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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보리 Jun 24. 2020

타인의 친절함에 대하여

오타루에서 만난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2년 전 첫 해외여행을 간 적이 있다. 절친한 동생이 퇴사한 나를 위해 준비해 준 여행이었다. 목적지는 가까운 일본 북해도 오타루였고 3박 4일의 일정이었다. 겁도 많고 사서 걱정하는 스타일이라 여행 내내 동생을 따라다녔는데 일정 중 하나가 '오타루 수족관'에 가는 것이었다.


숙소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버스 종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수족관으로 바로 가는 버스가 있어 기다리는데 동생과 나 둘 다 착각을 해 다른 버스를 타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당당하게 구글맵을 켜놓고 가는데 버스가 갈림길에서 수족관 표지판이 멀어지며 반대 길로 가고 나서야 잘못 탔다는 걸 깨달았다. 동생도 순간 멘붕이었고 나는 첫 해외여행이니 더 멘붕이었다.


그렇게 한국 여자 둘이서 일본 한복판에서 사고 정지가 되었는데 은인처럼 나타난 사람은 버스기사 아저씨였다. 아저씨라 부르기엔 조금 지긋한 나이로 보였던 기사님은 '오타루 수족관' 밖에 말 못 하는 우리를 위해 당신도 서툰 영어로



'쓰리 스테이션 넥스트 다운 (반대편에서 타라는 듯 손을 휘저으며) 바스 넘버 일레븐 오케이?'



기사님의 말대로 쓰리 스테이션 후에 내리는데 거기가 우리가 탔던 버스의 반대편 종점이었다. 터덜터덜 내려 알려준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기사님은 우리가 제대로 된 곳에서 기다리는지 버스에서 내려 지켜봐 주기까지 했다. 눈이 마주치니 손을 흔들며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가 절로 나왔다. 혹여 수족관으로 못 가면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자고 할 참이었다. 11번 버스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온통 눈 언덕이었다. 구글 지도도 친절한 버스기사 아저씨도 없었으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새삼 그 존재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우리는 즐겁게 수족관에 도착했고 하루 종일 그곳을 즐겼다. 우뚝 솟은 수족관 건물과 바닷가에 자리 잡은 수족관을 다리가 후들거릴 때까지 애들 사이에 섞여 신나서 돌아다녔다.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아 돌고래쇼도 보고 한가롭게 헤엄치는 물개도 보고 귀여운 펭귄도 봤다. 즐기는 내내 둘 다 버스기사님의 친절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몇 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은 나에게 워너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들은 다 가도 무언가 나는 감히 넘보기 힘든 영역 어딘가에 있었다. 그래서 해외여행은 티비드라마처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퇴사 준비 등으로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져버린 나에게 본인의 힐링 아이템이 된 여행을 추천하고 계획도 짜주고 나를 데려간 게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거기다 평소 물을 무서워해서 아마 혼자 오타루에 갔다면 아무리 관광명소니 가라고 해도 가지 않았을 수족관을 간 것도 큰 경험이었다. 그 며칠 동안 나에게 없던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해준 동생이 더없이 고마웠다. 더불어 망칠 뻔했던 하루를 도와준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버스기사님도 고마웠다.




얼마 전 퇴근길에 어떤 아저씨가 나를 붙잡고 길을 물어봤다. 평소 같았으면 쌩하니 갔을 텐데



'스미마셍. 인천타미나루 어디로 갑니까?'



지하철 노선도를 펼쳐 보이며 서툰 발음으로 다급하게 묻는데 왜인지 오타루에서 만난 친절했던 버스 기사님이 떠올랐다. 헌데 일본어를 전혀 모르니 쭉~ 저리로 가라고 손짓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어차피 나와 같은 방향이라 앞서가는 아저씨가 신경이 쓰였는데 갈림길에서 머뭇거리는 아저씨와 눈이 마주쳐 다시 손짓으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날의 나처럼 '감사합니다~' 하며 또 바쁘게 승강장을 향해 걷는 것을 확인했다. 멀리 그 아저씨가 지하철을 타는 것을 확인하고는 목적지에 잘 갔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 기사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요즘 들어 부쩍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비록 랜선이지만 얼굴도 나이도 모른 채, 그저 외로움에 지친 나에게 따뜻한 마음을 건네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나도 그 마음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랜선친구들에게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친절만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하는 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받은 그 친절만큼 타인에게도 베풀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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