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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결 Jul 13. 2023

무더위를 뚫고

낯선 곳을 익숙한 곳으로 만들기

 이사를 오고 학교도 바뀌고 많은 변화가 있었다. 동네가 편치않고 밖에 나가면 어디로 나서야 할지 몰라 곧장 집에 가는 날들을 보내던 중 눈 앞에 보이는  버스를 타고 당장 행궁동으로 향했다. 예정에 없던 설렘과 정해지지않는 목적지가 주는 불안을 눌러담고 출발을 했다.


 오랜 취미인 사진을 찍어도 되고 가방에 담겨있는 책을 읽어도, 또 공책과 연필을 꺼내 드로잉 연습을 해도 되는 날이었다. 늘 할거리는 많지만 무엇에 집중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늘상 해왔다. 무엇가 정하는게 어렵지않았는데 어느 순간 선택을 강요받다보니 어려워졌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 다는 걸 알아버린 나이라 그런가 싶다.


 그래서일까 요즘 자꾸 세상에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충동적으로 오사카 여행을 예약해버렸다.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계절학기도 남았고 휴가철 치솟은 비행기표값이 부담돼 8월말 늦은 일정을 잡게 되었다. 떠날 계획을 잡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붕떠 새로운 터전에 자리잡지 못했다. 서성이는 발걸음과 어디로 향할지 몰라 같은 곳만 빙 도는 단순한 일상의 궤적은 단조로워 지루한 일상을 더 지루하게 만들었다.


생각 잠겨 있다가 버스벨 소리에 든 정신. 서둘러 내린다. 온전히 생각에 잠긴 적이 오랜만이었다. 2번 정도 와본 곳이라 어디로 가야 카페 골목들이 나오는지를 알았다. 발거음은 이미 향할 곳을 알 듯 가벼웠다. 여러번도 아니고 한두번 와본곳이라고 벌써부터 마음이 편하다. 사진기를 꺼내들어 손이 타들어가도록 찍기 시작한다. 손에는 탄내 가득하지만, 행복의 향이다. 좋아하는 한가지는 하루를 종일 들뜨게 한다. 버스에서 가득찼던 불안하고 요동치던 마음은 없던 것 마냥 기억이 나지않는다.


 큰 길로 가다가 옆으로 고개를 좀만 내밀면 보이는 작은 골목길들. 그늘이 진 경계면에 맞닿은 햇볕이 따스하다. 같은 길목이라도 서있는 곳에 따라 온도에 차가 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면 좀만 움직여 경계를 무너뜨리면 몸을 녹일 수 있다. 혹은 열기에 지친 몸을 금새 식힐 수도 있다.

선명한 하늘을 담으려 하다 보니 건물과 팻말의 초점이 흔들린지도 몰랐다.

 요즘 사진을 많이 찍게 되는 이유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새롭기 때문이다. 낯설고 신기하면 카메라를 꺼내들고 정신없이 찍게 된다. 이전 동네에서는 10년을 살았고, 삶의 터전을 바꾼게 이번이 처음이다. 얼마 전 본가에 다녀왔는데 사진에 담을 생각조차 못했던 당연했던 집앞 풍경을 찍은 적이 있다. 큰 벚꽃나무는 잎이 스러지고 낡아진 느낌이었는데 무척이나 나이들어 보였다. 매일 보던 사람을 오랜만에 봤는데 확 성숙해진 느낌이랄까.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3개월만에 보는데도 그 사이에 주름은 깊어졌고, 피부는 좀 더 쳐진게 보이셨다. 익숙한던 것으로부터 떨어져 낯선 것을 접하니 익숙했던 것마저 낯설고 달라졌다는 생각에 조금 슬퍼졌다.

