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엄마 박화영, 소현의 엄마 제인
영화 ≪박화영≫과 ≪꿈의 제인≫은 모두 엄마라고 불리는 존재를 소재로 한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미정은 친구로서 화영을 기억할 뿐이었고, 소현이 기억하는 대부분의 제인은 소현의 꿈의 조각일 뿐이었다. 엄마를 자처하는 ‘박화영’과 ‘제인’은 어떤 사람일까?
박화영은 미정의 엄마로서 미정을 괴롭히는 모든 일을 처리한다. 작게는 미정의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는 가하면, 미정을 뒤에서 씹는 아이들을 밟아주고, 미정의 남자친구와 바람 피는 아이를 때려주고, 미정을 대신해서 살인을 자백하기까지 한다. 박화영은 그녀에게 완전 복종하듯이-철저히 미정을 위해서- 살아간다. 영화의 뒤편으로 갈수록 박화영의 이런 행동은 미정을 위해서라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위해서인 것처럼 보인다. 화영은 미정이 아양을 떨며 부탁을 할 때마다 “니는 나없으면 어쩔뻔 봤냐”면서 호탕하게 웃어보인다.
이런 박화영에게도 엄마가 있다. 미정이 “근데 엄마 엄마는 어떤 엄마야?”라고 물어봤을 때 화영은 “그냥... 졸라 나같애”라고 대답한다. 화영은 미정과 –혼자서 진지한– 엄마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엄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화영의 엄마는 화영에게 방 하나를 얻어주고 연을 끊고자 한다. 그 방에서 화영은 미정을 비롯한 일진무리들에게 밥을 해주고, 나아가 그 장소는 그들이 자유롭게 담배를 피고 술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된다. 화영은 이후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엄마 집에 찾아가 칼을 휘두르고 욕을 퍼부으며 돈을 요구한다.
박화영은 자신을 밀어내고 감기약과 담배를 같이 하며 환각상태에 빠져 현실 전체를 도피해버리고 싶어하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완벽한 엄마를 꿈꾼다. 모든 걸 책임지고, 감수해야만 ‘엄마’라고 불리는 상황에 자신을 가둠으로써 기형적인 엄마의 모습을 공고히 한다. 영화의 마지막에 박화영이 가발을 벗어던지고 다시 숏컷의 화영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자신에게 ‘엄마’라는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또 한번 보여준다.
영화 ≪꿈의 제인≫에서 제인과 소현은 공통점이 많다. 제인은 ‘뉴월드’라는 곳에서 밤에 노래부르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은 노래를 부르기 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런 얘기를 한다.
“저는 태어날 때부터 진실하지 않았어요. 제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네, 제 노래는 거짓역사의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게 무슨 말이냐구요. 바로 요놈 요자식에 관한 얘기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죠. 그렇기에 제 존재는 언제나 거짓이었습니다. 입만 열면 거짓의 구취가 난다고 손가락질 받았죠. 음, 전 어찌할지 몰랐어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 곁에 머물 수 있는지 방법을 몰랐죠. 특히나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다 제 곁을 떠났어요. 그들 중 몇 명은 제게 이렇게 말하더라구요. ”넌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거야.“ 왜냐면 넌 사랑받고 싶어서 누군가를 사랑하거든 그렇게 저는 여전히 혼자인 채로 살고 있습니다. 제 진심이 언젠가는 전달될 거라고 믿으면서요. 물론 이 외로운 삶은 쉽게 바뀌진 않겠죠. 불행도 함께 영원히 지속되겠죠 뭐 그래도 괜찮아요. 오늘처럼 이렇게 여러분들이랑 즐거운 날도 있으니까 말이에요. 어쩌다 이렇게 한번 행복하면 됬죠. 그럼 된 거에요. 자,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그리고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행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영화 ≪꿈의 제인≫)
소현도 지수언니가 죽고 예전에 같은 팸이었던 오빠가 지수언니가 묻힌 곳이 어디냐고 다그칠 때 이렇게 쏟아낸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지 방법을 모르겠어요.”(영화 ≪꿈의 제인≫)
하지만 오빠는 소현의 말에는 관심이 없다. 소현의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니까 지수가 어디에 묻혔는지 말하라고 계속해서 묻을 뿐이다.
제인은 트렌스젠더로 외롭게 살아왔고, 소현은 가출 청소년으로 외롭게 살아왔다. 소현은 꿈 속에서, 정호오빠와 같이 살았던 모텔의 문을 두드리는 제인과 처음 만났다. 소현은 자신에게 피가 난다고 말해주거나, 가끔씩 잘라진 발톱이 마치 있는 것처럼 간지럽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주거나, 인생은 계속해서 불행이라고 담담히 털어놓는 제인을 엄마라고 부른다. 그리고 제인은 엄마 역할을 하고, 지수 언니를 비롯해 4명의 가출 청소년이 함께 사는 팸을 상상해 보기도 한다. 현실에서 소현은 끝없이 불행하고 혼자지만, 꿈속에서 꿈의 제인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남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다. 소현의 ‘꿈의 제인’은 인생에서 가끔씩만 찾아오는 행복이었다.
한줄평
≪박화영≫(감독 : 이환) : 기형적인 엄마, 화영이 벗어날 수 없는 엄마라는 슬픈 프레임
≪꿈의 제인≫(감독 : 조현훈) : 인생은 계속 불행이라던, 가끔 한 번씩 행복하면 된 거라는 제인의 몸짓, 말투. 소현의 영원한 꿈인 되어버린 제인.