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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보리 Jun 14. 2020

나는 매일 옥상에 올라간다

매일 생각정리

뭔가 비장한 듯 하지만 그렇지는 않고,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옥상으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다. 사무실에서 옥상까지 5층이기는 한데 층마다 2층 높이이니 대충 10층 높이를 출근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 번에서 두 번 정도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요즘은 급격히 더워지는 바람에 체력이 종종 바닥을 보여서 포기할까 생각도 가끔 들지만 아직은 할만해서 계속 오르내리고 있다. 


처음 그러니까 한 달 전, 우울로 가득 차 갑자기 하염없이 울기도 하고 죽고 싶다는 생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하나 둘 쌓이기 시작했다. 이런 밤이 처음은 아니어서 극복해보려 했지만 경험만 처음이 아닌 것이지 약이 개발되지 않은 병처럼 해결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본능적으로 였던 것 같다. 옥상을 올라가야지 생각했던 건 그때쯤, 불현듯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 점심시간에 비상계단으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계단에 멍하니 앉아 있으면 벌컥벌컥 열리는 비상구에, 비상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는 누군가 때문에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옥상으로 나가야지 생각을 했다.


옥상은 비상계단 외에는 그늘이 없어서 그런지 다행히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건물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출퇴근 시간이 아닌 이상 사람이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종종 옥상 비상계단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나를 방해할 사람이 없었다. 10층 높이를 걸어 올라가고 건물 테두리를 한 바퀴 빙 돌고 다시 10층 높이를 내려오면 조금 마음이 개운해졌다. 처음에는 테두리를 돌며 뛰어내릴 자리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먼 하늘을 보며 뒷짐을 지고 걷거나 너무 머리가 복잡해 터져 버릴 것 같은 날에는 스마트폰을 봤다. 게임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블로그도 보고. 


나는 혼자만의 충전시간이 많이 필요한 사람인데 자꾸 잊고 산다. 직장이건, 모임이건, 사람이 많은 곳은 내게 지옥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 끝엔 꼭 박람회나 공연장 같은 곳에 가면 힘들면서도 행복해하는 나를 떠올린다. 집이나 회사에 있는 사람들은 수시로 눈치가 보이지만, 불특정 다수가 목적을 가지고 모이는 장소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 한 누구도, 옆사람조차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같은 공간,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나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아마도 요즘의 우울은 박람회나 공연장을 가지 못해서라는 이유도 약간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아마 체력이 버텨주는 한 계속 옥상에 올라갈 것 같지만 이마저도 어려울 땐 난 또 어떤 방법으로 나를 달래려고 할까. 문득 고민이 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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