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남동구에 10년 이상 거주한 시민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올리브백화점, 구 희망백화점이라는 건물이 있다. 요즘은 가본 적이 없지만 25년 전 내가 꼬꼬마 시절 지하 1층은 어디로 고개를 돌려도 초밥집이 있어 거의 초밥 거리를 방불케 했다.
한참 식욕이 폭발할 성장기 때 4살 터울의 남동생에게 늘 먹는 걸 양보해야 했는데 (양보했다기보단 소화력이 떨어져서 천천히 먹다 보니 늘 내 몫은 모자랐다), 동생은 날음식을 싫어해서 유일하게 나만 먹을 수 있는 게 초밥이었다. 엄마는 내가 초밥에 미친 걸 알고 나를 혼내고 나서나 내가 학교 일로 시무룩할 때면 늘 그 희망백화점 초밥집에 데려가 주셨다. 25년 전에 초밥 1인분이 5천원이었으니 싼 가격은 아니었다.
자주 가다 보니 꼬꼬마임에도 장금이처럼 본능적으로 맛집을 알아냈고 나중에는 한집만 단골로 가게 되었다. 그 가게 이름은 몰랐었는데 6년 전엔가 '다미초밥'이라는 이름의 가게였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항상 그 자리에 있었기에 지하 입구로 들어가 세 번째 오른쪽 집이라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오히려 내 단골집을 견제했던 집 이름이 유진초밥이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이 집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더라)
지하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네모난 가게의 사면이 다 테이블이었던, 요즘 스타일로 바 형식으로 된 리얼 오픈 키친이었다. 가운데에서는 셰프 세명 정도가 초밥을 쌌고 주인아저씨가 한 줄, 아저씨 아들이 두 줄, 막내가 한 줄을 맡아서 초밥을 쌌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어차피 다 비슷비슷해서 내 단골집은 다른 이들의 단골집이기도 했다. 언제 가든 다른 집들보다 늘 북적거려서 다른 집의 부러움을 샀다. 주말에는 테이블에 사람이 꽉 차고도 대기해 줄을 섰다. 단골집에 사람은 많고 기다리기 싫으면 그 손님들은 다른 집으로 향했다. 결국 순환율을 높이기 위해 초밥 외의 음식을 준비했던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초밥 크기의 밥을 제조해서 셰프들에게 나누어주었고, 그걸 받은 셰프들이 그 위에 고추냉이와 잘 숙성된 생선을 얹어 접시에 담아 앞에 앉은 손님에게 내어주었다.
주인아저씨는 나보다 키가 약간 컸던 할아버지였다. 꼬꼬마들이 앞에 앉으면 무한리필에 가까운 서비스를 주셨는데 나도 그 이쁨을 받던 꼬꼬마 중에 한 명이었다. 처음 젓가락질을 서툴게 해 초밥을 간장에 자꾸 빠트리자, 초밥을 옆으로 눕히면 밥이 부스러지지 않게 잘 집을 수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간장은 생선에만 살짝 찍어야 간장과 숙성된 생선과 밥의 맛을 동시에 느끼면서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종종 초밥을 먹을 때면 그 할아버지의 가르침대로 먹는 게 습관이 되어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아저씨가 이걸 다 먹으면 한 접시를 더 서비스로 주겠다며 고추냉이가 좀 더 얹어진 활어초밥을 하나 내 앞에 놓아주셨다. 한 접시 추가라는 말에 덥석 먹었는데 정말 매워서 눈물이 찔끔 났던 기억이 있다. 성공했고 난 공정하게(?) 한 접시를 더 얻어먹을 수 있었다. 하도 행복한 표정으로 맛있게 먹어서 장난친 거라고 하더라. 그 이후로도 손님이 적당하게 있을 때면 늘 2인분 같은 1인분을 얻어먹었다.
초밥을 내 돈 주고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난 후, 그 장소 그 초밥집을 몇 번 더 찾은 적이 있었다. 꼬꼬마를 예뻐하던 할아버지는 없었고 키 큰 아저씨의 아들이 그 할아버지의 자리에 있었다. 그 할아버지는 이제 안 계시냐고 물으니 오래 가게를 하셔서 힘이 들어 은퇴하셨다고 했다. 아들인 아저씨는 에누리 없이 딱 12개를 접시에 담아 내주었다. 그리고 서비스 초밥 2피스와 마끼 하나. 맛도 달라진 것 같아 한참 동안 찾지 않았다.
6년 전쯤이었나. 근처에 일이 있어 들렀고 점심을 먹어야 해서 백화점 뒷길을 따라 쭉 올라가는데, 덩그러니 간판이 툭 튀어나온 초밥집 하나가 눈에 띄어 들어갔다. 어? 그 키 작은 할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내가 꼬꼬마 시절에도 이미 30대였는데 그로부터 거의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그분에게서도 세월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희망백화점에서 초밥집을 하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할아버지의 안부는 따로 묻지 않았다.
맛이 달라져서 발을 끊었던 이후 우연히 길을 걷다, 거의 10여 년 만에 찾은 셈이다. 꼬꼬마 시절 오천원이었던 모둠은 만오천원이 되었고 그때 그랬던 것처럼 냉모밀과 함께 주문을 했다. 초밥을 딱 입에 넣는 순간 어릴 때 먹던 맛이 그대로 떠올랐다. 세월이 흐르며 아들아저씨도 그 할아버지와 같은 맛을 내게 된 것이다. 그 반가움이란 말로 표현하기가 힘든 감동이었다. 엄마도 장국맛이 그대로라며 좋다고 했다.
우리가 한참 맛있게 먹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과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엄마로 보이는 가족이 함께 앞테이블에 앉았다. 초밥과 이것저것을 시키고 먹는데 아이들이 초밥을 간장에 푹푹 담가 먹는 게 보였다. 저렇게 먹으면 안되는데... 하며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그걸 본 아저씨가 다가가 잘먹는 방법을 알려주셨다. 내가 당신 아버지에게서 배웠던 것처럼. 아이들은 표정은 별로였지만 그 모습이 나는 좋았다.
꼬꼬마 시절 능력 있는 셰프에게 잘 먹는 방법을 잘 배운 덕에 성인이 되어서도 내 소울푸드는 초밥이다. 오늘은 다른 곳에서 초밥을 먹고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렸지만 조만간 그곳에 다시 가 그 맛을 느끼고 싶다.
여러분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