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일요일의 끝 (feat. 라디오, 맥주, 노을, 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면서 치즈와 초콜릿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면서 노을을 보는 꿀 같은 주말이다. 원래는 숙제를 하고 있었는데 아름다운 음악과 풍경과, 냉장고 안의 식량을 두고 주말을 이렇게 보내버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숙제하던 책을 모두 밀어버리고 노트북의 빈 화면을 켰다.
사실 요번 주는 이유도 없이 우울한 날의 연속이었다. 슬픈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고, 내가 미워지는 시간이 많았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 중에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짧은 이야기나 시를 쓸 때 그것에 어떤 교훈을 담으려고 하면 좀 작위적인 느낌이 들어서, 최초의 독자인 내가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작품을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브런치나 공모전과 같이 객관적으로 글을 바라봐야 할 때가 분명히 있었다. 내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평생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직업이 계속 바뀌더라도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삶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예술을 하며 살고 싶다. 그런데 몇 개 되지 않은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조차 이렇게 두려운데, 내가 예술을 계속 즐기면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글 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 그렇게 주변에 말하고 다닐 때부터 내면의 두려움은 항상 있었다. ‘나 같은 보통 사람도 예술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하지만 그보다 분명한 건 나는 예술에 대한 갈증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을 취미로 미뤄 둘 수가 있을까.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는 순간 스트레스가 되는 게 당연하더라도 나는 인생에서 예술이 내 삶의 중심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 고민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의 뭉치들이 십 년, 이십 년 차곡차곡 묵혀서 아름다운 글로, 영상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하나는 시간에 대한 고민이다. 새삼 시간이 빠르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나는 1년 전의 나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주변의 가족과 친구들도 없이, 한국이 아닌 북경에 혼자 지내는 것은 1년 전 아니 6개월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다. 방금 온 봄만 해도 그렇다. 이제 막 꽃이 핀 것 같은데 북경의 거센 바람들로 어느새 꽃비가 내리고, 꽃잎들은 눈물처럼 거리에 흩어져있다. 그런데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도 있다’라는 것도 같이 느낀다. 해가 지면 달이 뜨듯이, -해와 달이 동시에 뜨거나 져서 마냥 밝거나 마냥 어두울 때는 없다- 말을 적게 하면 생각이 많아지듯이 –나의 경우에는 말을 적게 하면 하고 싶은 말만큼의 생각이 머리로 밀려온다– 말이다.
이렇게 몇 자 적고 나니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던 고민거리들이 조금은 투명해진 느낌이다. 이제 두 시간짜리 라디오가 끝나가고 맥주를 다 마셔간다. 이번 주도 마음을 느끼면서 사는 것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