾아낸 방법은 굳이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필요하지 않는 한 나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면 당분간이라도 변하지 않을 나만 설명한다. 항상 생각을 다듬는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나를 최대한 완전한 형태로 드러내고 싶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이고 싶다. 사소한 스몰 토크나 행동에서 드러나는 것 말고, 정말로 깊은 대화를 나눠야만 알 수 있는 나의 모습이 적어도 내가 가장 원하는 모습이고 싶다.


매일 하는 것이니 생각 정리를 취미로 가장 먼저 적었지만 이걸 얘기한 적은 없다. 사실 지금도 두렵다. 이렇게 글로 쓴 이상 나는 좋든 싫든 이 취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도 요즘엔 좀 낫다. 이게 내일 당장 취미에서 탈락되더라도 구태여 글에 추가하진 않겠다. 오해 하나 정도 사는 것쯤이야 별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걸 보고 저 정도로 강박을 가져서 어떡하느냐고 걱정할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나는 재미있게 살고 있다. 이 정도면 취미의 자격이 충분하다.




2) 글쓰기

사실 자주는 안 한다. 퇴근 후에는 머리를 굴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휴일에 쓴다. 이 글도 주말에 쓰는 것이다. 글쓰기가 취미라고 하면 꽤나 고급져 보이지만 실상은 잡담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햇수로 치면 15년째 쓰고 있다. 일기장만 일고여덟 권은 될 것이다. 매일 쓰지는 못한다. 보면 알겠지만 나는 말이 매우 많은데, 그걸 다 손으로 쓰려면 팔이 몹시 아프다. 그래서 점점 손으로 쓰는 일기는 꺼려지고 블로그나 SNS에 남기곤 한다. 좋은 일기 플랫폼을 찾고 있는데 네이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할까 하다가, 그러면 브런치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서 시작하지 않고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는 글쓰기 플랫폼을 자주 바꾼다. 내가 손댄 메모 어플이나 플랫폼이 한둘이 아니다. 좀 써보다가 관두는 것이 좋은 습관은 결코 아님을 안다. 작년에 SNS에 그동안 쓴 글을 편집해 올릴 때, 사혼의 구슬 조각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글을 모으느라 고생깨나 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 정말 한 곳에만 올려야지. 그러나 그 다짐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트위터에 생각을 올리고, 글쓰기 어플도 쓰다가, PC에서 네이버 메모를 쓰기도 하고, 이렇게 브런치도 쓰고 있으므로. 어떻게 보면 내가 글쓰기를 정말로 '취미'로 생각한다는 증명이다. 부담 없이 각 잡지 않고 쓰는 습관이 잘 들었다. 물론 정리된 생각만 쓰는 것이기에 그 자체만으로 각이 살아있지만 말이다.


하여튼 글쓰기는 재밌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런 장애 없이 장황하게 설명해도 된다는 점이 좋다. 글을 쓸 때는 그 누구도 나를 방해할 수 없다. 내가 갑자기 여기서 '오늘 대체공휴일이라서 좋아요!'라고 써도 상관이 없다. 좀 주제에 벗어나기야 하겠지마는 그걸 보고 이건 글이 아니다,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글은 신비롭다. 몇백 년의 역사를 한 줄에 담을 수도 있고, 단 한 장면을 몇십 페이지에 걸쳐 묘사할 수도 있다. 단지 글자의 연속일 뿐인데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도 빼버릴 수도 있다. 한때는 퇴근도 불사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끼니미루고 쓴 적도 있었다. 실제로 해본 적도 앞으로 할 일도 없는 언행을 글에서 맘껏 지어냈다. 대리만족인가? 아니면 페르소나? 잘 모르겠다. 그냥 쓰는 게 재미있었다. 글쓰기를 능가할 재미를 가진 취미가 나타날까? 그때까진 계속 갈고닦고 싶다.




3) 책 읽기

좀 양심 찔린다. 사놓고 안 읽는 책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책 읽기를 취미로 말하기엔 좀. 하지만 대외적으로 제일 대중적인 취미라 남들이 물었을 때 제법 앞에 오는 답변 중 하나다. 우습지만 내 이미지를 좋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책은 한두 달에 한 권 정도 읽는다. 책을 많이 읽어야 글을 잘 쓴다는 명제가 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많게든 적게든 책을 읽은 사람이 글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읽은 책 또 읽는 것을 좋아한다. 유튜브도 이미 봤던 거 또 본다. 영화와 음악도 마찬가지고 하물며 내 글도 그렇다. 봤던 거 또 본다. 그래서 취향의 폭이 넓지도 깊지도 않다. 여태까지는 만족했지만 장수를 꿈꾸는 가장 큰 이유가 살면서 더 좋은 문화를 향유하기 위함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좀 아닌 것 같아서 요즘은 많이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노력이라는 말은 엄청 많이 찾아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책 읽기는 취미 중에 덜 하는 쪽이라 더 이상 할 말이 없네. 서점 가고 싶다.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와 책 냄새를 맡으며 돌아다니고 싶다. 색이 고운 책 표지와 우스꽝스러운 제목을 구경하고 싶다. 요즘 유행하는 책(베스트셀러와는 다르다)을 보며 요인을 분석하고 싶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서 거리를 다니는 내내 들고 다니며 무거워서 낑낑대고 싶다. 집에 가서 책상에 올려놓고 돌아오는 주말에 읽고 싶다.


집 근처에는 마땅한 서점이 없어 대신 도서관에 간다. 반납이 귀찮아 요새는 발걸음이 뜸하지만. 무슨 책이 나왔는지 정도는 모바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하고, 이북도 곧잘 이용하는 편이니 요새는 굳이 밖에 나설 필요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책을 둘 공간이 없어서 나에게는 이북 쪽이 훨씬 나은 방법이긴 하다. 그래도 책장 넘기는 재미가 있는데. 아쉽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사놓고 안 읽는 책과 이북이 쌓일 대로 쌓였으니 그것부터 해치워야 한다. 알겠니.


할 말 없다고 해놓고 또 장황하게 썼다.




4) 덕질

나왔다, 나의 찐 취미. 사실 1번으로 쓰고 싶었는데 그러면 나머지 취미를 다 못 쓸 것 같아서 나중으로 미뤘다. 나의 덕질 연대기를 일일이 적으면 위의 분량 세 배는 너끈히 뽑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취미는 다음 편에 쓰도록 하겠다. 브런치 시작하고 처음이다. 다음 편이 있는 게. 사람 사는 인생 특별할 거 없으니,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라. 나는 평범한 덕질을 했다. 그냥 오래 했을 뿐이다.


그럼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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