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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경 Mar 31. 2019

4000원짜리 봄냄새【에세이】

봄이 왔네 봄이 왔어


장을 보러 갔다. 배고플 때 장을 보면 더 많이 사게 되어서, 점심을 든든히 먹고 장을 보러 갔다. 오트밀도 사고, 우유도 사고, 과자도 사고, 맥주도 사고, 각종 야채주스도 골랐다. 그것들을 꾸역꾸역 배낭에 담고 마트를 나왔다. ‘이 무거운 걸 어떻게 다 들고 가나’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배낭을 어깨너머로 한번 들썩이는데, 시금치 주스가 가방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을 서둘러 주어서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따금씩 시금치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떨어질 때 본 시금치 주스의 이미지하고 바람이- 지금 북경은 하늘에서  여러 개의 비닐봉지가 날아다니고 길에는 나뭇잎들이 소용돌이를 칠 정도로 바람이 많이 분다- 겹쳐 착각하는 거라고 느꼈지만, 나중에는 이런 게 바로 풀 냄새고 봄 냄새라고 생각했다. 어디서 벌써 제초작업을 하나? 진짜 봄이 온 거다.      

집에 돌아와 보니 가방에서 시금치 주스가 터져있었다. 가방의 다른 물건을 서둘러 건져내고 나니, 가방 밑바닥에는 시금치 즙이 한껏 고여 있었고, 지갑 안의 돈들도 다 젖어있었다. 가방과 지갑을 빨고 젖은 돈을 한 장 한 장 널고 나니, 방 한가득 풀냄새가 가득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서 나는 돈을 널면서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긍정적이구나.      

요즘 계속 “죽겠다”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아침” 인사 대신 피곤하다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인지 기운이 없어 보인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시금치 주스가 터진 가방을 뒤에 두고 봄이 왔다고 좋아하며 걸어 다녔다니. 그러고 보면 난 참 긍정적인 사람이다.       




BGM : 장기하와 얼굴들 「TV를 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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