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는 습관에 대하여
"나도 눈 이렇게 됐어!!"
저녁을 먹고 잠시 쉬려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는데 오른쪽 눈이 흐릿했다. 거울을 보니 결국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지난달에는 엄마가 얼마 전에는 동생이 눈 흰 자가 새빨개지도록 염증이 났었는데, 어젯밤 내 오른쪽 눈이 딱 그렇게 됐다. 동생과 엄마는 왜 나까지 그러냐며 속상해하고는 결막염에 넣는 안약을 주었다. 비상으로 갖고 있던 염증 약을 먹고 안약을 넣었다.
사실 오른쪽 눈이 불편한 건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다. 안과를 한 번 가야 하는데 되뇌기는 했지만 정작 시간이 생기면 까먹기를 반복했다. 오늘 경과를 보고 내일은 병원에 가는 걸로.
종종 약간의 불편함은 참다가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조금이라도 불편하고 의문이 생기면 바로바로 푸는 사람들이 있던데 나는 정반대다. 크게 불편하다 해도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으면 불편한 채로 살아가는 스타일이다. 불편함에 익숙해지다 보면 그 불편함이 다들 그렇게 사나보다 하고 무뎌지게 된다.
불편함에 얼마나 무디냐면 서른 살쯤 속옷이 꽉 낀 채 계속 불편하게 살았었다. 10년 동안 얼마나 살이 많이 쪘는데 스무 살 적 사이즈 그대로 속옷을 사고 있던 것이었다. 속옷 사이즈를 늘려 사고 나서야 해결이 되었다. 혹자는 멍청하다고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1월 간단한 감기 처방을 위해 동네병원에 갔다. 그 병원에서 의사는 내게 청진기를 대더니 건강위험 소견이 있다며 채혈을 했고 처음으로 고혈압, 고지혈증 진단을 받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만 피곤하면 늘 몸이 퉁퉁 붓고 식사 후면 늘 호흡곤란이 오기 전까지 심장이 뛰곤 했는데 워낙 오랜 시간에 이런 상태로 살다 보니 이 불편함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 문제가 문제가 있다는 걸 인식했던 건 최근은 아니었다. 7-8년 전 심장이 너무 불편해 - 심장이 뛰고 있다는 걸 두세 시간 동안 느끼는 경험 - 동네병원을 갔었는데 의사가 웃으며 살이나 빼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 당시 5킬로를 뺐는데 여전히 불편했다. 그 불성실했던 의사의 말을 기억한 채 불편하게 살다가 몇 년만에 다른 동네병원을 갔는데 내 이 고질병의 이유와 해결책을 주는 것이었다.
'그동안 불편하지 않았어요?'
'불편했죠.'
'... 언제부터요?'
'최소 8년?'
'그런데 왜 그동안 병원에 안 갔어요?'
'옛날에 저쪽 상가 병원 갔는데 살이나 빼라 그래서 살을 뺐는데 똑같아서 그냥 살았어요. 사람이 이게 5년쯤 넘으면 다 그런가 보다 하고 살잖아요.'
'그래요. 그럼 이제 본인의 상태를 체크해 보세요.'
약을 먹기 시작하면 부기가 빠져 살이 빠지는 걸 느낄 거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도 없어질 거예요.
정말 그의 말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명의가 따로 없다. 부기가 빠지고 (부기 좀 빠졌다고 살이 확 빠지는 건 아니다) 식후 심장발작이 줄어드니 사는 게 좀 편해졌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전과 같은 증세가 나타나면 예민해졌다. 스스로 불편함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예전 직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을 기억해보면 크리스마스 3일 전 독감에 걸린 일이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하고 사경을 헤맬 정도로 주말을 아팠는데 기어이 월요일이 되니 출근을 했다. 나중에 퇴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이 이야기를 했는데
'누가 아프면 참으래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러게 나는 왜 미련하게 출근을 했던 걸까. 당장 사경을 헤매면서도 무엇을 위해서.
무엇을 위해 참았던가 떠올려보니 더 먼 과거가 끄집어내졌다. 한 번은 기록적인 태풍이 동네를 지나가 모든 교통이 마비됐는데 서울은 멀쩡하니 출근하라는 팀장이 있었다. 그 말에 나는 또, 바람에 날아다니는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피하며 역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데, 지하철이 움직이지 않아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 못 간다고 연락을 했다. 돌아가는 버스에서 보았던 가로로 날아다니는 현수막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집에 돌아와 티비를 켜니 나보다 더 억척같이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뉴스에 나왔다. '7시에 출발했는데 12시에 도착했어요.' 기어이 출근을 했다는 시민이 다행이라는 얼굴을 하며 퇴근은 어떻게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그날은 지금도 생소한 자택근무를 해야 했다.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하고 나서도 곱지 않은 이야기가 오갔다. 돈도 없는 거 같은데 당장 그만두고 뭘 할 수 있겠냐는 거다. 맞다, 난 아무 준비도 없이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다. 남은 대출금에 허덕이며 그동안 그만두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보다 바닥에 처박힌 내 상태가 중요했다. 순간 평소 같았으면 속으로 삼켰을 말을 뱉어냈다.
'맞아요. 사장님이 돈을 그거 밖에 안 줘서 저 돈 없어요. 언제까지 그런 돈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제가 여길 더 다녀야겠어요? 다른데 가면 이거보단 더 주지 않을까요?'
쌓이고 쌓였던 것들이 뭉쳐져 입 밖으로 튀어 나왔다. 그 후로는 어떻게 대화를 이어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불편한 자리에서도 내색 없이 웃는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웃음이 그저 참다 폭발하는 폭탄의 한줄기라는 걸 이미 눈치챈 사람들이다. 불편을 감내하는 사람들은 마지노선이 있는데 쌓이고 쌓이다 그 선에 닿는 순간 한번에 빵- 터지고 만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라고 하면서. 한국에는 화병이라는 병명도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배우는 건 화와 병은 참을수록 해롭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몸에 배어버린 나같은 사람들은 더 삐뚤어지기 전에 표현을 하든, 침묵을 하든 내색을 하는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몸이 불편하니 온갖 생각이 다든다. 내일은 맛있는 것 좀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