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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r 18. 2019

보라색 시장 【시】

진짜인 것 같은 꿈에서 깨고 나면 슬픈 이유

눈에는 심이 박혀 있어요.

눈알은 자꾸만 삑삑 소리를 내요.

감지도 뜨지도 못한 실눈이에요.

그대로 오늘은 보라색 시장에 왔습니다.

출구는 없습니다.

등가교환의 법칙은 있습니다.

돈은 소용없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습니다.

층이 없이 높이 쌓여 있거든요.

코스트코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요.  

   

여기는 뭐든지 다 팔아요.

깔끔하게 진열해서 팔아요.

먹을 건 무엇이든 팔아요.

명품도 웬만한 건 팔아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도 팔아요.

느낌은 색깔이고 상자 모양이고 빛이에요.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어요.

이미 포장되어 있는 상태에요.    

 

엄마는 이 코너에서 특히 주의하라고 했어요. 

엄마를 잃어버린 적이 있거든요.

그때는 더 어렸을 때니까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다행히 엄마의 목소리가 사방의 안내방송에서 들려왔어요.

“내가 좋아하는 색은 ‘그리움’이구나”

‘그리움’이라는 단어에서 에코는 계속되었어요.   

   

그런데 오늘은 느낌의 코너에 있어요.

먹을거나 물건들이 질려버린 건 아니에요.

다만 명품코너를 한동안 자주 가서인지 눈이 심하게 뻑뻑해요.

심이 점점 심해져서 눈이 많이 아프거든요.

엄마가 조심하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할게요.     


처음에는 형광색이고, 길고, 빨갛고, 바다파란색 동그란 것이 박혀있는 느낌을 보았어요.

옆쪽에는 녹물을 뒤집어 쓴데다 해야 할 빨래를 다 섞어놓은 덩어리의 느낌도 있었어요.

당연히 전자라구요?

후자는 다이아몬드처럼 각이 예쁘게 져있고 중간에 고름 같기도 하고 개나리 같기도 한 노란색 구슬이 박혀 있는데도요?

무엇을 사야할까요? 끝까지 신중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끝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뚫어져라 보다보니 둘이 하나가 되었어요.

직원 언니에게 물었습니다.

“여기 관리 안하세요?”

“관리하는 건 제 일이 아니에요. 저희는 분류작업만 맡고 있어요.”     


그걸 안아들고 눈을 바로 떴습니다.

포장을 다 뜯었을 때 그 속의 기억이 아침 햇살과 같이 펼쳐집니다.

눈물 덕분에 눈이 많이 나았어요.


이제 저는 매일 밤 

실눈의 흑색 길을 따라

보라색 시장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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