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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보리 Jul 17. 2020

아이돌 덕후의 삶이란  기쁨과 고달픔이 함께 간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한다.


내 나이는 앞자리가 4로 바뀌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돌을 처음 좋아한 게 10대 초반이었으니 내 인생의 약 70%가 아이돌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해 한해 티비를 보며 한 아이돌그룹을 꽤 오래 좋아하기도 했고 다른 아이돌로 갈아타기도 여러 번 했다. 내가 군대 보낸 아이돌만 해도 몇이던가.


10대, 20대 일 때는 언니오빠들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동갑내기들이 유명해졌고, 30대가 되니 아이돌의 평균 나이와 내 나이가 점점 멀어져 갔다. 5살까지는 양심 없이 오빠라고 불렀다. 잘생기면 다 오빠랬어 변명하면서. 나이 차이가 10살쯤 되니 갑자기 엄마 마음이 생겨났다.


가장 최근에 좋아한 그룹의 막내의 나이는 나의 학번과 같았다. ○○ 나이가 ◇◇라고? 내가 △△학번인데... 라는 아재 드립을 칠 수 있는 나이가 된 것이다.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내 인생에서 아이돌을 끊어낼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돌을 좋아하는 마음에 나이는 그저 하나의 숫자에 불과했다. 이성을 보는 마음에서 엄마 마음으로 옮겨갔고, 활활 불타던 마음에서 잔잔한 마음으로 그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 좋아하는 아이돌을 보며 느끼는 기쁨은 여전히 내 생활에 활력소가 되어주곤 했다.


요즘은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하면 '아, 나도 걔 알아. 매력 있더라~' 하며 호의적인 반응들을 종종 보게 되지만, 불과 4,5년 전만 해도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철없고 생각이 없는 이들로 비춰지곤 했다. 연차가 많은 락밴드나 인디음악을 위주로 좋아하는 소위 꼰대들은 아이돌이 하는 음악은 상업 쓰레기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돌이 하는 음악의 퀄리티가 높아졌고 아이돌과 콜라보를 하는 음악인들이 많아졌다.


또 자기 을 만들어 제 목소리를 내는 아이돌도 많아졌다. 최근 자작곡으로 유명해진 아이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전 국민이 알 것 같은 '아무노래'의 프로듀서 '지코'가 있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아이돌 중 최근 배우와 병행해 활동하는 '옹성우'가 있는데, 음악 쪽 일을 하는 친구와 함께 앨범 전곡 작사 작곡에 참여해 팬으로서 뿌듯함을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https://youtu.be/QFRG3dWzo3E

말 꺼낸 김에 타이틀곡 링크도 첨부한다. 뭐, 꼭 보라는 건 아니고... (봐주세요)



입덕과 입덕부정기, 그 오묘한 경계


지인의 영업이나 우연히 보게 된 매체의 영향으로 새로운 아이돌에 입덕은 갑자기 찾아온다. 나의 경우 한두 가지 포인트에 관심을 가지고 입덕부정기를 겪는데 대게 한 달 정도를 지켜본다. 한결같은 외모 취향도 있고 팬사인회 같은 팬 서비스를 하는 현장에서의 반응들을 보고 좋아하기도 한다.


사실 무대와 노래 실력 등은 그 다음이다. 요즘 아이돌들은 거의 완벽하게 세팅되어 나오는 것 같지만 나이가 드는 것과 무대 경험으로서 채워지는 실력의 향상과 감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데뷔 초창기 실력이 그저 그래도 그 열정을 발견하면 입덕하고 꾸준히 지켜보게 된다.


지켜보다 보면 노래든, 춤이든, 작곡이든, 연기든 어느 장르에 갑자기 실력이 일취월장하기 시작할 때가 있다. 거기에 외부의 긍정적인 신호까지 이어지면 내가 이뤄낸 일인 양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쾌감이 전달되기도 한다.


한 달 정도 지켜보고 애정이 커지고 3개월 이상 갈 거 같으면 친구들이나 주변에 덕밍아웃을 한다. 나 뫄뫄 좋아해라고 선전포고를 하는 이유는 사실 내 앞에서 걔 욕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제일 크다. 그래도 눈치 없이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 아직까지는 크게 없었던 듯 쓰려니 몇 번 있던 게 생각났다 - 대놓고 말하기도 한다. 그냥 내가 좋은 거라고. 당신이 운동이든, 영화든 무언가를 좋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내가 오만정이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은 계속 덕질할거고.




탈덕에는 4가지 이유가 있다.


이건 비단 아이돌에만 해당되는 이유는 아니다.


첫째, 내가 좋아하는 당사자의 잘못과 드러나는 인성

사실 덕질을 끊는, 흔히 탈덕하는 이유는 정말 사소하다. 누가 들어도 별거 아닌 말실수를 한 적도 있었고 과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 한 발 뒤로 물러선 적도 있었다. 성실한 이미지를 보고 좋아했는데 데뷔 후 음주가무에 빠져 본업을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 친구도 있었다. 그룹일 경우, 나이가 들면서 제 밥그릇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그룹과 개인의 일의 우선순위를 바꿔버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탈덕의 이유 중에 하나이다.



