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야경 문학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야경 Mar 18. 2019

이동【소설】

각자의 생애주기

우리 집은 아주 큰 변화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얼마 뒤 이사를 한다. 지금 사는 집의 반만 한 작은 곳으로 가게 되었다. 가족끼리의 생활 반경이 서로 달라져서 우리 가족에게 큰 집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다. 큰딸은 작년부터 직장에서 가까운 집을 얻어 자취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빨리 독립하고 싶다고 하더니,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학교 기숙사에 살고 이제는 월세로 제법 그럴듯한 독립을 했다. 작은 딸은 작년 2학기에 이어 올해 1학기까지 중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했다. 딸들을 낳았을 때는 큰 집을 찾았지만 이제 다시 둘이 되어 작은 집을 찾는 상황이라니, 시간이 참 빠르고 쓸쓸하기도 하다. 그나저나 3월 한 달간은 복잡할 예정이다. 아파트 입주 날짜가 꼬여버려서 새집의 입주 날짜와 지금 사는 집의 새 주인이 들어오는 날짜 사이에 한 달이 떠버렸다. 그래서 2월 말에 모든 짐을 이삿짐 센터에 맡겨놓고 3월 한 달 동안 동생네 집에 살다가 4월 초에야 새집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작년부터 얻은 직장을 1년 더 계약했다. 하지만 나는 내년에 이 직장을 다시 1년 더 계약할 마음이 없다. 다른 직업을 갖든 같은 직업을 갖든 다른 곳에서 출발하고 싶다. 내년에 다른 곳에 직장을 구한다면 또 그 근처에 집을 얻어야겠지. 지금 사는 집 시설은 나쁘지 않다. 오래 살 집은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니깐 나름 깔끔하게 꾸몄다. 그렇지만 내년에 내겐 이동이 필요하다. 더 좋은 근무환경의 직장을 구하면 집에 있는 책이며, 소파며, 컴퓨터며-짐이 좀 많긴 하지만-짐들을 옮기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다. 직장도 옮기고 살 집도 옮기고, 또 새로운 시작인 거다.      


작년 2학기에 이어 올해 1학기에도 중국에 왔다. 중국에서의 유학생활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과 같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는 ‘내가 이걸 돈 내고 왜 타겠다고 했지’, ‘난 왜 이런 아찔한 상황을 자처할까’, ‘다음에는 절대 타지 말자’와 같이 오만가지의 나쁜 생각이 들다가도 내려갈 때는 잠깐 짜릿하고 흥분된다. 내리고 나서 누군가 롤러코스터를 탄 소감을 물어보면, ‘완전 재밌어’, ‘올라갈 때는 좀 무서워도 타 볼만해’ 라면서 모든 과정을 완전히 미화시킨다. 난 지금 롤러코스터가 올라가는 그 과정에 있다. 작년 한 학기 동안의 유학생활은 한국에서 한 달간 쉬는 동안 완전히 미화되어 버렸고, 다시 중국에 온 지 일주일도 안 된 지금은 오만가지의 나쁜 감정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나쁜 감정에 중심에는 기숙사가 있다. 기숙사에 살아본지 4일째 정도 되는데, 도저히 못 참겠다. 변기도 더럽고, 방안의 누안치(暖气 : 가끔 화장실에서 볼 수 있는 구불구불한 난방시설)는 답답하고 더운 공기를 계속해서 뿜어댄다. 그래서 오늘은 큰마음을 먹고 1인실 기숙사에 방이 있냐고 물어보러 갔다. 능숙하지 않은 중국어 실력으로 간절하게 1인실을 원한다고 말해봤지만, 온라인 신청을 한 후 빈방이 날 때까지 기다리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1인실로 옮긴다고 해서 롤러코스터를 올라가는 과정이 갑자기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이동이 필요한지, 만약 이동이 불가능하다면 이 공간에서 한 학기를 버틸 수 있을지 또다시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한국에 돌아가면 추억으로 포장된다고 할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보라색 시장 【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