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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Jan 28. 2021

재미있는 이야기는 생명력이 강하다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교유서가)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을 갈아타고 출근을 한다. 출근을 할 때는 책을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고, 따뜻한 버스 안에서는 졸리다. 퇴근을 할 때 주로 책을 읽는다. 오픈조이기 때문에 내가 퇴근할 때는 사람이 거의 없다. 버스는 멀미가 너무 심해서, 지하철이나 버스 정류장에서 읽는다.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넘어가는 풍경을 보면서 혹은 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에 끼어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책을 펼치는 일이 좋다.     


요 며칠은 로알드 달의 단편선을 들고 다녔다. 짤막한 단편들이라 이동할 때 읽기가 좋았다. 또, 엽기적인 전개 때문에 집중이 잘 되었다. 가령 꿩 밀렵을 위해 수면제를 넣은 건포도를 제조하거나(「클로드의 개-세계 챔피언」), 와인의 이름을 맞추는 내기에 자신의 딸을 걸거나(「맛」), 목사 행세를 하는 보기스가 비싼 고가구를 보고도 기쁜 표정을 숨긴 채 물건을 싼 값에 사드리려고 사기를 치는(목사의 기쁨) 식이다. 이야기의 끝에는 매번 반전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욕심 많은 인물들을 응원하다가도 결말을 보고는 “그럼 그렇지” 하며 내 욕심도 서둘러 숨겨버릴 때가 많았다. 그런 아찔한 기분이 좋았다.     


로알드 달은 생전에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마틸다』와 같은 어린이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는 반유대주의 발언과 작품의 여성 혐오적 요소 때문에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이번에 읽은 단편들도 인물들의 설정 측면에서 사실상 현대보다는 근대적 사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 로알드 달을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흐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알드 달의 이야기는 재미가 있다. 세헤라자데의 천일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생명력이 강하다.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운 현대인의 출퇴근길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기에 탁월하다. <로알드 달 베스트 단편 세트> 에는 총 29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1000일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려 한 달간의 퇴근길은 매번 새로울 수 있겠다!     



* 김환영, “큰 생각을 위한 작은 책들”. 중앙시사매거진, 2019년 1월 23일 자 기사

(http://jmagazine.joins.com/forbes/view/319848)               




교유당 서포터즈 2기로 선정되어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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