살아간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아직은 이 말의 의미를 정확히 모르지만, 어렴풋이 '이래서 아름답다는 건가?'라는 생각은 든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아름다움의 기준은 예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달라졌다. 삶을 살아내는 치열함과 거기에 보는이의 연민의 시선이 더해지면 그게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그러면 숨가쁘던 생존의 벅찬 호흡이 잠시 느려지고 순간이라는 걸 만들어낸다. 시간이 지나면 스러질 그 아쉬움이 주는 한 순간에 대한 절박함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나는 그 아름다움을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사진을 꺼내보며 다시 없을 순간을 그리워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세상이지만, 난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여운이 길고 한가지를 깊게 느끼는 사람이라 세상은 나에게 종종 버겁고, 빠르다. 아픔이 회복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아마 난 평생에 걸쳐 나만 아는 상처를 여미며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극복하려 노력했던 나의 슬픔은 생각보다 컸기에 감당하며 살아기로 나만의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들에는 극복한 척 혹은 성장해 다음 단계를 해내가는 척 하겠지만, 사실은 아니다. 원래 각자 가진 열망과 기대를 충족해 줄 사람을 찾게 되기 마련이니까.

 세상을 애정어린 눈으로 보다가도 실망하고 다시 기대하기를 반복하는게 인생인 것 같다. 한가지일에 들뜨고, 행복했던 하루가 한마디에 풀 죽기도 하고. 문장을 꼭 끝내고 마침표를 찍어야 의미가 전달되는 게 아니듯이 물음이 가득한게 인생이고 이에 대한 고민을 하는게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미완성에 대한 불안은 인간이면 가지는 상태이고, 이를 떨쳐내려 하면 더욱 선명해지는 사실. 그냥 흘려보내고는 답을 내려하기 보다는 찾아가는 과정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 사이 행복이 찾아들고 불운은 무뎌진다.


 시간이란 썰물은 생각이상으로 힘이 세서 아무리 큰 장벽일지라도 수많은 모래알로 흩트려버린다. 모난 부분이 전체가 될 때 해변은 단단해지고, 거닐 산책로가 쉼터가 된다. 얼마나 수많은 발자국들이 왔다 갔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과거가 어떠하든 바다란 사실은 변치않는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다들 자신만의 바다 정도는 품고 살지 않는가. 그 넓이와 깊이는 각 각 다르지만 밀어내는 마음과 끌어당기는 마음 사이에서 우린 늘 갈등한다.

 스콘을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수없이 쌓인 식기와 그릇, 커피잔들은 마치 달그락거리며 자신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대화를 하는 듯하는 비밀스런 장소에 왔다. 겉으로 보았을 때 평범했는데 그 내부는 치밀하고 은밀하게 아늑하기 그지없다. 나만 아는 건 아니지만, 나만 아는 방식을 만들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곳이다.

감성적인 사진에는 약간의 쑥스러움이 필연적이다. 다리를 굽혀 허리를 살짝 뒤로 젖혀야 나오는 각도.


그림을 배우는 일은 즐겁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이것저것 만져보던 호기심 가득한 눈이 되어버린다.

 마음에 드는 공간에서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한다는 건 마음에 크게 위로가 된다. 잡생각들을 떨쳐버리고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아끼는 메종마를지엘라 향수 커피브레이크의 향취가 묻어나는 시간이었다. 커피 한잔이 주는 여유때문에 카페라는 공간이 큰 사랑과 성공을 거둔게 아닐까 한다. 주문을 하고 음료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허용된 잠시의 대화, 그리고 커피가 식어가기 전에 마시기위해 할거를 멈추고 온전히 음미에 집중하는 시간을 우리는 휴식이라 부른다. 별거 아닌게 쉽지않은 세상에서 카페는휴식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한다. 일하는 이들도 많지만, 갑갑한 회사를 벗어나 자신의 감성에 맞는 곳에서 약간의 일탈이 되어주니 이 또한 괜찮다.


 주인 곁에서 가능한 볼 수 있는 세계의 최대한의 거리를 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사랑이란 메여있길 자처하고 또 호기심에 곁눈질하지만 결국은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다.

어디를 가든 고양이만 보면 찍게 됐던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된 사진

고양이의 평온함이 좋다. 요동치는 마음에도 그냥 보고 있으면 아이같은 미소가 지어진다. 말을 끊는 법을 모르고 시끄럽던 내 속은 고요해지고 숨죽인다. 잔뜩 늘어뜨린 몸이 놀라 경직되지않게 숨을 죽이고 낮은 자세로 멀리 지켜보다 보면 어느새 한마리의 고양이 되버린다. 그냥 풀밭에 누워 쉴 수 있는 동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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