둘째, 소속 연예인에 대한 회사의 형편없는 대우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그룹 신화를 좋아했었다. 데뷔 2년 차인 1999년부터 2년 전까지 좋아했으니 거의 20년을 좋아한 셈이다. 1n년 전, 신화의 전 소속사였던 에셈과의 마찰 때문에 신화가 너무 대우를 못 받는다는 생각에 잘 때 에셈 쪽으로는 머리도 안 두고 잔다는 농담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아득하다)


이런 소속사와 직원 간의 갈등은 우리 같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에게도 흔한 고질병 같은 문제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하는 것에 비해 회사에서 너무 형편없는 대우를 받거나, 다른 멤버와 차별을 받을 때 견디다 못해 탈덕해 버리고 만다. 에이, 내가 그 꼴 안 보고 살지 하면서 말이다.


정말 웃긴 상황은 내 아이돌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회사를 차릴 때이다. 내 아이돌이 회사를 차리면 달라지겠지 싶지만, 회사 대표를 욕해야 회사의 일처리 미숙에 대한 분이 풀리는데 그 머리에는 항상 내 아이돌이 있다. 다행인 건지 지금은 그런 불만이 적은 편이다.



셋째, 팬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소비자 간의 갑질, 선생질

아이돌과 팬은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멀찍이서 보면 상품 공급자와 소비자에 지나지 않는다. 종종 이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슈를 좋아하는 언론에서는 이런 X들을 '사생팬'이라고 부른다. 이들이 저지르는 짓은 범죄이니 언급조차 필요 없어 넘어가도록 하겠다.


문제는 자신과 취향이 다른 사람을 향해 틀렸다고 공격하고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같은 팬덤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는 컨셉 등을 가지고 나오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들을 하면, 욕은 기본이고 수위를 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을 보는 당사자와 팬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짓이다. 이런 말들은 흐름을 타면 자연스레 무리가 형성된다. 즐겁자고 시작한 덕질에 이런 무리가 형성되고 계속 보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여 결국 그 아이돌을 탈덕하게 된다. '나는 너를 사랑하지만 이 개소리들은 참을 수 없다' 인 셈이다.



넷째, 활동을 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잊히는 존재

하지만 아이돌에게 가장 슬픈 일은 잊히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 회사에서 다 1등이 될 수 없듯, 데뷔하는 모든 아이돌이 성공할 수는 없다. 당장 가요프로만 봐도 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그룹들이 얼굴도, 이름도 기억되지 않은 채 나왔다 들어가는지 모른다. 데뷔 후, 작게나마 팬덤이 형성되더라도 수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다음 앨범 활동은 불투명해진다.


회사들이 아이돌 그룹 데뷔를 시킬 경우 보통 6-7년 정도 계약을 하게 되는데, 이 시기 안에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고 서로 돈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버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계약 기간을 모두 채우면 다행이지만 회사가 자금이 없어 망할 경우 말 그대로 데뷔도 못하고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 이렇게 데뷔조차 못하고, 제대로 된 활동조차 못하면 잊히는 건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나의 최애야, 즐겁게 일하고 치열하게 살아줘


글 초반에 언급했지만 지금도 좋아하는 아이돌이 있다. 한시적 그룹 활동을 했었고 그룹 활동 종료 후 각자의 길을 걷는 이들의 일부를 지켜보고 응원하고 있는 중이다. 이 아이들이 내 마지막 아이돌이 될 것 같지만, 그건 장담할 수가 없다.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좋아하거나 따라다닐 수는 없지만 이런저런 친구들을 오래 지켜보다 보니 성공보다는 소소한 바람들을 더 가지게 된다.



일은 즐겁게 삶은 치열하게 살아낼 것

힘들면 힘들다 말하고 자신을 가장 아끼고 마음껏 사랑할 것

흘러가는 인기를 과분하다 생각 말고 충분히 즐길 것

스스로의 선한 마음을 잊지 말 것

범죄자에겐 자비가 없을 것



그들에게 하는 이런 말들은 사실 나의 다짐이기도 하고,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은 말이다.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사소한 것들을 잊게 되는데, 멈추고 돌아보았을 때 후회가 없으려면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양형모 기자가 SNS에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감성적인 멘트들을 종종 올려 많은 팬덤의 공감을 얻어냈던 일이 있었다. 유행처럼 아이돌 팬덤뿐만 아니라, 존재하는 많은 팬덤들이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으로 시작하는 수많은 연서들을 올리기도 했었다.


굳이 티비에 나오는 사람이 아니어도 된다. 지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되고 물건이어도 된다.

누군가의 혹은 무언가의 팬이 된다는 것은, 나만의 비타민을 하나 품고 사는 것이기에 나의 덕질은 당분간 쭉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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