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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r 13. 2019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세이】

나에게 집중

요 근래는 무엇을 해도 피곤한 날의 연속이었다. 일에 집중도 안 되고, 자꾸 축축 쳐지는 기분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는 바깥공기나 쐬자며 운동장을 돌았다. 운동장을 돌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운동장을 돌면서 골똘히 생각하기에는 꽤나 무거운 주제였다-생각해보니 정해진 계획을 세우고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 있었던 것부터가 잘못된 것 같았다. 사실 이런 강박이 생긴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다.     

설날에 친척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사촌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되었다. 그중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제목 : 게임 8시간,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망한 날이다......”나도 사촌동생처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종류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중학교 때부터 다이어리에 오늘 해야 할 일, 오늘 한일, 오늘 하지 못한 일, 오늘 하지 못한 일에 대한 반성을 매일매일 기록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계획대로 성실히 생활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계획대로 보내지 못한 날이 많았고 그런 나를 타박하는 글을 쓰는 날이 많았다. 그 일을 고 3 때까지 하고 나니, 대학교를 들어와서부터는 다이어리를 쓰기 싫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나서 내가 너무 게을러져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요일별로 계획하고 그대로 실천해야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일이 과연 즐거울 수 있을까? 오늘에서야 이 질문이 떠올랐다. 당연히 오래전부터 이 일은 즐겁지 않았다. 중학교 때 나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싶은 것(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 등등)은 너무 많은데 당장 해야 할 숙제(학교 숙제, 학원 숙제, 시험 준비, 고등학교 진학 준비 등등)가 산더미라며 울었던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눈물까지 보였던 나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용케도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버텨왔는데, 이제는 좀 즐거울 때가 되지 않았나? 이제까지 나는 내가 원하는 전공을 선택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만으로 ‘자유로운 척’을 하며 살았을지라도, 나는 결코 내 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시민 작가가 ‘대학교를 들어가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는 주제로 찍은 강의가 있는데, 그중에서 “인생은 짧고 부질없는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것만이 인간이 사는 방법이다”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그의 말대로 인생이 짧고 허무한 것뿐이라면 나는 왜 단 하루도 자신을 사랑해주지 못하고근본도 없는-그 계획을 다 실천한다고 한들 내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계획을 맹신한 채 그것에 나를 맞춰가고 있었던 걸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 3 때까지 내 좌우명은 ‘나에게 집중’이었다. 경쟁자를 의식하지 말고 내가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해서 내 계획을 성공적으로 실천하자는 의미이다. 지금까지도 내 좌우명은 ‘나에게 집중’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기애’의 의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귀 기울이자는 뜻이다. 물론 일상생활이 늘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약간의 루틴이 필요하다. 매일 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어떤 책을 매일 얼마만큼 공부하겠다거나... 하지만 만약 하기 싫다면 이건 루틴이 될 수 없다. 하기 싫다면 목표를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가령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고 싶은데 어떤 교재를 매일 얼마만큼 공부하겠다고 계획을 세웠다가 그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건 내가 ‘하기 싫은 일’이다. 내가 게으르거나 똑똑하지 않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어떠한 목표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지 않은가. 내 본능이 먼저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나를 잘 보살펴 줘야 한다.     


니체는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라는 말을 했고, 하이데거는 인간은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허무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래서 그 자체로 어떤 의미를 찾기 어렵다.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고 해서 매번 무언가를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명예가 남았다고 하더라도 이미 죽은 사람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사는가우리는 왜 사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기 위해서 산다. 질문이 곧 답인 셈이다. 나는 누구인지, 오늘은 또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지, 오늘 배운 것을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나는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을지, 나를 위해 돈을 어떻게 쓸지. 하루하루의 일과 질문이 끊임없이 연쇄되어 삶을 이룬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해서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깨닫고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아가다가 죽고 만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떠도는 존재다. 그게 불안하다면, 매 순간 나를 사랑하며 내면의 중심을 잡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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