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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Apr 05. 2019

구교환의 예술세계【영화】

감독 구교환, 배우 구교환

영화감독이자 배우 구교환은 영화계의 ‘레이먼드 카버’같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가 감독·연출하거나 출연한 영화 대부분은 단편영화지만 그 어떤 장편보다 강력하다. 그의 예술세계는 우리의 삶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서 힘이 있다. 지나치게 자세하거나 친절하지 않으면서도 은근하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변의 잡음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인위적이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2018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메기》로 화제가 되었던 이옥섭 감독과 주로 함께 작업하는 구교환 감독의 영화 몇 편과 그가 출연한 영화 여러 편을 보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단편영화(《플라이투더스카이》,《연애다큐》,《걸스 온 탑》,《뎀프시롤 : 참회록》)에 대한 감상을 적어 보았다.      



《플라이투더스카이》


성환은 가죽공예를 좋아하고, 교환은 영화를 좋아한다. 이탈리아에서 가죽공예를 배우다가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성환은 중장비 운전을 하고 있는 교환과 만난다. 성환은 교환을 따라 기중기나 굴삭기 운전을 배워볼 생각이다. 가죽공예를 할 때 빛나던 성환의 “매직 이프”라는주문은 이제 운전 연습에 쓰일 뿐이다. 교환이 중장비 운전은 메인으로 하면서 각자 좋아하는 것(가죽공예나 영화)은 취미나 여가로 하면 된다고 말할 때, 성환은 “진짜 좋아하는 걸 주말에만, 여가로 할 수 있는 거니?” 라고 받아친다. 성환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굴삭기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굴삭기 운전을 하면서 베를린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교환의 전화를 받는다. 성환이 은근히 배알이 꼴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성환과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진정 즐기면서 돈도 많이 버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괜히 질투 나고 씁쓸하다. 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는데, 왜 그렇지 못하는 걸까? 영화 중간의 라디오에서 나오는 디제이의 말은 왠지 경고로 들린다.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건 꿈이 없어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건 꿈을 핑계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굴삭기 자격증은 분명 성환이 합격하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의 꿈은 아니었고, 그건 꿈이 바뀐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구교환 배우는 한 GV에서 자신이 연출한 영화 중 연극으로 만들면 좋을 영화로 플라이투더 스카이를 뽑았다. 무용극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구부정하게 크고 외로운 삽질을 하는 무용수들의 몸짓이 기대된다.     

《플라이투더스카이》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연애다큐》


EIDF에 ‘연애다큐’라는 주제로 다큐를 출품하기로 한 연인은 다큐를 찍는 도중 이별한다. 대단한 이유가 있는 이별은 아니다. 그런데 다큐가 제작 지원이 결정되면서 지원비를 벌기 위해 교환은 하나에게 다큐를 마무리 하자고 한다. 하나는 자신이 깬 비싼 도자기 값을 물어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연애다큐》라는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다큐와 영화를 넘나든다. 영화에는 실제인지 대본인지 애매하게 느껴질 만큼 자연스러운 장면들이 많다. 그러다가 교환이 하나가 보낸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본드로 일일이 붙이고 그걸 다시 하나 앞에서 깨뜨리는 장면에서 다큐와 영화는 비로소 하나가 된다. 이건 연애다큐의 일부-물론 교환과 하나의 ‘연애다큐’에 실제로 이 장면이 삽입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이면서 또 이 영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런 신선한 영화의 구조와 두 배우의 다큐스러운 연기는 이미 깨져버린 관계는 그 본질을 바꿀 수 없다는 당연하지만 매번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담백하게 전한다.   

《연애다큐》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걸스 온 탑》


우희는 키가 너무 커버린, 온 몸이 가시인, 선인장을 할 수 없이 식물원에 갖다 준다. 주영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그냥 같이 옆에 있으면 되는 거라고 우희를 다그친다. 그들은 외발자전거를 타고 선인장을 다시 찾으러 간다.


《걸스 온 탑》은 동화적인 색채를 띤다. 선인장이 상징할 수 있는 것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만약 선인장이 과거 주영이 우희에게 선물해준 것이라면 그것은 우정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우희가 사막에 가서 직접 사온 것이라면 그곳에서의 추억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우희와 주영은 선인장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안을 수 없고 눈을 맞출 수도 없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 그래서 그들의 사랑을 쑥쑥 먹고 천장을 뚫어버린 선인장의 모습은 불안하기는 하지만 기분 좋게 웃기기도 하다.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주영과 우희는 외발자전거를 탄 채 행복하게 선인장을 이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걸스 온 탑》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뎀프시롤 : 참회록》


예전에 병구는 판소리 복싱을 했었다.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병구는 복싱을 떼려 치고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병구는 예전의 일들을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참 신명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라는 식으로 기억할 뿐이다. 그는 치매에 걸렸다. 대신 그의 몸은 아직 판소리 복싱의 장단을 기억하고 있다. 모기를 쫓는 척 하면서 손바닥으로 몸을 치며 은근슬쩍 장단을 맞춰본다.      


무엇보다 ‘판소리 복싱’이라는 소재가 너무 웃기다. 교환이 다시 복싱을 하자며 병구를 설득하면서 장구를 치는 장면은 진지하면서도 너무 웃기다. 텔레비전의 부품을 교체하는 것보다 새로 텔레비전을 사는 게 낫다는 AS아저씨의 말처럼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병구의 몸 속 부품은 망가져가고 있어도, 안타깝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새로 들여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부품을 갈아 끼우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그가 민지의 제안으로 복싱을 다시 시작해보기로 한다. 전설의 ‘판소리 복싱’을.     


지금의 병구는 카리스마 있고 눈빛이 또렷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앞으로는 멋있었던 과거를 기억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속으로 박자 맞출 수 있는 장단이 있어서 꿈을 꾸든, 연애를 하든, 전단지를 돌리든 리드미컬하게 살 수 있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니까.”             

《뎀플시록 : 참회록》스틸컷(출처 : 네이버 영화)

한줄평


《플라이투더스카이》 : 외로운 삽질의 슬픈 현실     

《연애다큐》 : 도자기와 본드로 하는 행위예술     

《걸스 온 탑》: 불안하고 행복하게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주영과 우희와 선인장     

《뎀프시롤 : 참회록》 : 병구의 장단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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