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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보리 Jun 18. 2020

엄마의 기술

아기들과 친해지기 고수


엄마는 내가 아는 세월만 해도 거의 30년 아기를 돌보는 일을 하셨다. 내가 어릴 때부터 다른 집 일을 도와주는 일을 했는데 거의 아기가 있는 집이다 보니 옛날에는 아기 돌보기와 집안일을 같이 하셨을 때가 많았다. 요즘은 일이 세분화되어서 아이 돌보기, 집안일, 반찬 만들기 등등 따로 일을 도와주긴 하지만 겸사겸사 아이 돌봄과 집안일을 병행하고 계신다.


오랜 세월 갓 태어난 아기부터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아이들까지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다 보니 레시피가 따로 없이 적당히가 전부인 '엄마 밥'처럼 딱히 요령은 없는 듯한데 초면인 아이도 엄마품에 오게 만드는 뭔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한 번은 가족끼리 외식을 했는데 식당 옆 테이블에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아이콘택트만 몇 번 한 적이 있었다.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엄마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그쪽 테이블이 먼저 일어나며 계산을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엄마에게 와 폭 안기며 가기 싫다며 우는 것이었다. 엄마는 결국 식사를 하시던 중 일어나 그 아이를 배웅해 줘야 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다.




요즘도 평일에는 매일 아기 있는 집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특히 엄마는 한 집에 아이가 둘 이상 있는 집을 자주 가신다. 아기 엄마들도 사람인지라 막 말이 튼 첫째에게 집중하다 보면 아직 말을 트지 못한 둘째는 조금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반대로 둘째가 막 태어날 땐 첫째들이 소외감을 느낀다고도 한다. 엄마의 일은 그런 집에서 잠시 한 아이와 같이 있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아기 엄마들이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느 아이든 첫 만남은 쉽지가 않다. 낯선 이와 만나는 건 돌도 안 지난 한 살 아이든, 다섯 살이든, 여덟 살이든 짧은 시간 안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엄마는 그래서 아이의 곁에서 기다려준다. 간단하게 집안일을 하며 아이의 시야에서 움직이고 아이를 살핀다. 그렇게 3일째쯤 되면 아이가 문 앞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인사를 하고 손을 잡고 제 방으로 데려간다. 아이는 짧은 시간이라도 완전한 자기 편이 있음을 안다.


아직 말이 트지 않은 아가들은 의사소통이 어렵다. 의사소통은 어려운데 궁금한 건 많아서 몸으로 표현을 많이 한다. 엄마가 아가들을 어린이집 차량에서 픽업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집으로 데려가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선생님이 잘 놀아줬어?"

"친구들이랑 잘 놀았어?"

"밥은 맛있게 먹었어?"

"밥 먹을 때 선생님이 도와줬어?"

"간식은 맛있게 먹었어?"

"낮잠은 잘 잤어?"


백 퍼센트 완벽한 대화는 아니지만 대부분 응, 아니로 대답이 가능한 질문들이기 때문에 소통이 가능하다. 시간이 지나 아이가 말을 트고 구체적인 대화가 가능하면 대화가 계속 이어지게 한다.


"이모님~ 내가 차 사줄 거야"

"우와 애기가 이모님 차를 사준다고? 신난다~ 애기가 어떻게 이모님 차를 사줄 거야?"

"돈 많이 많이 벌어서 사줄 거야."

"응~ 그렇구나~ 이모님은 어떤 차를 사줄 거야?"

"벤츠~ 벤츠 사줄게요."

"벤츠~ 그럼 애기랑 이모님이랑 벤츠 타고 어디 가면 좋을까?"


이상한 대화 같지만 막 두 돌을 넘긴 아이와의 대화이다. 보통의 엄마들은 아이가 이런 식의 말을 꺼내면 어떻게 대화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만약 아기가 있었다면 이 대화는 아마 두 마디도 못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기들이 엄마의 무얼 좋아하는 것 같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이름을 성까지 붙여 부르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엄마는 나나 동생의 이름도 세 글자 다 붙여서 부르는데 그래야 부귀하고 건강하게 잘 산다고 어디서 들었다고. 엄마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나도 친구들 이름을 세 글자 다 부르는 경우가 어색하지 않다. 엄마에게 이름 세 글자를 다 불리던 친구들은 처음에는 어색한데 이유를 말해주면 반응이 좋을 때도 가끔 있다.


그리고 한품에 꼭 안아주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그런데 거의 초반에 그렇게 꽉 안다가 역효과가 날 뻔한 적이 있어서, 처음에는 손안에 손가락을 넣어 잡게 하고 다음에는 어깨나 등을 쓰다듬어주고 아이의 의사를 물어가며 안아줄지 말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며칠 안 걸리는 아이도 있고, 몇 달이 걸리는 아이도 있다고 한다. 많은 아이들을 만났기에 엄마는 철저히 아이 위주로 완급 조절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워낙 솔직하기 때문에 가끔 엄마를 곤란하게 할 때가 있다. 엄마가 있는 시간에 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셨을 때다. 자주 찾아오는 조부모는 괜찮지만 한두 달에 한 번 가끔 찾아오는 조부모들의 경우에는 아이가 피하는 경우가 많다. 작은 아기들을 다루는 스킬을 잊은지 이미 오래된 그들의 손길이 아이에게 반가울 리 없는데 가끔 아이를 거칠게 잡아당긴다거나 무리한 스킨십을 하려는 이들이 있다고 한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엄마에게 달려온다고 한다. 정말 난감하다고.




나도 엄마의 이런 사랑으로 컸다. 엄마의 이런저런 기술도 배웠으면 좋겠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엄마의 삶이 담긴 기술이라 어깨너머로 본다고 배워지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내가 가끔 타인을 좀 과하게 관찰하거나 조심스럽게 대하는 걸 본다면 아마 그게 엄마에게 배운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외에도 더 있을 것 같은데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아 이만 마무리해야겠다. 


엄마의 손을 거쳐간 많은 아이들이 지금은 어떻게 컸을까 엄마랑 앉아 얘기한 적이 있다. 그저 다들 착하고 좋아하는 것을 하며 아프지 않게 잘 크고 있기를, 컸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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